네 번째 편지
첫 출근날이었어.
벌써 몇 번째 첫 출근인지 모르겠어. 처음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설레지 않고 또 하나의 루틴처럼 그조차 지겹거나, 심지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어.
회사는 어땠냐고 물어보겠지? 뭐 그냥. 쏘쏘.
대충 알잖아. 오전에는 어수선하게 자리 정리하고, 어 hdmi가 안 맞는데요..? 같은 질문을 하면서 먼지 풀풀 풍기는 책상을 하염없이 물티슈로 닦아내고.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어색함을 숨기기 위해 호의적인 말투로 대화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근처에 식당 뭐 있어요? 아 저는 가리는거 딱히 없어요. 근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그쵸 그쵸. 진짜 지겨워죽겠어요... 이런 대화들을 나누고. 퇴근시간즈음 슬슬 눈치를 보다가 적당한 시간대에 윗사람에게 인사를 하겠지. 언제 들어가시게요? 너무 늦게까지 계시는 건 아니구요?
그러다가 집에 왔어. 첫 출근날에 해야 하는 것들은 빠짐없이 하고 왔지. 그런데 왜 마음이 이렇게 공허할까. 이 시국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다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니냐구, 주변에서는 다들 그러던데. 맞아. 알긴 아는데, 내 마음은 왜 이럴까.
하나도 새롭지 않아. 그렇다고 새로운 걸 해보고 싶지도 않아. 그저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래서, 내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에 봤던 선배들처럼, 뜨거운 열정은 없지만 하던 일이라 계속 한다고, 직업이 밥벌이지 뭐 대단한거냐고, 나도 한때는 그랬다고, 너 또한 나중엔 이렇게 된다고 눈빛으로 말하던 선배들처럼, 그렇게 변해갈까봐 서글퍼.
태도에 옳고 그름이라는 게 있을까? 전에는 분명 있다고 생각했어. 나의 옳음을 강요하기도 했어.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까 그것 보다는... 선택만이 있는 것 같아. 내가 선택한 태도만이, 그걸 옳다고 믿는 내 마음만이 있을 뿐이야. 지금 내 마음이 뻥 뚫린 건 어떤것도 선택하지 않아서일거야. 쌓여가는 연차만큼 성장했다고 자부할 수 없어서 두려운거야. 세상에 이런 겁쟁이가 또 어디 있겠니. 어디 있겠어.
난 출근 두번째날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몰라. 첫 발은 떼었는데 그리곤 어찌할 줄을 몰라서 지금까지 이렇게 헤매게 됐나 봐. 적당히 눈치봐서 걷고 뛰고 앉아있고는 하다가 길을 잃어버렸어. 당장 내일이면 또 다시 출근 둘째날이야. 이번엔 나도 무언가를 선택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