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편지
잘 지내고 계세요?
전 요즘 하루하루가 늘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못 뵙고 지낸 기간도 더 길게 느껴지네요.
저번엔 시간이 없어 다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사실 저 작년에 엄청 힘들었어요.
계절도 모양따라 색깔따라 네 번은 바뀌는데 제 삶은 늘 겨울에만 머물러있는 것 같은, 그런 날들 뿐이었거든요. 누구에게나 그렇게 힘겨움만 몰려오는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제겐 그때가 작년이었나봐요.
희한하게도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뵙고 싶고, 얘기 나누고 싶고, 연락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무작정 털어놓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답을 구하고 싶었던걸까?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선생님을 만난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마 선생님과 이야기 나눌 땐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겠죠. 작년의 저는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본능적으로 살고 싶었나봐요. 홀로 있으면 저를 들여다보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제 자신을 버려두었던 때라서.
그와중에도 너무 싫었던 게 하나 있어요.
선생님께 부담이 될까봐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했던 제 모습이에요.
그걸 배려라고 해야할지 예의, 혹은 눈치라고 해야할지 알 수 없지만
뭐가 됐든 저보다 중요한 게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는 저를 죽어가게 만들고서는, 돌보지도 않고, 우선순위에서도 밀어내버렸던 거예요.
사람이 빛을 잃어가는 걸 뻔히 지켜보면서 말이죠.
저는 반짝-조차도 할 수 없었고 어떻게 빛이 났었는지, 어떻게 빛을 다뤄야 하는지도 온통 잊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고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내가 달갑지 않으시면 어쩌나, 내 이야기가 짐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누군가를 위하는 이 마음은, 정작 누구를 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해 이 편지 속에 모든 것을 넣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