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준비되지 않은 이직 이야기... Part10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나는 내내 최팀장이 던진 한마디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오늘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지금이 적절한 시기일까? 만약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왜 이제야 이야기하냐고 할까? 결정된 것도 없는데, 호들갑이라 하지는 않을까? 혹시, 관심 없어하지는 않을까? 또 다른 근심을 한 아름 안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다 정리가 덜된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침묵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P사는 회신이 없었다. 인사팀도 예상시간을 훌쩍 지나고 있는 상황이 이상했는지 확인해 주겠다고 했다. 몇 시간이 지나 인사팀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는 정말 이상했다. P사 내부적으로 전임자의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 내 면접결과를 확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긴급하게 인원전배를 요청했다는 상황과는 괴리가 있었다. 다시 우리 인사팀을 찾아갔다. 이해 안 되는 상황을 확인해 준 담당자는 나에게 P사의 조금 구체적인 상황을 귀띔해 주었다. 전임자는 예상대로 P사에서 나름 유능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일찍 기획팀장이 되었고, 해외 주요 지역의 법인장도 했었다고 했다. 어느 순간 윗선에 잘못 보이긴 했으나 여전히 그의 교체를 놓고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 인가? 우리 회사 인사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P사 역시 그런 것일까? 인사가 만사이니, 신중해야 한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는데, 정착 P사 위정자와 인사팀은 일을 성급하게 벌인 것은 아닐까? 면접결과에 상관없이 이직은 없었던 일이 되면 어쩌지? 상황이 이리되면, 자매사 전배는 물 건너가는 것이니, 아내에게는 갑자기 면팀장이 되어서 팀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는 것만 이야기해야 하나? 만약, 합격하더라도 이런 바람 거센 자리에서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면접결과는 진전이 없고, 아내와의 소통을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이 흘렸다. 다시 주말. 며칠을 고민해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P사에서 언제 연락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20여 년을 함께한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절한 타이밍을 고려했다. 혹시나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고, 주요 프로그램은 저녁시간에 시작하니, 그전에 하기로 맘을 정했다. 둘 다 술을 못하니, 반주라도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옵션에서 뺐다. 소파에 앉아 빨래를 정리하고 있는 아내에게 말을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자칫 사안의 신중함을 오해하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를 옮기는 고민을 하고 있어....."
갑작스러운 이직 이야기에 아내는 시선을 고정한 채,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옹상무란 사람이 내게 했던 말과 행동부터 면접을 보고 온 상황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면접결과를 기다리며, 채근당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까지... 아내는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더 이상, 지금 회사에 있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아내는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남편이 20여 년을 다닌 첫 직장이 더 이상 남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음과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애쓰는 것은 동기부여도 안될 뿐 아니라 결과도 좋을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해 주었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오래 있었던 사람이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냉철한 반응에 놀랐다. 내 생각에 동의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좋지 않은 상황을 전하는 미안함 그리고 혼자서 외로이 여러 날을 고민했던 서글픔이 동시에 몰려왔다.
수험생인 딸아이에게는 어떤 결과가 나더라도 신중하게 때를 봐서 전하기로 했다. 딱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으나, 행여나 불필요한 감정소모로 1년이 남은 수능 준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상황을 피하자는 생각 또한 일치했다. 아직까지 딸아이에겐 아빠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석사학위를 따고, 국내외를 누비며 M&A도 하는 슈퍼맨이었다. 언젠가 아빠를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식견이 생길터이나, 스스로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어쩜 난, 수능을 핑계로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시커먼 속내를 에둘러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면접을 치른 지 3주가 지났다. 옹상무는 충분히 배려를 했다며, 용책임의 팀장 발령을 인사팀에 요청했다고 나에게 통보를 했다. 그의 성격에 이만큼 기다리 준 것이 다행이었다. 몇 시간 뒤, 퇴근 무렵 전사 게시판에는 신임 조직책임자 발령을 알리는 글이 게시되었다. 금요일 오후인 데다 인사시즌이 아닌 타이밍에 신규팀장으로 발령된 이름만 게시가 된 탓에 귀가할 때까지 지인들에게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번주 토요일도 향후 6개월간 예상 매출과 손익 리뷰를 목적으로 하는 이동계획에 대한 CFO보고가 있었다. 어제부로 면팀장이 공식화된 나는 출근하지 않고 쉬었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이 오갔을지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 것도 잠시, 나는 하루종일 누워 잤다. 몸살인 양 열이 났다. 얼마가 지났을까 와이프가 이제 일어나라며, 몸을 흔들었다.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점심도 안 먹고 잠만 잤다고 했다. 뭐라도 먹고 자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괜찮다고 말하곤 다시 누웠던 것 같다. 정신이 들어 일어나 보니 일요일 새벽 4시였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회사로 차를 몰았다. 일하러 가는 것은 아니었다. 발령이 났으니, 새로 올 팀장(용책임)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월요일 아침에 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짐을 빼는 모습은 뭔가 프로스럽지 않고, 미련이 남아 보여 싫었다. 혹시나 주말 출근을 하는 팀원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일까 싶어, 그 누구도 출근하지 않을 이른 일요일 아침에 서둘러 회사에 도착했다. 어제 하루를 내리 잠만 잔 탓에 허기를 달래려 주말 출근 때마다 찾았던 회사 앞 빵집을 들렸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는 않았다. 아쉬운 마음과 허기진 배를 잡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 위에 있던 모니터와 거치대, 그리고 벽에 붙어 있었던 수많은 게시물을 떼서 옆에 있는 빈자리로 옮겼다. 특히 필기구를 편집광처럼 좋아했던 덕분에 책상 위에는 여러 종류의 수집품들이 즐비했다. 생산연도와 경도가 다른 수십 자루의 연필, 이를 담았던 연필꽂이, 이동 시, 연필이 부러질까 씌운 고깔, 그리고 자동 연필 깎기가 한켠을 차지했다. 두께와 색이 다른 캘리그래피용 붓펜들, 이를 담을 필통, 리필심도 제법 많았다. 또한 십수 년간 사 왔던 만년필(주로 유럽산과 일본산)들, 만년필을 채울 몇 가지 색의 잉크병들. 그리고 만년필에도 번지지 않고, 잘 견딘다는 좋은 질감의 수첩, 다이어리, 메모패드까지. 이것저것 짐이 많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젠 이런 것들은 치워야 할까? 자매사 전배를 가거나, M&A팀으로 조만간 자리를 옮겨야 하고, 그리되면, 책상이 작아질 수도 있으니, 이번 참에 이들을 모두 버리거나, 언제라도 옮길 수 있도록 박스에 담아야 할 것 같았다. 비상계단을 뒤졌다. 다행히 한편에 쌓아진 빈 박스가 있었다. 가장 큰 놈을 골라 책상 위 애장품들을 조심스레 담았다.
짐을 옮기고 나서, 기존에 내 자리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애썼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갖고 있던 물티슈를 꺼내 꼼꼼하게 정리했다. 새로 온 신임팀장인 용책임에 대한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과도 같았다. 책상 아래와 발 딛는 곳까지 모두 닦아내고야 사무실을 나왔다. 오랜 야근과 주말근무로 피폐해진 몸뚱이는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밖은 어느덧 환하게 밝아 있고, 시계는 아침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