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내 자신이 뿌듯함을 느꼈다.
“아빠….”
“재훈아! 정신 차려!”
오토바이에서 급히 내린 아빠가 아이를 향해 달려왔다. 아이는 그토록 절박하고 괴로운 얼굴을 한 아빠의 모습은 처음 봤다. 지금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빠, 나 너무 추워.”
“재훈아, 우리 생일파티하러 가야지. 응?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제발!”
아빠의 말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아이는 몸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도통 말을 듣질 않았다.
“아빠, 내 마음대로 잘 안 돼.”
“재훈아…! 누구 없어요? 빨리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의 눈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스르륵 감기기 시작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제가 곧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무서운 얼굴을 한 검정옷을 입은 사람들이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아이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미처 예기치 못한 순간 생이 끝난다면 뭘 해야 할까.
“아빠, 사랑해. 아빠 아들이라서 좋았어. 정말로.”
“재훈아!”
아이의 말을 들은 아빠의 눈에서 주체할 길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미친 듯이 아이의 몸을 붙들고 울던 아빠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급히 유턴을 하느라 오토바이의 짐칸에 실었던 요요는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아빠는 요요를 들고 아이에게로 갔다. 그는 요요를 아이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재훈아, 아빠가 생일선물 사왔어. 네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요요 봐야지. 응?”
아이는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감각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손에는 아직 감각이 남아있었다. 아이는 힘겹게 손을 움직여 위로 들었다. 그러자 아이의 시야에 흐릿해진 요요가 보였다.
“아빠, 고마워요.”
아이는 있는 힘을 짜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요요를 쥐고 있던 아이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한 게 아닌데.
나는 추억 소환이 시작되기 전에 기억소환실을 빠져나가지 못한 걸 진심으로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아이의 깨져버린 머리 틈새로 계속해서 피가 새어나왔다. 주인을 잃어버린 요요에서 처량한 불빛이 반짝이며 흘러나왔다. 남자는 숨이 멎은 아이를 붙들고 미친 듯이 절규했다. 모든 것이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나는 이 괴로운 순간이 언제 끝날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런 추억 찾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주위가 환하게 변했다. 온통 하얀 빛이 쏟아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눈부신 빛에 적응이 되자,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엔 내 눈에 누군가 몽글몽글한 파스텔 색감의 필터라도 끼운 것처럼 분위기가 여간 따스했다.
집에서 아이와 남자가 작은 식탁을 사이에 놓고 마주앉아있었다. 식탁 위에는 일곱 개의 초를 꽂은 케익이 놓여있었다. 아이와 남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다. 곧이어 선물증정식이 이어졌다. 남자에게 요요를 받은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내 실력 잘 봐요. 친구들 꺼 간간히 빌려서 연습했거든.”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요요의 고리를 손가락에 끼웠다. 아이의 손이 제법 능숙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요요는 불빛을 빛내며 아이의 손길에 따라 움직였다. 남자는 그런 아이를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재훈이, 요요 가지고 잘 노네.”
“아빠, 고마워요. 저한테 이런 멋진 선물을 해주셔서요.”
아이의 말을 들은 남자가 무언가 복받친 듯 울컥했다.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재훈아, 아빠는 너한테 그것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러질 못했네.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
“아빠 마음은 충분히 잘 알아요. 그러니까 이걸로 난 됐어. 괜찮아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를 꽉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괜히 코끝이 시려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는 콧물을 급히 들이켰다. 그러자 아이와 남자가 동시에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조용히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구석으로 물러섰다.
“고작 이런 걸로도 괜찮아?”
“그럼요. 전 나중에도 다시 아빠 아들로 태어날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아이는 잠시 틈을 두더니 말을 이었다.
“아빠도 이젠 엄마 잊고 새 삶을 살아요.”
아이의 말을 들은 남자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귓가에 요란한 알림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명료한 여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제 5분 뒤에 추억소환이 종료됩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남자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이는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맞다! 내가 아빠한테 줄 게 있었는데 깜빡했어요.”
“그게 뭔데?”
“아빠가 속옷 넣어두는 서랍 맨 밑바닥에 보면 야광스티커 있어요. 그거 꼭 헬멧이랑 아빠 작업복 조끼에다 붙이고 다니세요. 그래야 밤에도 안전하게 일하실 테니까요. 알았죠?”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한 채 오열했다.
어느새 아이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내 손을 가만히 붙들었다.
“이제 가요.”
나는 아이의 말에도 선뜻 뒤돌아설 수가 없었다.
곧이어 내 눈앞의 광경이 어두운 필터를 낀 것처럼 변했다.
어두컴컴한 아이의 방이 보였다. 막 잠에서 깬 남자가 서랍을 뒤지는 모습이 보였다. 서랍 밑바닥에서 야광스티커를 찾아낸 남자가 그것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재환아…!”
나는 울부짖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가야만 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뒤돌아섰다. 곧이어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다시 기억소환실로 돌아온 것이다.
내 곁에 앉아있던 아이가 쓰고 있던 헬멧을 조용히 벗고 밖으로 나갔다. 신기하게도 기억소환실을 나오자, 태블릿에 아이가 배를 탈 수 있는 기한이 떴다. 거기엔 붉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어라? 고작 한 시간 남았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한 시간 안에 아이가 걸어서 나루터까지 가기엔 무리였다. 아이도 그걸 알았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결국 나는 비장의 무기를 쓰기로 했다. 여자에게서 설명을 받고 시범 운전을 한 차례 해보긴 했지만 한 번도 실전에서 써본 적은 없었다. 아마 오늘이 이걸 써야 할 날인가 보다.
나는 아이의 손을 붙들고 급히 분실물 센터 앞의 자전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여자의 구름 보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나는 아이를 먼저 태운 뒤, 올라타고는 평행을 유지했다. 누군가를 보드에 태우는 건 처음인지라 아무래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꽉 물고 형 허리를 있는 힘껏 붙들어. 여기서 떨어지면…말 안 해도 알지?”
내 말에 아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이쯤 되자 내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대로 별 탈 없이 하늘을 날아올라야만 했다.
나는 보드의 전원을 켜고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보드가 힘차게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미 여자가 보드에 목적지를 설정해둔 덕분에 내가 별다른 조작을 하지 않아도 보드는 힘차게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구불구불한 언덕만 보이던 풍경이 차차 변해갔다. 곧이어 시커먼 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더불어 나루터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영혼들이 보였다. 나루터를 향해 다가가는 배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보드의 속력을 더 높였다. 곧이어 나루터에 다다르자, 나는 그곳을 지키고 있는 관리관에게 다가갔다.
“뭡니까?”
나는 대답대신 여자에게 받은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걸 확인한 관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실물 센터 관리자의 권한으로 해당 영혼에게 프리패스 탑승권을 적용하시겠습니까?”
“네. 배를 탈 수 있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영혼에겐 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다만 단기간에 너무 자주 남용하면 직책을 유지하는데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잘 알고 계시죠?”
관리관의 말에 나는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아이와 인연이 닿았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짓는 게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덕분에 맨 처음으로 배에 탑승하게 된 아이는 날 향해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형! 정말 고마워요!”
한 손에 요요를 든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향해 기쁜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