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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희 Oct 27. 2024

#8. 여기는 생애 마지막 분실물 센터입니다.(8)

-저승에서도 10대 소녀는 여러모로 위험한 존재다!

“하…. 미치겠다. 아니! 어째서 돌아올 땐 보드를 못 쓰는 건데?”


나는 옆구리에 보드를 껴봤다가 그걸 타고 바닥에 굴렸다가 혼자 난리를 피웠다. 애석하게도 제 역할을 다한 구름 보드의 배터리는 스르륵 꺼진 뒤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해서 나는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어버린 그것을 가지고 힘겹게 분실물 센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혹시 내가 가는 도중에 망자가 오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나는 이제야 명절에도 마음 놓고 가게를 비울 수 없다던 자영업자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그제야 여자가 구름 보드를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음 번엔 절대로 아무도 안 태워다준다. 나도 힘들다고!”


내가 어찌어찌 힘겹게 다시 분실물 센터로 귀환한지 얼마 안 되서였다.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아이가 불쑥 치고 들어왔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보였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내 동공이 제멋대로 흔들렸다.


‘또 어린애냐.’


불현 듯 뭉크의 절규하는 인간 모습이 떠올랐지만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쩌면 저 아이는 승선기한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물건 찾으러 왔구나. 이름이 뭐니?”


최대한 살갑게 물었음에도 아이는 말이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결국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와 볼펜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어쩌면 아이가 혹시 말을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일 지도 몰라서였다.


하지만 아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는 슬슬 답답해졌다.


“네가 말을 안 하면 귀신도 몰라. 나도 당연히 모르고. 그러니 네 인적사항을 말해주지 않겠어?”


나는 가급적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를 유지하려 애쓰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여기 원래 있던 언니는 어디 갔어요?”


그제야 아까 아이가 날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봤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럼 이 아이는 전에도 한 번 여길 온 적이 있었던 걸까.


“그 분은 잠시 일이 있으셔서 지금은 내가 여길 맡고 있어. 그러니 나한테 네가 원하는 사항을 말해주면 좋겠다.”


내 말에 아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들은 죄다 이렇게 까탈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존재인 걸까 싶었다.


아이는 쏜살같이 제 인적사항을 말하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태블릿에 아이의 인적사항을 검색했다. 다행히 물건이 검색됐다. 


“전에 왔을 땐 물건을 못 찾았니?”


내 말에도 아이는 잠시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이쯤 되자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혹시 내겐 말하기 껄끄러운데 여자에겐 말할 수 있는 내용을 뭔가 감추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사춘기 소녀에게 그럴 만한 일이란 건 필시 이성관계일 터였다.


“네 추억의 물건이 남자친구와 관련된 건가 보구나.”


내 말에 여자아이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점집 차리셔도 되겠어요.”


“뭘 고작 이런 걸 가지고. 그냥 이런 일 하다보면 감이라는 게 생기는 거지. 어디 보자. 그럼 네 물건을 찾으러 가볼까?”


나는 13-A구역에서 손쉽게 아이의 일기장을 찾았다. 일기장엔 앙증맞은 분홍빛 하트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새삼 소녀감성이란 게 이런 거라는 걸 은연중에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럼 기억소환실로 갈까?”


내 말에 아이는 군말 없이 내 뒤를 따랐다. 나는 아이에게 절차를 설명해준 뒤, 헤드셋을 씌워주었다. 일기장을 손에 꼭 쥐고 있던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나랑 여기 같이 안 있어요?”


순간 나는 내 본분도 잊은 채 여자아이의 이마를 한 대 세차게 때릴 뻔 했다.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란 말인가. 이래 뵈도 아직도 20대라고 보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미소를 지었다. 한껏 위로 끌어올린 입꼬리 언저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르르 떨렸다.


“난 굳이 네 추억찾기에 동행할 필요가 없단다. 너도 어차피 혼자서 조용히 네 추억을 돌아보고 싶은 것 아니었니?”


“아뇨, 그렇지 않아요.”


내 질문에 뒤이은 아이의 대답하는 목소리가 생각보다 명료했다. 나는 이게 어찌된 영문이가 싶어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이 나이대 여자아이들의 속내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니?”


결국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내가 아이에게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해야 할 참이었다. 이토록 대하기 난감한 망자는 이 아이가 처음이었다.


아이는 잠시 말없이 나를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아마도 내게 속내를 밝혀도 괜찮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그저 차분히 기다렸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이윽고 말할 결심을 굳혔는지 아이가 헛기침을 했다. 나는 아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바짝 기울였다.


“죽기 전에도 전 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곤 무척 외로웠거든요. 그런데 죽고 나서 추억을 찾는 순간에도 내 곁에 아무도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요.”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대답에 순간 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혹시 아이는 학교폭력을 당했던 걸까. 

나는 조심스레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내가 잠시 옆에 앉아도 될까?”


“그럼요, 물론이죠.”


아이의 흔쾌한 동의를 얻은 뒤, 나는 아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추억을 찾다보면 네 추억과 관련된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를 테고. 그 순간의 넌 아마 외롭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거야.”


내 말에도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아이의 추억소환여행에 동행하기로 결심했다. 보통은 이렇게 망자의 추억여행에 동참할 일이 없건만.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설마 재훈이 그 녀석이 다른 망자들에게 여길 소문이라도 낸 건 아니겠지?’


그러나 나는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나와 만난 뒤의 재훈이는 한시도 나와 떨어진 순간이 없었다. 이곳에 들어선 이후로 다른 망자들을 만날 기회 자체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이제야 한 가지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내게 인수인계할 때 여자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분실물 센터는 이곳 한 곳만 있는 게 아니라고. 사람마다 현생을 살 때 저질렀던 업보에 따라 분실물 센터를 찾기 쉬운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그야말로 사막같은 황무지에서 시작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이건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일종의 편의점 체인같은 거였다. 어느 지점은 붐비기도 할 것이고 어느 지점은 한가롭기도 한 것이다. 다만 신기한 건 망자가 어느 지점을 가도 자신의 유품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여자아이는 이곳 말고도 다른 지점들을 찾아갔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방금 전 내게 했던 것과 같은 제안을 다른 관리자들에게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잠시 생각을 곱씹던 나는 이윽고 결심을 굳혔다. 어찌됐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을 마감한 저 어린 아이에겐 이 낯선 곳에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나이지 않을까.


게다가 이미 난 방금 전에 한 차례의 소환여행을 마친 뒤였다. 까짓 거 한 번도 했는데 두 번이라도 못할 리가 없었다. 구름 보드를 타는 것만 제외하면 그래도 해볼 만 했다. 


‘오늘따라 하드모드네. 하긴, 알바할 때도 가끔 정신없이 엄청나게 바쁜 날이 있잖아? 어쨌거나 손님이 원하는 거니까 한다!’


나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을 굳혔다. 다만 공짜는 안 될 말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추억 찾기 여행에 동행해줄 수는 있긴 한데.”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아이가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데, 뭐요?”


“아까 나한테 아저씨라고 했던 말은 취소해라. 나, 결혼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총각 귀신이야.”


내 말을 들은 아이의 눈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커지더니 그에 비례해 입이 쩍 벌어졌다. 나는 새삼 아이가 살아있을 적에 저 커다란 입으로 제법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무심코 했다. 나와 눈을 의도적으로 마주친 아이가 부러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아깐 제가 초면에 실례가 많았네요. 너무 죄송해요! 그럼 제 부탁 들어주시는 거죠?”


아이는 어느새 애교섞인 말투를 하며 눈웃음을 쳤다. 이거 이제 보니 정말 위험한 아이였다! 그러니 얼른 처리해서 후딱 여기서 내보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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