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희 Oct 27. 2024

#6. 여기는 생애 마지막 분실물 센터입니다.(6)

-추억은 때론 가슴 아픈 비극을 품고 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보기 드문 인내심에 새삼 감탄했다. 지금 저 아이에겐 본능적인 식욕을 넘어선 보다 고차원의 욕구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아이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을 상대가 새삼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순간 내 가슴 언저리가 지잉 하고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어라, 방금 뭐였지?’


분명 내가 뭔가 중요한 걸 떠올린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나는 지금 상황에 충실하기로 했다. 나는 아이의 모습을 여전히 계속해서 주시했다. 과연 아이의 요요는 이곳 어느 대목에서 등장하게 될지 나는 그게 기다려졌다.


이렇게나 부족한 살림이라면 아마 아이의 부모에겐 흔한 요요를 사주는 것조차 부담이 될 게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마냥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아마도 아이의 요구를 들어줬을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희미한 오토바이 배기통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느새 완전히 깜깜해진 골목길 아래를 올라오는 노란 불빛이 보였다. 곧이어 허름한 오토바이가 아이의 집 대문 앞에 다다르자, 시끄럽던 배기음 소리가 뚝 끊겼다.


“아빠!”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에게 매달렸다. 남자는 턱수염이 까끌까끌한 얼굴을 아이의 보드라운 뺨에 연신 비비며 기쁨을 표현했다. 


“저녁은 먹었지?”


남자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빠랑 같이 먹어야 맛있다고 했잖아. 얼른 와요.”


아이는 남자의 손목을 붙든 채 급히 집 안으로 그를 데려갔다. 남자는 아이가 여태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에 표정을 흐렸다가도 그와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다는 아이의 말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아이의 입에서 엄마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엄마랑은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게 아닐까 싶었다.


집에 들어선 두 사람은 작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고파서 밥을 연거푸 먹던 아이의 턱 주변에 밥알이 붙어있는 걸 본 남자가 그저 귀엽다는 듯 아이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나는 혹여 내게 자식이 있었다면 자식이 먹는 모습을 바라볼 때 저리도 기쁠지가 궁금했다. 이미 죽어버렸으니 내가 그 감정을 알 리가 영영 없을 테지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뒷정리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비록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버리는 좁은 공간일지라도 두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고 편안한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아이는 천장 벽지에 붙여놓은 야광별을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옆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이번 생일엔 뭐 사줄까?”


“아무것도 안 사줘도 된다니까 그러네.”


“그러지 말고. 아빠 돈 많이 벌어. 우리 재훈이 장난감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려고. 그러니까 사양하지 말고 말해봐. 얼른.”


남자의 말에 아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럼 요새 유행하는 포켓몬 요요 가지고 싶어. 캐릭터는 피카츄로.”


“알았어. 그걸로 준비할게.”


남자는 어둠 속에서도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만이 또렷이 보이는지 그저 아이의 뺨을 계속 어루만질 따름이었다. 곧이어 아이가 몇 마디 재잘거리는가 싶더니 아이와 아빠가 나란히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뒤, 평소보다 배달 일을 일찍 끝마친 남자는 동네의 문구점을 순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구점을 나설 때마다 남자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아마도 인기 있는 장난감이라 이미 품절이 되 버린 게 틀림없었다.


결국 남자는 일단 근처 베이커리에서 산 케익을 음식물 보관함에 넣은 뒤, 이웃 마을까지 오토바이를 몰았다. 몇 군데의 문구점을 들르고 또 허탕을 친 남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문구점을 나서려 했을 때였다. 문구점 주인 아주머니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혹시 대형마트에 한 번 가 봐요. 거기라면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남자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즉시 마트로 향했다. 문구점보다 몇 배는 큰 마트 안에서 이리저리 헤매던 남자는 드디어 장난감 코너에서 기어이 요요를 찾아냈다.


그제야 남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그건 어떻게든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아이가 원하는 걸 사다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감각이 뒤섞인 미소였다.


남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토바이를 요란하게 몰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은 밤 아홉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남자는 아무리 인내심이 많은 아이라 해도 지금 이 시간이면 아마도 지쳐서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아이는 몇 시간 전, 예고도 없이 집을 불쑥 찾아온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와의 간헐적인 만남은 늘 아이에게 불쾌한 기억만을 남겼다. 분명 미치도록 보고 싶은 얼굴이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한 엄마는 아이에게 냉랭했으며 독단적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느닷없이 로봇장난감 상자를 아이에게 건넨 여자는 아이더러 자신을 따라가자고 말했다. 심지어 이런 거지 소굴같은 곳에서 사는 게 지겹지도 않냐며 아이를 격하게 몰아세웠다.


아이는 그런 여자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말해도 여자는 그걸 가뿐히 무시해왔다. 


심지어 집을 떠날 때도 여자는 자기만 남겨두고 가지 말라는 아이의 말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매정하게 앞만 보고 갔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듯 갑자기 아이에게 살갑게 구는 이유가 뭘까 싶었다.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그 이가 새로운 아파트에 청약 넣을 건데 주택청약 당첨될 때 아이가 있으면 될 가능성이 높대. 너도 이런 집구석보다야 새 아파트에서 사는 게 훨씬 더 낫지 않겠어?”


여자는 하얀 얼굴과 대조적으로 강렬한 빨간색 루즈를 바른 입술을 제멋대로 경망스럽게 움직여댔다. 아이는 그런 여자의 눈길을 피했다. 아이에겐 지금 사는 집이 천국이고 희망이자 행복이었다. 이제 와서 모르는 남자를 아빠라 부르며 살고 싶진 않았다. 


아이를 몇 번 타이르던 여자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서자, 여자는 아이를 흘겨보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버렸다.


아이는 마치 과거의 자신처럼 외로이 남겨진 로봇 장난감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아이가 바랐던 건 저딴 장난감이 아니었건만. 아마도 여자는 끝까지 아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채 살아갈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무시했을지도 몰랐다.


괜한 일에 신경을 썼더니 아이는 갑자기 아빠가 더 보고 싶어졌다. 놀란 아이를 넓고 따스한 품에 끌어안은 아빠가 다독여주면서 다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아이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미 아홉시가 넘어 있었다. 오늘 아이의 생일파티를 위해 분명 평소보다 더 일찍 올 거라고 했건만.


아이는 혹시라도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불안한 상상들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그 부피를 키웠다.


결국 아이는 집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이 제법 서늘했지만 아이는 개의치 않았다. 아이는 곧장 비좁은 골목길을 내려간 뒤, 큰 도로를 향해 달렸다. 


아빠의 오토바이가 늘 그 길을 통해 집에 온다는 걸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차도를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라도 아빠와 비슷한 체격의 오토바이 운전자를 보면 아이의 눈이 기대감으로 확 커졌다. 이내 아빠가 아닌 걸 알고는 실망한 아이의 동공이 스르륵 작아졌다.


그러기를 몇 차례나 거듭했을까. 멀리서부터 아이의 귓가에 익숙한 오토바이 배기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곧바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뛰었다. 


아빠가 탄 오토바이가 바로 맞은편 차도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평소 다니던 차도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는 아빠를 향해 손을 마구 흔들었다. 아이를 발견한 아빠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라며 손짓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잠깐의 시간마저도 참기가 힘들었다.


결국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려 했다. 그때 아빠의 입에서 그간 듣지 못했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재훈아, 안 돼!”


아이가 놀라서 왼쪽을 돌아본 순간, 저만치서 맹렬하게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아이를 덮쳤다. 


끼이익 콰아앙!


아이는 차에 부딪힌 제 몸이 공중으로 순식간에 날아오르던 순간을 기억했다. 사람이 이렇게 날 수도 있나 싶은 생각을 아주 잠깐 했던 것 같다.


뒤이어 이어지는 순간은 온갖 고통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이의 몸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닿자마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제 뒤통수에서부터 피가 줄줄 새어나온다는 걸 느꼈다. 제 몸이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다는 걸 아이는 인지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