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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희 Oct 27. 2024

#5. 여기는 생애 마지막 분실물 센터입니다.(5)

-망자와 같이 추억 소환실에 갇혀버릴 줄이야!

“어라? 이상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나는 22-E와 24-E구역을 비롯해 23-D, 23-F구역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의 요요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미치겠네.”


며칠 간 일을 처리할 땐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나는 난감해졌다. 나는 가만히 상황을 곱씹었다. 내 생각엔 분명 일주일 전에 물건이 들어왔다면 내가 이 곳에서 일을 하기 전인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내가 정리하기 전에 이미 그 요요가 여자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Q&A 코너에 접속해 상담사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상담사가 답변했다.


-혹시 물건 입고 날짜가 십 일이 넘지는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담당자 분께서 장기미반출 목록으로 인지하고 따로 폐기처분 목록함에 분류하신 것 같습니다. 67-S 구역 쪽을 찾아보세요.


-장기미반출이요?


-망자가 오랫동안 물건을 찾으러 오지 않은 물품들은 따로 별도의 공간에 분류하게 됩니다. 그래야 다른 망자들의 요청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


상담사의 설명을 듣고 있던 나는 어쩐지 얼른 아이의 요요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이의 요요가 그곳으로 옮겨졌다는 건 아이가 죽은 지 꽤 시일이 지났다는 거였다. 그러니 아이에게 빨리 물건을 건네서 아이가 배에 탈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그게 내가 여기서 할 일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67-S구역을 향해 달려갔다. 그건 내가 초등학생 시절, 생전에 좋아하던 여자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단거리 달리기를 열심히 뛰었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해당 구역에 도착한 나는 상자에 적힌 입고 날짜를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곧이어 아이의 물건이 입고된 날짜가 적힌 상자가 보였다. 나는 상자를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재빨리 밖으로 끄집어냈다. 


애석하게도 첫 번째 상자에선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내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던 아이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제 요요, 찾을 수 있는 거죠?”


“그럼. 걱정하지 마. 내가 이 일을 맡은 이후로 여태 물건을 못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너, 형 믿지?”


어쨌거나 방금 그 말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제법 진지한 말투로 말하면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이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물건이 입고된 날짜가 적힌 상자는 세 개가 더 있었다. 나는 가까운 것부터 차례로 상자를 열고 일련의 작업들을 반복했다. 두 번째 상자까지도 여전히 요요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실망하긴 일렀다. 우리에겐 아직 까지 않은 마지막 상자가 있었으니까.


문득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던 말이 생뚱맞게 떠올랐다. 혹시라도 마지막 상자에마저 아이의 요요가 없다면 그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도저히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 아이는 오직 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듯 그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빈 손으로 그냥 돌려보내겠는가.


‘제발 여기 있어라!’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채 마지막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내려놓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상자 안에 담긴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 서서히 상자 밑바닥이 드러날 즈음, 나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찾았다!”


“형! 완전 고마워요!”


아이가 내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몸에선 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아이의 등을 두어 차례 두드려주었다. 정말이지 물건을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와 아이는 지금 서로의 몸을 맞대고 감촉을 느낀 거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여자와 악수를 할 때도 선명한 촉각을 느꼈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내게 손을 내미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요요를 올려놓았다.


“이거였구나.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물건이.”


내게 요요를 건네받은 아이는 마치 잊어버린 비상금이라도 찾은 것처럼 요요를 빤히 들여다봤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도 생각에 잠겼다. 아마 나도 내 물건을 여기서 찾았다면 방금 저 아이처럼 순수하게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잠시 요요를 가지고 만지작거리던 아이는 이윽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찾았으니까 제가 이걸 가지고 가도 될까요?”


“그냥 내줄 수는 없고 그 전에 한 가지 작업이 필요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말을 마친 나는 아이보다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내가 도착한 곳은 기억소환실이었다. 그곳은 대학생 시절 잠깐 이용했던 도서관의 비디오관람실과 흡사했다. 

분실물센터에서 자신의 유품을 찾은 망자는 기억소환실에서 유품과 관련된 소중한 기억을 한 차례 환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추억과 관련된 소중한 이의 꿈으로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


“여기 앉아서 요요를 손에 쥐고 눈을 감아봐. 그리고 요요와 관련된 추억을 가만히 떠올려보는 거야.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아이의 호흡이 차차 느려지더니 일정해졌다. 요요를 쥔 아이의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한참을 말이 없던 아이가 슬쩍 눈을 떴다. 아이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잘 안 나요.”


아이는 내게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아이의 눈빛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느닷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차분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기가 힘든 것도 나는 이해가 갔다.


“요요를 사준 사람에 대해서 떠올려보자. 혹은 요요를 가지고 놀던 모습을 네게 소중한 사람에게 보여줬던 순간도 좋아. 그게 아니라면 처음으로 요요를 샀을 때를 생각해도 좋고.”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연스레 아이의 머리에 헤드셋을 씌웠다. 여자의 말에 따르자면 이걸 씌워야 이승에 있는 추억소환자에게도 아이의 회상이 꿈으로 전달된다고 했다.


작업을 마친 나는 가만히 기억소환실을 나서려 했다. 사실 여긴 거의 코인노래방 수준의 비좁은 곳이어서 내가 오랜 시간 앉아있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나는 아이의 회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문이 열리질 않았다.


‘어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하던 나는 그제야 여자가 내게 해주었던 충고를 떠올렸다. 그건 망자가 추억소환을 하기 전에 기억소환실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반강제로 망자의 추억여행에 동참하게 된다고 했다. 


아마도 망자는 자신만의 추억 찾기에 모르는 사람을 끌어들이기를 껄끄러워할 테니 타이밍을 잘 맞춰서 나와야 한다고 했었다.


‘어쩔 수 없지. 기왕 이렇게 된 거.’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했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아이의 손 위에 내 손을 가만히 얹고는 눈을 감았다. 


***


내 눈앞에 보이는 모습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거라 그런지 몰라도 칙칙한 필터가 씌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왕이면 총천연색으로 칼라풀하게 보여주면 좋으련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어스름이 내려앉은 골목길에 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봤던 모습보다 어려보이는 아이는 춥지도 않은지 얇은 내복 차림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저러다 감기 걸리는데. 나는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이것이 회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골목길 아래를 유심히 쳐다봤다. 아마도 기다리는 이가 거기서 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이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이더러 이제 그만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분명 여자는 내게 경고했었다. 혹시라도 망자의 추억소환에 함께 하게 된다면 아무 것도 관여하지 말라고. 내가 개입하는 순간 망자의 추억이 변질될 수 있고 온전히 물품을 수령하는 과정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나.


결국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전봇대 뒤에서 아이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제 풀에 지친 아이가 대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대문을 열려다가 내 손이 대문을 막힘없이 통과하는 걸 보고는 그제야 내가 죽은 상태라는 걸 다시금 인지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개량형 전원 주택의 모습이 펼쳐졌다. 시멘트 마감을 한 바닥 위에 우뚝 솟은 수도꼭지와 그 앞에 놓인 빨간 고무대야가 있었다.


아이는 신발을 벗고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앉은뱅이식탁에는 단촐한 식사가 차려져있었다. 김치, 김, 간장, 계란후라이에 멸치볶음과 무말랭이. 딱 봐도 아이가 좋아할 법한 구성은 아니었다. 


아이는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려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저 반찬으로 밥을 먹기엔 식욕이 영 당기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오판이었다. 곧이어 선명하게 들려오는 아이의 요란한 뱃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아이는 배가 무척 고픈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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