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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희 Oct 27. 2024

#3. 여기는 생애 마지막 분실물 센터입니다.(3)

-수상한 저승사자와의 거래

여자의 말을 듣자 새삼 내 비루하고 억울한 처지가 현실로 느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마 나는 이 모든 게 다 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건만. 


그러나 나는 이미 죽어버린 존재였고, 여자는 잔인하게도 내가 처한 현실을 내게 확실히 일깨워주고 있었다. 


“맞습니다. 전 여기서 제 물건을 꼭 찾아야만 해요.”


“그렇군요. 일단 이름과 나이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생년월일도요.”


그러고 보니 여자는 한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그걸 보자 나는 저승세계도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빠르게 적응하는 건가 싶은 생각을 했다.


“차민재. 나이는 서른 두 살. 19930202입니다.”


여자는 내 인적사항을 입력하더니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슬슬 불안감이 치밀었다. 혹시 여기엔 내 물건이 보관되어 있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나는 애초에 여기 올 필요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체 무엇 때문에 여자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지 이유가 너무도 궁금해졌다.


“왜요? 제 물건이 여기 없습니까?”


“아뇨. 확실히 망자 데이터베이스에도 뜨고 당신의 소지품도 이곳으로 넘어온 걸로 보이는데 말이죠. 희한하게도 물건을 반출할 수가 없다고 나와요.”


“그게 무슨 말이죠?”


“잠시만요.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


여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태블릿 화면을 이리저리 조작했다. 곧이어 여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나는 아까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여기서 정말로 내 물건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여자는 구석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친 여자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런 경우는 여태 제가 여기 근무하면서 처음 있던 일이예요.”


여자는 자연스레 나를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커피 드시겠어요? 아니면 코코아? 녹차?”


“아뇨 됐습니다. 그보다 왜 제 경우에만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확실한 상황 설명을 해주시죠.”


나는 여자가 무슨 말을 늘어놓을지 한시라도 빨리 그걸 듣고 싶었다.


“서비스센터 쪽에 물어봤더니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긴 한데 가끔씩 발생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서로 다른 망자가 똑같은 물건을 원하는 거죠.”


“네…? 그런 경우가 있나요? 그냥 자기 소유의 물건을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간혹 망자간에 서로 그 물건이 자기 것이었노라고 생각할 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를테면 누군가의 물건을 훔쳤는데 자기 물건을 도난당한 걸 모르는 망자가 그 물건을 생애 가장 소중한 유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도둑도 그 물건을 가져가고 싶어 하면 서로 간섭충돌현상이 생겨서 이렇게 물건의 행방을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나는 여자의 난해한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었다. 지금 나의 기분은 솔직히 말해서 그냥 모든 걸 죄다 뒤집어엎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렴 내가 알게 뭐란 말인가. 결단코 난 평생 살면서 누군가의 물건을 훔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세한 사정이야기야 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저는 제 물건을 가지고 가서 배를 타야 합니다. 제가 주어진 기한 안에 배를 못 타면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


나는 부러 세게 나갔다. 거기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처한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 나름의 계산이 깔려있었다. 여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마에 손을 짚었다. 아무래도 진상에게 잘못 걸린 것 같다는 속내를 내포한 똥씹은 표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나도 저승까지 와서 갑질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먼저였다. 솔직히 다들 제 코가 석자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또 있었다. 이곳엔 내 소유의 물건이 고작 한 개밖에 없는 걸까? 평소 살면서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은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뒤, 말을 꺼냈다.


“그럼 중복되는 물건 말고 제 소유의 다른 물건으로 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는 안 되세요. 이게 이미 망자분의 영혼께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신 물건이 데이터베이스에 자동으로 입력되는 거라서요.”


“그러니까 다른 걸로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거네요.”


“그렇죠.”


나는 슬슬 뒷머리에서 뜨거운 김이 치솟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내 운명의 시계는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에서 피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을 거라는 내 기대감은 이곳에 온 뒤로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여자는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게 아무래도 초조한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라 텁텁해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얼마나 대치 상황이 이어졌을까.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솔직히 정체불명의 여자 앞에서 이런 경우 없는 행동까진 하고 싶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엇보다 환생이 우선이니 별 수 없었다.


나는 과감하게 양팔과 다리를 쩍 벌린 채 바닥에 드러누웠다. 사실 아까부터 쉬지도 않고 냅다 여기까지 달려온 거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소식이 트리거가 되어 날 완전히 넉다운시켰다.


여자는 바닥에 드러누운 나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에서 해결을 보지 않으면 배에 타는 건 불가능했다.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해서라도 기어이 원하는 걸 얻어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날 여전히 빤히 내려다보던 여자가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당신에게 제안 하나를 할게요.”


그 말에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땅바닥에서 엉덩이를 뗀 건 아니었다. 여자가 내게 무슨 제안을 하는지에 따라 나는 얼마든지 다시 바닥에 드러누울 참이었다.


“그러지 말고 제대로 일어나서 들어요. 결코 당신이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까.”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내 말에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내게는 저승사자마저 진이 빠지게 만드는 기가 막힌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몸을 완전히 일으키지 않는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마치 엄숙한 비밀선서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대신 여기 일을 맡아줘요.”


순간 나는 드디어 내 청각에 이상이 생겼구나 싶었다. 하긴 이미 죽었으니 보통의 상황이라면 잘 기능했을 신체들에도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저런. 당황스러울 법도 하죠. 사실 전 얼마 안 있으면 환생할 수 있어요. 드디어 이곳에서 주어진 임기를 다 채웠거든요.”


“그런데 그것과 제 일이 어떻게 연관이 되는 겁니까?”


“인간세계에서도 똑같지 않나요? 자신이 일을 맡은 기간 동안 아무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목표를 달성하기가 용이하죠. 난 당신의 민원 따위에 발목이 잡히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건 나와 당신 사이의 일종의 비밀 거래인 셈이죠.”


“그래서 나더러 당신 대신 이곳에서의 일을 맡아달라는 겁니까? 그러면 당신은 내게 뭘 해줄 수 있죠?”


“내가 가진 권한으로 당신이 배에 탈 수 있게 해줄게요. 내겐 프리패스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그 말을 어떻게 믿죠?”


나는 여전히 의심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골 때린다는 듯 뒷목을 잡았다.


“정말 철두철미하시네요. 사람이 원래 이렇게 까칠해요?”


“아뇨. 하지만 이건 내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서요.”


“무튼, 내 말을 믿어요. 아까 말했다시피 난 조만간 환생할 거예요. 그런데 망자를 속여서 부당한 거래를 하려고 했다는 게 들통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영영 환생은 꿈도 못 꾼 채 곧장 징벌의 소각로에 무자비하게 던져지겠죠. 그건 상상만으로도 진짜로 엄청 끔찍한 일이거든요.”


여자는 매우 소름끼치는 것이라도 눈앞에서 목격한 것처럼 두 팔로 제 몸을 꽉 끌어안았다. 나는 자칭 저승사자라는 여자가 무언가에 겁을 내고 있는 이 상황이 마치 블랙코미디같다고 여겼다.


“그럼 믿을게요. 내가 여기에서 당신 대신 얼마나 일을 하면 되죠?”


“정확히 사십구일 동안 해주면 돼요. 그건 당신이 배에 타는 게 가능한 기간이기도 하죠.”


“잠깐만요. 그럼 내가 죽고 아직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나보군요.”


“맞아요. 그리고 이승에서의 시간과 이곳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죠. 당신이 내 대신 일을 잘 맡아주면 내가 당신을 특별히 내 전용 구름보드에 태워서 선착장까지 빠르게 바래다줄게요.”


“조금이라도 늦으면 난 환생할 기회를 놓치고 말거예요.”


“그건 절대로 염려하지 말아요. 혹시라도 배가 떠났다 해도 내가 어떻게든 책임지고 당신을 배에 꼭 실어줄 테니까. 이건 전적으로 서로 신뢰가 필요한 일이에요,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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