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센터에서 만난 곱디 고운 저승사자!
상대는 아마 죽기 전에도 무척 오지랖이 넓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쏟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굳이 그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내게 찾아온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해야만 했다.
“물건을 구하는 곳이 따로 있나요? 아니, 애초에 왜 물건을 구해서 저 배를 타야만 하죠?”
“저 배는 죽은 자의 혼을 싣고 저승으로 인도하는 망자의 배예요. 저 배에 49일 안에 타지 못하면 환생하지 못하고 영원히 영혼이 소멸되죠. 그래서 사람들이 기를 쓰고 어떻게든 배에 타려는 거예요.”
그 설명을 듣자 그제야 사람들이 아득바득 몰려들어 배에 타려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환생을 간절히 바라는가. 혹시 환생한다 해도 사람이 아니라 바퀴벌레 같은 존재로 환생한다면 그건 절대 사양이다.
바퀴벌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살아있을 적에 난 그 녀석들을 가차없이 때려잡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한 번 인간으로 살았으면 됐지 뭘 또 굳이 아등바등 환생을 하려고 애를 써야 하나 싶어졌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상대는 그런 내 속내를 알아챘는지 말을 덧붙였다.
“인간으로 살 때 큰 죄를 짓지 않았다면 어지간해선 다시 인간으로 환생한대요. 망자들이 배에 기어이 타려는 이유가 아마도 그걸 거예요.”
“인간으로 환생…이라.”
나는 살았을 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지냈는지를 기억할 수 없었기에 그것이 좋은 일일지 아닐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내가 각고의 번거로운 과정들을 거쳐서 환생을 다시 할지 말지에 대해서 확고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은근슬쩍 말을 덧붙였다.
“저 배를 타지 못해 잔류하는 망자들은 한데 모여서 커다란 불구덩이에 던져진대요. 거기서 온갖 괴로움과 고통을 겪다가 그대로 소멸되는 거죠. 그 고통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세상을 살면서 저지른 잘못의 열배 운이 나쁘면 백배 쯤은 된다더군요.”
“……!”
그렇다면 이건 가만히 좌시할 문제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살생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최소 수백마리 이상의 모기들을 때려잡았고, 육식을 즐겨 했으며 내 손에 의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바퀴벌레와 초파리들도 꽤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간들에 백배를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방금하신 그 말, 진짜로 확실한 거죠?”
내 말에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은 마당에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겠어요. 혹시라도 배에 못 타면 당신에게 거짓말한 죗값까지 더해져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될 텐데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꾸릿한 냄새가 느껴졌다. 처음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미처 후각이 발동할 새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주 생생하고 확실하게 느껴졌다. 분명 그건 내가 즐겨 했던 바비큐 파티에서 맡았던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타는 냄새와 얼추 비슷했다. 어쩌면 더 비릿하고 역겨운 것 같기도 했다.
“이거, 혹시 사람 아니 영혼이 타는 냄새 맞나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영혼이 어떻게 불에 탈 수 있나 싶었지만 일단 모든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내 말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벌을 받을 땐 육신을 입고 있었을 때처럼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대요.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불에 타죽는 거라잖아요. 그저 상상만으로 몸서리가 쳐지네요.”
그는 끔찍한 걸 보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내 앞의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당장 저 배를 탈 물건을 구해야만 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 물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근데 아무 물건이나 구하면 돼요?”
“당연히 안 되죠. 살아있을 때 소중한 추억이 깃든 물건이어야만 해요. 그러니 물건 종류가 영혼마다 제각각인 거죠.”
그제야 나는 사람들마다 들고 있던 물건이 달랐던 게 납득이 갔다.
“그럼 어디서 물건을 구해야 하죠?”
내 말에 남자는 하필 내가 여태 힘겹게 걸어왔던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올 거예요.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요. 얼마 안 가서 분실물 센터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분실물 센터죠?”
나는 곧장 몸을 일으키며 아마도 마지막일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망자들이 살아있을 땐 미처 잊고 지냈던 물건이라 분실물이라고 지칭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보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저도 거길 다녀오느라 무려 이십 여일을 써버렸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드라이플라워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나는 덩치 큰 남자가 궁상맞게 웬 말린 꽃다발인가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뭔가 저것에 얽힌 사연이 있겠지.
이제 더는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비로소 나는 환생이라는 게 아주 간절히 매우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미친 듯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아까 길을 헤맬 때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이미 내가 죽은 뒤로 며칠인지 모르지만 시간이 흘렀을 테고, 지금도 내가 배를 타기까지의 남은 기한을 표시한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시시각각 아래로 매정하게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까의 무기력한 발걸음은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 나는 무척 의욕에 차서 경보하듯 걷고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냅다 뛸까도 싶었지만 분실물 센터까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에 최대한 힘을 아껴야했다.
아까 남자 말로는 거의 이십 여 일이 걸렸다고 했으니 넉넉잡아도 편도 길로 십일 정도가 소요되는 길이다. 사람이 한 시간에 약 오리 정도를 갈 수 있다던가. 대략 시간당 이킬로미터 정도를 걷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온종일 걷는다고 쳐도 하루에 최대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약 이십킬로미터 즈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십일 정도라면 이백키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분실물 센터가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내 계산이 사실과 맞아떨어졌을지 아닐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
바삐 걸음을 옮긴 덕분인지 남자가 말한 갈림길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왼쪽으로 길을 틀었다. 생각없이 걷고 있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춰 세웠다.
‘혹시 그 남자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지?’
오른쪽으로 가야만 분실물 센터가 나오는데 내게 부러 왼쪽이라고 잘못 알려줬을 가능성이 있었다. 남자가 왜 그러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하겠다.
아까 배를 타려고 난리를 치던 영혼들만 해도 족히 수백명이었다. 그들을 실을 배가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든 사십 구일이 지나기 전에 배를 타려면 한 명이라도 경쟁자를 떨쳐야 탈 수 있을 확률이 올라갈 터였다.
‘그렇다 해도 배를 못 타면 남자 말대로 죄를 더 짓는 일이 될 텐데.’
이미 죽어버린 상태에서 지은 악행도 죗값에 포함된다면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다만 나로서는 그걸 알 길이 없었다. 주위엔 붙잡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판단은 오로지 내가 내려야만 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래도 남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일단 이곳으로 걷다 보면 나처럼 분실물 센터로 가고자 하는 영혼들이 보일 거다. 나 말고 아무도 보이지 않으면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오는 걸 고려해보기로 했다.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니까.
계속 주위를 살피며 걷고 있는데 주위가 점차 더 어두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고 여겼는데 더 어두운 상황을 접하고 보니 아깐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주변을 분간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면 그땐 쉬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체력을 비축해야 계속 힘을 내서 걸을 수 있을 테니까.
길가에서 노숙인처럼 잠을 청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어차피 이미 죽어버린 마당에 누군가 날 더 죽일 수도 없으니 뭐가 겁나겠는가.
그래도 기왕이면 걸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걷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저만치 앞에 시골의 마을회관 정도 사이즈로 보이는 건물 하나가 보였다. 설마하니 벌써 그 곳에 도착한 걸까.
그렇다면야 좋은 일이지만 막상 내 생각보다 분실물 센터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서 적잖이 놀랐다. 역시 아까 그 남자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건물 바로 앞에 다가서자, 문패에 또렷한 검정 궁서체 글씨로 분실물 센터라고 적힌 게 보였다. 나는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여기까지 기어이 잘 찾아왔으니 앞으로 일도 잘 풀리겠지.
게다가 체감상 나루터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사십구일까지 내가 배를 탈 수 있을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까웠다.
나는 다소 안심한 태도로 건물 안에 들어섰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나더니 서서히 내부가 보였다. 허름한 건물 외부와 달리 내부는 정갈했다. 게다가 사방의 벽을 둘러싼 선반들 위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마치 진기한 물건을 처음 접한 아이처럼 홀린 눈빛으로 선반을 향해 다가갔다. 분명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연식이 오래되었을 그 물건들에서 놀랍도록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물건들을 둘러보며 내 눈에 익숙한 물건을 찾으려 애를 썼다. 물건만 얼른 찾으면 금방이라도 배에 올라타서 환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선반에 놓인 숱한 물건들을 죄다 들여다봐도 내 물건이 도통 보이질 않았다. 나는 슬슬 불안해졌다. 여기서 물건 찾다가 시간을 다 버리는 건 아닐까.
내가 조바심을 느낄 때쯤 뒤에서 누군가의 날선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자, 거기엔 아까 검표원과 비슷한 검정옷을 입은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분실물 센터를 지키는 저승사자 강마리예요. 당신은 망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