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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희 Oct 27. 2024

#4. 여기는 생애 마지막 분실물 센터입니다.(4)

-그렇게 어이없이 분실물 센터 근무를 하게 되었다..

여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 뒤 주먹을 내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여자가 내민 손에 내 주먹을 슬쩍 맞붙였다.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여자는 내게 그곳에서 일하면서 묵을 숙소를 안내했다. 거긴 원룸 정도의 크기였는데 침대와 작은 TV, 냉장고 등이 있었고 좁긴 하지만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도 나름 갖춰져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일을 하는 것 치고는 묵는 곳의 환경이 열악하네요.”


“나도 내가 지은 죗값을 씻으려 이 일을 하는 거라서요. 그러니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을 할 수 없는 처지랍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게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밀었다.


“여기 보면 하루 동안 분실물 센터에 입고된 망자들의 유품 목록이 쭉 떠요. 그것들이 확실히 들어왔는지 검수를 잘 한 뒤에 체크리스트에 표시해야 해요. 그리고 맡긴 물건을 찾으러 온 망자들이 가져간 물건은 반출 목록대장에 기입해야 해요. 남아있는 물건과 장부에 기재된 내용이 다르면 무슨 일이 생길지는 자세히 말 안 해도 알겠죠?”


“그런데 만에 하나 나같은 경우가 생기면 어떡해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분명 물건이 입고됐는데도 찾기 힘든 경우 말예요.”


“그럴 땐 여기 Q&A를 눌러요. 그럼 저승세계 망자운영관리본부 상담소로 연결이 되니까요. 문의사항을 묻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처리하면 돼요.”


그 뒤로도 나는 여자가 말해주는 내용을 빠르게 머릿속에 입력했다. 모든 인수인계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여자는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라도 모르겠으면 주저하지 말고 Q&A를 이용해요. 나도 처음엔 하루에 몇 번이고 거기에 전화를 걸어서 그곳 사람들을 귀찮게 했거든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백팩을 어깨에 멨다. 여자는 머리 위로 양손을 한껏 치켜들더니 요란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과연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 모든 근심을 짊어진 것처럼 엄숙한 표정을 짓던 그 여자가 맞나 싶었다.


“그럼 행운을 빌어요. 아마 당신같은 케이스만 조심하면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을 테니까.”


여자의 말에 빠직 이를 갈았지만 어느새 여자는 사라진 뒤였다. 나는 그제야 여러 사연이 담긴 물건들로 둘러싸인 무덤같은 곳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혹시나 망자들이 오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슬슬 그곳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는 여자가 건네준 태블릿에 담긴 물건 대장 목록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놓여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사람의 인적사항을 입력하면 그 사람의 유품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그럼 나는 정해진 구역으로 가서 물건을 꺼내 오고 망자에게 서명을 받은 뒤 물건을 건네주면 되는 거였다.


나는 최근에 반입된 물품의 소유주들의 인적사항을 가지고 몇 차례 물건을 찾는 연습을 해보았다.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것은 없었다. 이렇게나 쉬운 작업이 어째서 내 경우엔 통하지 않는 건지 억울한 마음이 다시금 솟구쳤다.


혹시나 싶어 나는 내 인적사항을 넣고 유품 조회를 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오류 메시지가 뜨더니 물건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카운터에 앉은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내가 바라는 물건을 다른 망자도 원하고 있다면 그 망자가 이곳에 올지도 몰랐다. 사실 비공개로 되어있는 탓에 나는 내가 스스로 지정한 유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짐작이 가지 않는 바였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그 순간의 나는 과연 어떤 추억을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을까.


진지하게 집중해봤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해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을 듯 했다. 차라리 내게 최근에 죽은 망자들의 명단 리스트같은 게 있다면야 그 중에서 나와 접점이 있을 만한 사람을 추려보겠지만 애석하게도 내겐 그걸 조회할 권한은 없었다.


그러니 꼼짝없이 바로 이 곳에서 나와 같은 물건을 가져가길 희망하는 망자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과연 그 망자가 사십구일 안에 여기에 모습을 드러내긴 할까. 그리고 혹시라도 그 망자가 와서 물건을 가져간다면 내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곱씹어 봐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나는 그저 조급한 마음을 달랜 채 그저 망자가 이곳을 찾아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이곳 분실물 센터에도 폐점 시간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분실물 센터가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 11시부터 새벽 5시였다. 


처음엔 이 곳이 지상에서처럼 노동법 적용을 받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런 시간을 굳이 정해놓았나 싶었다.


그 의문점은 얼마 가지 않아 자연스레 풀렸다. 비록 내가 육신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피곤함을 느끼는 건 여전했다. 그러니 내게도 쉬는 시간은 필요했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 내게 주어진 여섯 시간 동안을 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혹시라도 분실물 센터가 닫힌 시간에 누군가 이 곳에 도착했다면 그 망자는 얼마나 마음이 안타깝고 조급할까 싶었다.


나는 묵는 방의 TV채널을 돌려 CCTV를 볼 수 있는 화면에 고정시켰다. 거기엔 분실물 센터 내외부에 설치된 CCTV가 비추는 화면이 고스란히 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폐점 시간에 이곳을 찾는 망자가 있을까 싶어 자다가도 간간이 눈을 뜨고는 곧바로 CCTV화면을 응시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에 많아봐야 두 세 명 정도의 망자가 들락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이쯤 되자 나는 나루터에서 보았던 수많은 망자들이 허상이었나 싶은 착각마저 들었다.


분명 어떤 이유로든 목숨을 다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소중한 물건을 찾으러 이 곳에 올 텐데 왜 이렇게 한가한 건가 싶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의도치 않게 여유로운 나날들을 보냈다. 하루 하루 태블릿에 표시된 날짜가 흘러갔다. 처음엔 혼자서 선반을 정리하면서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물건을 쳐다보는 일에 재미를 붙였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잠만 자자니, 그것도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내게 배고픔이라는 감각은 있었지만 음식은 하나도 먹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다. 육신이 없는 상태이니 애초에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을 수밖에.


그 지경에 이르자, 나는 어떻게든 빨리 육체를 지닌 존재로 환생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나를 둘러싼 자극들은 온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할 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은연중에 나는 어서 빨리 사십 구일이 지나가기를 바라게 되었다. 딱 지금처럼만 별다른 일 없이 무탈하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여자가 말했던 대로 나는 배를 탈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심코 비어져 나오는 하품을 길게 내뱉은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오후 10시 50분이었다. 


“오늘도 이걸로 끝인가 보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슬슬 폐점 정리를 시작했다. 어차피 십분 사이에 망자가 찾아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무심코 내려다본 바닥에 놓인 먼지 뭉텅이가 내 발걸음에 맞춰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는 내일 아침에 물걸레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출입문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내가 막 문을 닫으려는 찰나, 저만치 앞에서 조그마한 검은 색 형체를 지닌 무언가가 급히 이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잠깐만요! 기다려주세요!”


앳된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닫으려던 문을 열고는 아이를 미소로 맞이했다. 이래뵈도 나는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어서 와. 운이 정말 좋았어. 보다시피 곧 문을 닫을 거였거든.”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시원한 물은 없나요?”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내게 물어왔다. 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네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넌 물을 마실 수 없어. 그건 너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마찬가지야.”


내 말을 들은 아이는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어깨를 흠칫 떨었다. 아마 자신이 죽었다는 걸 순간 까먹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저, 물건 찾으러 왔어요.”


아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이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태블릿을 조작했다. 곧이어 이주일 전에 입고된 아이 소유의 물건 사진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건 반짝이는 불빛이 나는 요요였다. 겉면에는 한때 유행하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군데군데 그림의 칠이 벗겨진 걸로 봐서는 아이가 그걸 자주 갖고 놀았던 모양이다.


“이거, 네 것 맞니?”


내가 묻자 아이가 환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찾으러 가볼까?”


나는 태블릿에 적힌 대로 23-E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은 며칠 전에 내가 물건들을 정리해둔 구역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아이의 요요를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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