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었다고...?
아마 누구든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고 당혹스러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처음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나 싶었다.
신을 원망했다. 아니, 어차피 이 지경에 이른 마당에 신을 찾아봤자 어쩔 텐가.
내가 눈을 떴을 땐 모든 것들이 지극히 내게 불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치 그 언젠가 어느 SF 영화에서 봤던 한 장면처럼, 나는 지독한 바이러스나 좀비로 인해 초토화된 도심 한 가운데의 황폐한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내 주변엔 정말로 나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건 내가 태어나서 느낀 두려움 중 가장 강렬한 느낌을 내게 선사했다. 아무도 의지할 이가 없다는 것,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느낌. 완전한 패배감과 이루 말할 길 없는 씁쓸하고 공허한 기분이 내 가슴을 맹렬히 파고들었다.
나는 자꾸만 내 심장을 얼리려고 드는 보이지 않는 서늘한 기운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두 팔로 몸을 바짝 끌어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내게 그리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 곳에 오기 직전의 상황이 어땠는지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지금 너무 춥고 무서울 따름이었다.
나는 따뜻한 곳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만치 앞쪽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때론 소박해 보이는 자그마한 불빛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위안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불빛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그것은 가까워질 듯 하면서도 거리가 좁혀질 기미가 없었다. 나는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왠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만큼 불빛이 멀찍이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여기며 나는 지친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겼다. 슬슬 배도 고팠다. 나는 먹을 걸 달라며 아우성을 치는 아랫배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저 불빛이 있는 곳까지만 가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되겠지 하는 무한 긍정의 힘으로 겨우 버텼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불빛을 향해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내 주위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표정도 나처럼 지치고 피곤해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묘하게도 그들 중 그 누구도 입 하나 벙끗하지 않았다. 그저 불빛을 향해 몰려드는 나방처럼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나는 문득 저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몰려들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장딴지에서부터 올라오는 저릿한 기분이 내 호기심을 탁 틀어막았다. 지금은 그딴 걸 궁금해 할 때가 아니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듯 아까부터 내 다리는 땅에 들러붙어서 떨어지기를 거부했다.
그래도 아까보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다면 적어도 나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불빛이 나는 곳이 한층 더 가까워지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조그마한 선착장이었다. 차라리 나루터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항구에서 보듯 시설이 잘 갖춰진 호화로운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나무토막 몇 개로 이어붙인 데크는 얼핏 봐도 무척 허술해보였다.
이미 그 곳에는 나 말고도 도착해서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수많은 탑승객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주위가 한없이 고요했다.
잔뜩 낀 안개만큼이나 무겁고 텁텁한 침묵이 사람들의 입을 바짝 틀어막았다. 신기하게도 이렇듯 사람이 한데 몰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까보다 더 추위를 느꼈다. 보통 사람이 바글바글 몰려들면 그 열기로 후끈거리지 않나.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슬슬 앞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나룻배가 접선해 있었다.
배는 많아봐야 이삼십명 정도밖에 실을 수 없을 정도의 소박한 크기였다. 나는 어림짐작으로 과연 내가 이번에 저 배를 탈 수 있을지 가늠했지만 확실한 건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운 좋게 간당간당 커트라인 안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의 사람들이 차례로 배에 올라타는 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확인하는 사람은 위아래로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배를 타기 위한 승선권을 끊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나는 서둘러 내 옷가지와 몸을 더듬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야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툭 떨어졌으니 휴대폰이며 지갑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줄은 점점 더 줄어갔고 어느새 내 차례가 되어버렸다. 검표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그의 손에 경쾌하게 하이파이브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나는 억지로 우는 소리를 쥐어짜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갑도 핸드폰도 없어서요. 이번 한 번만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에 무슨 수를 써서든 꼭 갚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이었지만 사실이 그러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검표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느새 내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내 등을 툭 밀쳤다.
“이보쇼. 다들 제각기 사정이 있는 법이오. 그렇다고 규칙을 어기면 안 되지 않겠소? 나도 그것 때문에 한참을 헤매다 겨우 물건을 가져왔으니 저리 비키시오.”
나는 뒤에 선 남자를 홱 돌아보았다. 내가 이 낯선 곳에 온 이후로 인간의 목소리를 들은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물건이라니요? 그게 있어야만 이 배를 탈 수 있나요?”
“그 사실을 아직 모른단 말이오? 저런. 아직 죽은 지 얼마 안 된 영혼인가 보군. 시간이 별로 없으니 저리 비켜요!”
남자는 나를 거칠게 밀치고 지나치는가 싶더니 서둘러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보여주고는 배에 잽싸게 올라탔다. 나는 그런 남자의 행동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정원을 다 채운 배가 서서히 나루터를 떠나고 있었다.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저마다 무거운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남자가 내게 한 말이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내가 죽었다니. 그건 내가 그간 알고 있던 세계의 종말을 의미했다.
나는 허탈해진 마음을 안고 나루터를 빠져나왔다. 여전히 사람들은 앞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자신들을 태울 배가 오기만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만 나는 그 행렬에 아무렇지 않은 듯 합류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구석진 곳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죽기 전의 순간을 떠올려보려 들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영혼들은 인간보다 더 차가운 온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아까부터 내가 으슬으슬 추위를 탔던 게 그런 이유였나 싶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배를 타지 말고 버틸까 싶기도 했다.
사람들, 아니 죽은 영혼들의 손에는 저마다 다양한 물건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어떤 이는 휴대폰, 다른 이는 책, 또 다른 이는 커다란 가방이었다. 아마도 저 물건에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는 손에 쥘 물건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기도 하다. 보통 영혼은 공기나 바람과도 같아서 물건 같은 걸 손에 쥘 수 없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저들은 그것들을 들고 있는 건가 싶었다.
당췌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도무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에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죄다 처음이고 낯선 것들뿐이었다.
나는 그것들이 선사하는 감각으로부터 맥없이 휩쓸리지 않으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저들이 손에 지닌 물건이 왜 필요한지 그걸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러니까 배를 타기 위해서는 물건이 필요한 거고, 물건은 일종의 승선권의 역할을 하는 거였다. 여기까진 내가 방금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배를 타야만 하는 걸까?
내가 혼자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짠해 보였는지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 힘도 없어서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 존재는 내 앞에서 발걸음을 서성이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혹시 물건을 어디서 구하는지 모르시나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