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불안할 땐 쓰기로 했어

퇴사하고 인터뷰했습니다 #1일1글쓰기

by 김애니
사진 = unsplash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의 8할은 불안이고, 2할은 재미였다. 돌아보니 불안해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던 삶이었다. 요즘엔 글쓰기, 전에는 요가, 운동, 제빵, 드로잉, 한식, 플랜테리어를 배웠다. 회사인간에서 퇴사인간 2년 차가 된 나는 소크라테스의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더욱 불안해 떤다. “나는 누구인가.” 퇴사하니 주변에 퇴사한 이들을 눈여겨보게 됐다. 프리랜서로 삶을 꾸리는 이가 여럿이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찍고, 게임 기획을 한다.


4대 보험을 꼬박 내주는 직장이 아닌 회사 밖 사람들. 회사 밖은 지옥이라지만 막상 뒤집어보면 그리 지옥도 아니다. 꼰대 같은 리더와 안정성 대신 자유로움과 마음껏 실패할 권리가 주어진다. 잘 살고 있나. 이제 2년 차 퇴사러인 나는 먼저 퇴사한 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듣고 싶어졌다.


# 퇴사 4년차에게 퇴사의 의미를 묻다

정화채는 20대 초반을 함께 보낸 학교 동기다. 극작과를 전공하고 6년 6개월 게임회사에서 일하다 지금은 퇴사하고 프리랜서 게임 기획을 한다. 그는 퇴사 4년 차다. 그는 퇴사 후 시간을 불안함에 익숙해지는 시간이라고 평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불안함이 없어지진 않았어. 내가 2016년에 회사를 그만뒀거든. 결혼하기 전에 말이야. 매일 불안한 건 아니야.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불안해. ‘멍’ 때리고 있을 때. 그럴 땐 빨리 무언가 해.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면 자꾸 우물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들잖아. 스스로 심각해지면 안될 것 같거든.”


그는 불안해서 퇴사하고 독립서점에서 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고 지금까지 꾸준히 지역에서 하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는 순간만큼은 불안한 감정을 잠시 잊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문득 정화채는 퇴사를 하고 그냥 노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는 건 좋지만 방향과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것을 꿈꾸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당장 될 수 없으니까 불안함을 잠재워줄 대안이 필요했어. 대학 졸업하고 뭐가 없잖아. 당시에는 돈과 소속감이 필요했으니까. 그렇다고 글 쓰는 일과는 상관없는 쪽으로 가고 싶진 않았어.”

# 글쓰는 일과 관련된 일들 : 게임기획자, 그림책선생님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게임회사에 취직했다. 약 1년간 게임 시나리오 팀에 있다가 게임기획자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처음 해본 게임 기획에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내적갈등이 있었다.


“게임 기획은 자기가 맡은 역할도 있지만 다 같이 협업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어. 연극을 하려면 극작가 혼자만 있어서 되지 않듯이 게임도 역할에 맞는 팀원이 다 있어야 하거든. 거기에서 오는 내 안에 어떤 아쉬움이 있었어. 나만의 것을 완성하고 싶은 열망 말이야. 내게는 그게 ‘글’이었어. 마음을 먹고 쓰려고 하면 불안해져.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서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더라고.”


정화채는 첫 회사 이후 2번의 이직을 했고, 퇴사 후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까지 그가 대안으로 생각한 일은 문학치료였다. 그런 시도가 가능해보였던 곳이 아동미술전문업체인 ‘바퀴달린 그림책’이었다. 이곳은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과 글을 통해 한권의 동화책을 만들 수 있도록 교육하는 학원이었다.


그가 일했던 학원은 초등학생이 주로 다녔다. 만들어진 취지가 좋아 일을 시작했지만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글쓰기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거나 일기쓰기를 잘 하길 원했다. 아이들에게 문학치료를 해볼 기회는 얻었지만 학원 일이 주는 잡무 스트레스가 컸다. 학부모와 원장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미묘한 갈등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그곳에서 일하면 안된다는 걸 배웠다.


정화채는 게임회사를 다닐 때나 학원 일을 했을 때 글쓰기를 유보할 이유는 충분했다. 게임회사도 글과 그리 멀지 않은 일이었고, 아이들과 했던 작업이 자신이 글을 쓰는데 어떻게든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본인에게 정말 원하는 것을 질문했을 때는 자신의 경험은 도움이 됐겠지만 시작하는 지점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소설가로 올인하지도 않고 주변만 서성이고 있더라고. 소설가로 글쓰기에 몰두하는 게 두려웠어. 내 삶 전부를 걸었는데 실패할까 봐. 소설가를 하고 싶다고 시작해도 영영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불안하다는 이유로 다른 일에 기웃거리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은 퇴사를 하기 전부터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


# 여전히 불안하지만 쓰는 현재

정화채는 타인이 정의내린 여러가지 이름들인 '딸, 아내, 엄마, 친구'의 삶도 소중하지만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문제점을 알기에 쓰는 삶으로 자신의 일상을 재조정하며 극복해보려고 노력 중이다.SNS에 글을 올리는 게 어렵고 두려웠다.


자신의 글을 올렸을 때,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 자신의 글이 이상하다고 하거나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글이 될까봐 위축되는 느낌이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으면서 글을 쓸 때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걸 겁내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지만 쉽지 않다.


“대학교 때 글을 전공했고 잘해야 될 것 같은 강박이 있어. 잘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게 스스로 용납이 안돼. 그러니까 글을 아예 안 쓰고 더 못쓰게 되고.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소설가가 아닌 직장인이 된 게 나에게 열등감이 된 것 같아. ‘100프로 글을 잘 못쓰니까 차선책으로 회사를 택했구나’라는 생각이 강해지니까 글 쓰는 게 더 두려워졌어.”


정화채는 초여름 출산을 앞두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쓰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글을 정리해서 올린다. 글을 올리지 못하는 날에는 직접 손으로 3,4줄이라도 글을 쓴다. 사람이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밥을 먹는다. 주변 환경이 바뀌어도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드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있다. 출산하기 전에 공모전에 낼 동화 한편을 완성하는 게 목표다.


브런치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시작하긴 했는데, 막상 또 읽는 사람이 없으니 아쉽기도 해. 그래도 어느 정도가 될 때까진 계속 글을 올려보려고. 불안해서 나쁜 생각이 들면 그걸 멈추고 일단 쓰고 있어.


요즘 내 일과는 당장 꼭 할 일(프리랜서, 산모요가, 집안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나머지 시간에 습관처럼 할 일(책읽기, SNS글올리기, 동화쓰기)를 하는 중이야. 불안해지면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으니까 감정을 대하는 게 이전보다 수월해졌어. 그래도 여전히 찌질한 시간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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