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생에 정답은 없지 않아요?

감응의글쓰기 14기 마지막 과제 #1일1글쓰기

by 김애니
사진 = unsplash

E(31)에게 나와 함께 다녔던 회사는 프리랜서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입사한 세 번째 직장이었다. 우리는 3년을 한 회사에서 일했고, 한 달차이로 각자 퇴사했다. E는 2018년 2월에 회사를 퇴사하고, 3주 만에 새 직장을 구했다.


나와 함께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3주 만에 취업하기 위해 100개의 이력서를 썼다는 이야길 들었다. 전력을 다해 입사지원을 하고, 한 군데에 취직하면 지원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도 더는 받지 않았다. 올해 E를 만났을 때, 그는 1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새 회사 입사를 준비 중이었다.

E는 1년 동안 광고대행사에서 디지털마케터로 일했다. 컨텐츠 기획 하는 업무로 취업했는데, 회사 대표가 E가 영업을 잘하는 걸 발견하곤 계속 그 일을 하라고 부추긴 게 화근이었다. 싫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절대 못하는 성격의 E는 대표랑 다투고 올해 2월 퇴사를 선택했다.


이후 3월에 스타트업에서 만든 자회사에 입사했고, 13일을 다니고 4월에 새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시키는 일만 하는 디자이너와 그런 디자이너를 감싸는 대표와 일을 못하겠단 판단이 앞섰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가 자기는 집순이를 잘 이해 못하고, 쉬지 않고 일을 만들어 하는 사람이래요. 그 이야길 하면서 쉬는 게 정답이 아닌 사람한테는 그 말이 강요일 수 있다는 이야길하더라고요. 퇴사하고 여행가라고 저한테 주변에서 많이 말했어요.


저는 길치에다가 여행도 안 좋아하는데 가래요. 회사 다닐 때도 여행은 안가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건 다른 건데 돌아다니면 쉬라고 하고, 빨리 일을 구하면 왜 빨리 구했냐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쉴 줄 몰라서 일을 빨리 구하나 싶은 생각에 스스로 자책했단 말이에요. 잔소리하는 사람한테 내 인생이니까, 잔소리하려면 돈내라고 말했어요.”


E는 자신이 발전가능한 회사가 아니라면 입사해도 그만둘 생각이 확고한 편이었다. 하지만 새 직장에 입사한지 3일 만에 E의 아버지는 돈 문제를 일으키셨다. E는 1년 전에도 3년 동안 받은 퇴직금을 아버지가 얽힌 돈문제를 수습하는데 썼다.


아버지가 대학등록금을 내줬고, 지금까지 무탈하게 키워줬단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개미처럼 모았던 1천만 원이 3백만 원으로 홀쭉해졌다. 그는 속상한 마음에 아버지에게 자신을 호적에서 파달라는 이야기도 홧김에 꺼냈다고 했다. 줄어든 통장의 액수만큼 E의 불안감은 컸다.


“이력서 몇 개 썼어요? 저는 이번에 회사 들어가려고 200개 썼을 걸요. 주위 사람들에게 넌 퇴사도 잘하고 이직도 왜 이렇게 잘하냐는 질문을 진짜 많이 받았어요. 작년에는 100개 써서 됐고, 이번에는 포트폴리오까지 만들었어요. 항상 즉시 지원했어요.


떨어지면 말자는 마음가짐으로요. 가고 싶었던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는데, 연락이 안 와서 3번이나 썼어요. 마지막에는 면접까지 봤어요. 떨어졌는데 면접까지 보니까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어요.


세상에는 회사가 많아요. 연봉 맞춰준다고 하면 일단 가 봐요. 아니면 그만두고요. 아는 언니가 이력서 하나만 쓰고 가만히 기다리길래 답답해서 언니 핸드폰에 사람인, 잡코리아 어플을 깔아줬어요. 수시로 들어가서 체크하라고요. 이번 회사도 7월 중에 그만둘 건데, 그만두면 300개 쓰고 말해줄게요.”


E의 빠른 취업비결은 많이 지원하는 것이었다. 공고가 뜨면 지원했던 이력서 때문에 그녀는 면접을 오라고 하면 어딘지 검색해서 봐야할 지경이었다. 200개나 써서 한 군데 취업했던 E 앞에서 나는 이력서 한 개 쓰고 기다리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없냐고 물으니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퇴사하세요. 회사는 많아요. 잡플래닛(직장인이 직접 남기는 기업리뷰 플랫폼)에 올라온 회사평을 100퍼센트 믿으면 안돼요. 직접 다녀봐야 아는 건데 사람들이 작성해놓은 글만 가지고 판단하면 안돼요. 된장인지 똥인지 먹어봐야 안다고 생각해요.


저도 광고대행사 다닐 때 제안서 쓰는 걸 못하는 사람인줄 알았거든요. 해보니까 잘하더라고요. 회사에서 자기가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건 다르잖아요.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그만둬도 돼요. 이직할 때 경력증명서를 내요. 경력단절된 기간을 물으면 사업했다고 적당히 둘러대면 되더라고요.”


E가 쉽게 퇴사하고 이직하는 줄 알았더니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말 때문에 아팠다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여러 번의 퇴사는 E에게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려줬다. E는 주위에 친구가 많은 편이라 잔소리하는 사람도 몇 배로 많았다.


“이번에 퇴사와 이직을 하면서 힘들었어요. 퇴사하면 저도 겁이 나요. ‘나는 사회부적응자인가, 왜 이렇게 방황하지’라는 생각에 괴로워요. 대기업 다니는 친구는 너는 왜 버티지 못하냐고, 못 버티는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잔소리해요. 친구 눈에는 제가 한심한 인간처럼 보였나봐요. 속으론 못 버티는 게 어때서 하는 심정이었어요.


창업하는 친구를 만났더니 창업하래요. 저는 창업해서 대표로 살 자신이 없는데 말이죠. 그들과 관계를 생각했을 때 나를 위해 해준 말이니까 고마워요. 하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지 않아요? 자신들이 경험한 기준으로 저에게 강요하는 말이 폭언처럼 들려서 싫었어요.”


E는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일상을 꾸준히 남기는 편이다. 퇴사하고 이직하는 과정의 힘듦이 장문의 글과 함께 업로드된 적이 있었다. SNS로만 접할 때는 E의 고민이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에게 돈은 평생 벌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살면서 치고 들어오는 일련의 사고 덕에 돈을 대하는 자세와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연봉을 많이 주면 무조건 가서 일하는 걸로 방향을 바꿨다. 종교회사에서 깎인 연봉으로 3년 동안 일하며 배운 교훈이었다. 대신 돈은 평생 벌어야 하니, 하고 싶은 것도 해야겠다 싶어 여러 돌파구를 파놓았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심심해서 독서토론모임, 영어학원, 직장인연기동호회, 새로운 오프라인 모임을 뭘 하나 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저는 종교회사가 제 인생의 마지막 회사일 줄 알았어요. 방송작가 생활을 접고 결단 끝에 선택한 일이었으니까요. 연봉도 깎고 거룩한 일을 해보겠다고 갔잖아요. 큰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는데 없더라고요. 어디 회사 들어가면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요즘은 커피쿠폰 12장 모았을 때 행복해요. 지금은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게 목표이자 꿈이 됐어요.”


전 회사를 퇴사할 때도 E는 파랑새를 찾아서, 행복하려고 퇴사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큰 행복만 쫓았던 E는 지금 소소한 행복에 집중하면서 평생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인생 같다고 이야기했다.


E의 꿈은 나에게 행복은 무엇인지 돌아볼 여지와 평생 해야 할 인생 고민 앞에 서두르지 말아야겠다는 막연한 다짐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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