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서울! or 내 가본 서울!
여기가 서울 한복판으로 보이는가?
서울에는 재개발이 승인되기를...
가뭄에 단비처럼 목이 빠지게!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막상 재개발ㆍ재건축 지역으로 선정되면
그 순간부터 피 튀기는 이권 싸움의 2라운드가 펼쳐지는 현실.
기성세대의 서울 드림(Seoul Dream)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in 서울'에 합류하려는 인싸 열풍은
서울 수도권 VS 비수도권으로 차별을 첨예화시켰다.
그 이전까지는 서울 사람들도 그저 '서울 촌놈'에 불과했을 뿐인데...
우리나라를 벗어나 조금만 더 시야를 넓히면 우린 모두 '지구촌' 사람들 아닌가.
과학과 정보화 기술 덕분에 전 세계가 한 마을처럼 연결되는 '지구촌'시대...
인류는 산업화 이후 짧은 기간 동안 고도성장의 달콤한 꿈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감염병 시대를 앓고 있지만
인류의 욕망과 야망에는 브레이크가 없어 보인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뉴욕매거진' 부편집장, 칼럼니스트)는
그의 책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최신 연구 자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기후위기로 인해 인류는 생각보다 빠른 미래에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래학자들이 보는 인류의 앞날 역시 밝지만은 않다.
깨어있는 지성들은 하나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홍수'를 경고했던 노아처럼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앞당겨진
인공 지능(AI)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
1990년대 이후 쏟아지는 영화들을 보면 인류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감성로봇보다 더 인정이 메마르고 냉정한 '냉혈 인간'의 등장.
영혼을 상실한 인간들이 판치는 좀비 세상.
생존불능 지구에서 마지막 인류를 다른 행성에 이주시키는 지구 대탈출 우주 프로젝트.
아바타 프로그램과 기계 부대를 앞세워 외계행성에서 자원 채취 전쟁을 벌이는 미래 인류 등등
물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담고 있는 내용도 있지만
단순히 재미와 흥미로 소비하고 끝내기엔...
영화 같은 세상이 이미 눈앞에 도래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여의도 60번지에 우뚝 선 마천루...
1985년 신동아그룹이 건설하여 지금은 '63스퀘어'로 불리지만
'63 빌딩'이라는 별칭이 더 친숙한 건물.
88 서울 올림픽과 함께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자부심을 사춘기 감성으로 경험했기에
첫사랑의 애틋함 같달까...
제 아무리 더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건축물이 세워졌다 해도
63 빌딩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대신할 순 없다.
63 빌딩은 완공 당시 일본 도쿄의 '선샤인 60 빌딩'을 제치고,
미국을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바라보니...
세계 유수의 빌딩들과 경쟁하며 높은 키를 자랑했던 63 빌딩이
한낱 거리의 흔한 가로등보다 키가 작구나!
때로 눈앞에 닥친 문제가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지고,
거대한 63빌딩처럼 높아 보인다면...
잠시 눈을 감고... 위 사진을 떠올려 보시라.
마음속 두려움을 직시하고!
시선의 방향을 바꿔보면 어떨는지...
도로 중앙분리대에 서 있는 가로등이
살바도르 달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로 보인 까닭은...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자신이 실제 살았던 바다를 배경으로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 있는 그리스도 예수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참신한 구도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 아랫쪽 어부 두 사람은 머리 위에 있는 예수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어구를 손질하며 일상의 삶에 열심이다.
현실의 우리들처럼.
오늘 서울에 예수께서 오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인간을 제자로, 친구로, 자녀로, 아내!로 사랑하여 하늘 보좌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낮은 곳에 내려오신 예수.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에도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라며 살과 뼈가 찢겨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자기를 죽음으로 내 몬 인간들을 더 염려하고 기도하시다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돈도 권력도 아파트도 부동산도 주식도 비트코인도 아니고
다름아닌 그 흔하디 흔한 이름 '사랑'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