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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Oct 11. 2021

오!늘 사진 [28] 오징어 게임? <3>

게이미피케이션 시대에 '깐부'와 '깍두기'?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세상)은 지옥이야. [드라마 '미생' 인용]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인용]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세상은 지옥인가?

문제 속에 파묻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흔히들 하는 말...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라."

겨우 한 발의 거리일 뿐이지만, 주관에서 객관으로 '관점의 변화'는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함께 EBS의 <한국기행>과 <세계테마기행>을 꼬박꼬박 챙겨 볼 때가 있었다.

풍경 속의 피사체로 묻혀 살 때는 몰랐는데...

오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볼 때마다 온 식구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 사진 by연홍
영국의 시인 밀턴은
"인간이 낙원을 잃어버렸다!"라고 대서사시로 읊었는데...
결단코 아니다! (NEVER Lost Paradise!)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 낙원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 어디가 낙원이란 말인가?


<오징어 게임>의 섬뜩함

채경선 미술 감독팀이 구현한 <오징어 게임> 속 세상은 또 하나의 낙원처럼 그야말로 판타스틱하다.

실제로 어린이 그림책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분홍, 노랑, 민트, 초록 등 밝고 화사한 톤의 동화 같은 이미지는

피 튀기며 살벌하게 죽이는 데스 게임(Death Game)의 잔혹함을 더욱 부각한다.

화사한 톤의 동화 속 세상을 재현한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우리에게 "죽겠다"는 말은 실제로 죽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 상태를 강조하거나 뜻을 부풀려 표현하는 일상 어법이다.

배 불러도 죽겠고, 배 고파도 죽겠다.
좋아도 죽고, 미워도 죽는다.
재밌어 죽을 지경이고, 지루해 죽을 지경이다.
놀이를 할 때도 "죽었다" "살았다"는 말을
"졌다" "이겼다"는 말과 통용해서 흔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게임에서 지거나 탈락하면 

"죽었다."

라고 말로 하지 않고, 실제로 총으로 죽인다!

'놀이'가 더 이상 놀이가 아닌 것이다.

동물가면을 쓴 VIP 또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 :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어찌 보면 현실을 게임에 반영한 것이리라.
입시경쟁, 취업경쟁, 성과경쟁, 주식투자경쟁, 사업경쟁 등등
크고 작은 경쟁에서 실패의 쓴 맛을 본 이들이
실제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IMF 이후 점점 증가하다가
2003년부터 OECD 국가들 중 부동의 1위다. 2017년 2위로 내려온 걸 제외하곤.
고령화에 따른 질병,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생활고, 우울증 등
이런저런 절박함에 몰려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에 36명이라니...

게댜가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정서적이고 경제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자해나 자살 등 비극적인 시도로 이어져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이 하루 100여명이라고 한다. [아이뉴스 24]


놀이를 생존 게임으로 바꾼 자

처음부터 유일하게 해맑게 웃으며 게임을 즐겼던 자,

바로 <오징어 게임>을 설계한 토끼 가면(페르소나)으로 사는 일남 씨다.


그는 처음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구슬치기 하던 골목길에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일남 씨가

어떻게 정글 자본주의의 최상위 포식자로 우뚝 서게 됐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돈이 너무 없어도 사는 재미가 없었지만
막상 돈이 너무 많아도 사는 재미가 없었다.
오징어 게임의 설계자 일남 씨 :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그래서 어릴 때, 신나게 놀았던 놀이를 생존게임으로 바꿨다.

일남 씨는 동물가면을 쓴 채 VIP로서 게임을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실제로 참가자가 되어 게임을 즐겼던 것이다.


"뭐, 어차피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인데...

벼랑 끝에 몰린 인생들의 목숨을 경주마 삼아 재미를 보는 것쯤이야..."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토끼 표정 뒤에 감춘,

파괴된 영혼에게는 '재미'가 사람 목숨보다 더 가치 있었다.


아직도 사람을 믿느냐?

돈이 사람 위에 있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돈의 위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어린애들 하는 놀이 몇 번으로 인생을 바꿀 456억을 준다는데,

어느 누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빚 독촉에 쫓기다가 신체포기각서까지 쓸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절박한 처지의 사람들이랴.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일남 씨의 입을 통해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묻는다.
"아직도 사람을 믿는가?"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일남 씨가 무엇을 놓쳤기에
동물가면을 쓰고, 가짜 인생을 사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아니,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 되었는지...
색 바랜 초록색 단체복을 입은 참가자들 :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색 바랜 초록색 단체복의 의미

(1)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 456명은

밝고 화사한 파스텔 톤의 세트장과 대조되는 초록색이 살짝 변색된 듯한 촌스런 단체복을 입는다.

어찌 보면 죄수복 같지만... 일남 씨가 그나마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었을 때,

실제로 입었을지도 모르는 가장 서민다운 옷이다.


주변에 흔한 원초적인 생명력을 가진,

그러나 세파에 시달린 풀(잡초) 색깔이기도 하고...


(2) '오징어 게임판'을 만든 주최 측이 게임룰로 강조하는 '평등''공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최 측이 평등과 공정을 큰 소리로 홍보하면 할수록

- 평등과 공정이 실제로,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드는... 본래 색이 변질된 옷이다.

'깐부'라는 한 팀 의식을 일깨우는 장면 :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3) 어쩌면 오징어 게임을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는 의미가 숨겨있는데...

456명이 생존게임에 불려 온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한 팀임을 강조하는 옷이다.

- 경쟁자가 되어 최후 1인이 남을 때까지 죽고 죽일 것인가?

- 456명이 한 팀이 되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도와서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겠다는 '깐부' 정신을 가지고
처음부터 힘과 지혜를 모아 협력했더라면... 충분히 함께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굳이 반칙을 하지 않아도
그 열쇠를 숙소의 벽 그림 속에 훤하게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그려놓았음에도
드라마의 후반부에야 보여줌으로써 아!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하지만 그 열쇠의 마지막 핵심은...
서로에 대한 끝까지 변치 않는 믿음(신뢰)이다.

또한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자인 '깍두기'를
혐오하지 않고 따돌리는 폭력이 아니라,
양쪽 편에서 모두 공동으로 책임지고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다.

그리고... 456억을 최후 승자가 혼자 꿀꺽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1억이라 할지라도 자족할 수 있는 욕망의 절제다!


현실세계에서 이게 가능한가?

456억에 눈먼 456명은 마지막 게임이 진행될 때까지

마치 그들의 눈에 뭐가 씌였는지, 벽 속의 그림을 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눈 뜬 장님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나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진 않는지...


그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게이미피케이션 홍보 이미지 : 한국생산성본부(KPC)

<오징어 게임>이 게이미피케이션 시대에 던지는 질문

디지털 혁명을 통해 일상의 재미없는 활동을 게임화해서
재미와 참여를 유도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
세상을 움직이는 트렌드가 되었다.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마켓팅은 물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스마트 시티, 군 가상훈련, 의료 분야 등

우리 생활 곳곳에 게임의 전략이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도 게이미피케이션이 활용된다고 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사용자들이 일상생활을 게임하듯이 몰입하게 유도한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거대한 가상 게임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세상에서
'MZ세대'로 불리는 적응이 빠른 젊은층일수록
'의미'보다는 ‘재미’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묻는다.
'재미'만 있으면 세상이 살벌한 생존게임판으로 변질되어도 상관없는가?
어쩌면 기훈과 상우, 일남 역시 나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는지? :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쌍문동의 기훈과 상우는 둘이 아니다.

쌍문동의 찌질이 기훈(이정재)은 VIP들의 예상을 깨고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된다.

기훈은 동네 동생이자 쌍문동의 자랑인 상우(박해수)와 최후 결전에서

상우를 살리기 위해 456억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456억이 절박하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두를 죽인 목숨값을 승리의 댓가로 얻어봤자 결코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실제로 456억을 손에 쥐고도, 오히려 게임 이전보다 더 폐인처럼 살던 기훈이다.


456억에 눈 멀었던 상우는 기훈이 자기 때문에 돈을 포기하려고 하자

마지막 순간,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그나마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했다.

사실 기훈과 상우는 황동혁 감독의 분열된 두 자아였듯이
우리도 마지막 순간 결국 마주해야 할 최고의 적이자 동지는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닐는지...
오징어 게임을 겪으며 빨간 머리로 변신한 기훈 :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어디 기훈과 상우 뿐이겠는가?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오징어 게임'의 냉엄한 생존규칙은 결국 나 역시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오징어 게임에 참석한 456명이 대표하는

나와 함께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내게 씌워진 가면(페르소나)들을 벗어버리고

생존 게임이 아닌 '놀이'를 함께 놀던 호모 루덴스로서 찬찬히 바라보면 어떨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그저 '이 땅에 툭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같은 생명의 근원에서 비롯된 한 형제 한 자매로서 이 아름다운 낙원에 소풍 왔음을...
천상병 시인처럼 깨어있는 영적 선배들은 누누히 말해오지 않았던가.

우리는 밀턴의 말처럼 낙원을 잃어버린, 실낙원(失樂園)을 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낙원을 보는 눈을 잃어버린, 실개안(失開眼)을 한 것이 아닌지...
아직도 인간을 믿느냐?

일남 씨와의 마지막 게임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음으로써

결국 오징어 게임 뿐만 아니라 인생 게임에서도 최후 승리를 거머쥔 기훈은

드디어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나서 놀이를 생존 게임으로 바꾼 자들에게 외친다.

 “난 너희가 갖고 노는 말(경주마)이 아니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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