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
♡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에그몬트 서곡 Op.84/ Egmont, Op.84: Overture>
■ https://www.youtube.com/watch?v=6waE1SQQHmg
흔히 클래식 음악은 고통스럽고 번잡한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고상하고 우아한 음악이라고 여기기 쉽다. 실제 많은 클래식 음악들이 그런 목적으로 연주되고 또 감상자들에게 큰 위로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신비한 치유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리듬, 멜로디, 하모니, 음색 같은 요소들로 나누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음악은 단순히 이들의 조합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적 소통과 공감의 힘을 가지고 있다. 모차르트는 '말이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라고 했는데,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말의 세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음악 세계의 특징을 잘 묘사한 말 같다. 하지만, 작곡가들도 사람인지라 그가 속한 세계와 소통하고 공감하며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신과 인간의 음악이 나뉘기 시작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쳐 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들을 위한 음악적 양식이 실험되던 고전주의 시대, 그리고 고전주의 시대의 유산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감정을 담기 시작한 낭만주의 시대까지,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각각의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해당시기 작품을 듣게 되면 대략 작곡자들을 유추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물론 바로크 시대니 고전주의 시대니 하는 것들은 음악사적인 구분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처럼 현실 역사와 이런 사조들은 또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6월 10일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 모음곡'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같은 격변의 시기에 음악은 고전주의에서 빠르게 낭만주의 음악으로 바뀌어 갔다. 베토벤이 바로 이 시대를 거쳐 살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고전주의의 성숙한 형식미뿐만 아니라 격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낭만적인 작품들도 많다.
베토벤이 그의 교향곡 3번(부제 '영웅 Eroica')을,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으로 유럽을 해방시키고 있다고 믿었던 나폴레옹에게 헌정했다가 그가 황제에 등극하자 충격을 받아 바로 헌정을 철회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는 이 시기 베토벤이 추앙했던 시대정신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오늘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을 선곡한 이유는 지난 대선 이후 한국사회가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그 모든 개혁의 중심에 항상 '국민'이 중심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유를 향한 의지는 언제나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는 불굴의 힘을 갖는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은 16세기 네덜란드 영웅(에그몬트)의 숭고한 희생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유 의지가 만나는 영혼의 교차점이다."
이 곡은 1809년 빈 궁정 극장의 지배인인 요제프 하르틀이 괴테와 실러의 희곡에 음악을 붙여 일종의 오페라처럼 만들어 상연할 계획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괴테의 작품 중 에그몬트를 골라 베토벤에게 작곡을 의뢰하게 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베토벤은 괴테에게 심취해 있었던 관계로 "나는 오직 이 시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에그몬트를 작곡했습니다"라고 1810년 8월 21일 편지에서 밝혔을 만큼 괴테에 대한 깊은 경의를 담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 작곡은 1809년 10월부터 1810년 6월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사실 베토벤이 에그몬트를 작곡한 1809~1810년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빈이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1809년 5월 초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포위하자 오스트리아 황실과 베토벤의 제자이자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을 포함한 궁정 사람들은 도시를 탈출해 버렸다. 베토벤은 떠나지 않은 채 동생 카스파르의 집 지하실에서 임시 피난처를 구해 살았다.
"북소리, 대포소리, 행군하는 사람, 온갖 비참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점점 심해지는 청력 상실에 베개로 머리를 감싸 포성으로부터 사라져 가는 청력을 지켜야 했던 베토벤에겐 이 무렵이 정말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빈을 점령한 프랑스군은 빈 주민들에게 '거주세'를 부과했고, 후원자 루돌프 대공이 떠나 생계비 마련조차 쉽지 않았던 베토벤에게 빈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처참함 그 자체였지만, 이러한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베토벤은 괴테의 '에그몬트'에서 불굴의 자유 의지와 희생정신을 읽어내며 창작 의욕을 불태웠다.
1810년 6월 15일 빈 부르크 극장에서 베토벤의 지휘로 초연되었으며,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을 상징하는 듯 장대하고 웅장한 이 음악을 듣고 E.T.A. 호프만은 베토벤이 담아낸 자유와 해방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고, 괴테 본인 또한 "베토벤은 명백한 천재다"라고 말했을 만큼 당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괴테의 희곡 <에그몬트>는 1568년 브뤼셀이 배경이다. 네덜란드는 당시 합스부르크가의 스페인 왕인 펠리페 2세(필립 2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칼뱅주의를 따르던 네덜란드 주민들은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펠리페 2세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었다. 주인공 에그몬트 백작은 네덜란드 출신 신성로마제국의 귀족으로 스페인-프랑스 전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1559년 합스부르크가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로부터 플랑드르 및 아르투아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다스렸으나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의 칼뱅교도들의 폭동을 문제 삼아 스페인인 알바 공작을 보내 폭동을 진압하고 잔혹한 통치를 하게 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알바공작이 1567년 8월 브뤼셀에 도착한 후 '피의 법정'이라는 특별법정을 설치해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는데, 불과 2년 동안 네덜란드인 1만 명 이상이 재판을 받았고 1천 명 이상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5년 동안 8,950명이 체포돼 반역과 이단으로 고소되어 무자비한 고문에 시달렸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에그몬트는 네덜란드 주민들을 위해 평소 그에게 신임을 주고 있었던 펠리페 2세에게 알바 공작의 잔인한 통치에 대해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다. 이를 본 그의 친구 오라니엔 공 빌헴은 에그몬트에게 펠리페 2세의 입장은 단호할 것이라며 즉시 도피할 것을 권했지만, 에그몬트는 펠리페 2세의 자신에 대한 신임을 믿고 무모하게 알바 공작에게 반항하다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의 애인 클레르헨은 필사적으로 에그몬트를 구하려 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독약을 먹고 자살하고 에그몬트는 브뤼셀 광장에서 처형당한다.
이 곡은 바단조의 강렬하고 격정적인 도입으로 시작되어 마치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느낌을 묘사하고 있으며, 장엄한 전개부에서 고통과 투쟁의 선율이 점점 고조되다 마지막 승리를 상징하는 피날레에서 압제자를 무너뜨리고 자유를 쟁취하는 듯한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로 마무리된다. 베토벤은 이 서곡에서 자유, 평등, 박애라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국민들이 불의한 폭정에 시달리자 이에 저항하다 사형당한 에그몬트 백작의 자기희생과 영웅적 정신을 음악을 통해 극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적 현실과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괴테의 문학에서 발견한 불굴의 정신력과 희생정신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점은 그가 왜 악성 樂聖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사실 이 곡을 쓸 당시 베토벤은 괴테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그의 작품에 곡을 붙이는 것을 어렵게 느껴서 그보다는 쉴러의 작품에 음악을 맡고 싶어 했다고 한다. 나중에 결국 그는 그의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교향곡 9번에서 쉴러의 시를 바탕으로 환희의 송가를 완성하게 된다.
■ 앞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로 비엔나 필하모닉의 연주를 감상했다면, 이 연주와 같이 높은 평가를 받는 카라얀의 베를린 필의 연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vWuZPaL-57A
♡ 다시 출발
- 백원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날이 밝아오면 챙겨 먹고
호구지책을 위해 두 발로 뛴다.
눈꼴도 시고 배알도 뒤틀리다
열불도 나서 앙다물기도 하는 하루
돌부리에 차이고 문설주에 부딪혀
한참이나 쓰다듬으며 씩씩 거린다.
하늘의 태양은 쉽게 넘어가는데
땅에 사는 사람은 힘들게 넘어간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지친 몰골에 땀내 나는 옷
어찌할까 고심하다
자포자기 잠에 빠져들고
훤하게 밝아오는 새벽이면
어제 일은 다 잊은 채
오늘을 위해 출발선에 다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