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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Jul 28. 2020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30대의 나는 그 시절의 나보다 강해져 있음에는 틀림없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쯤 엄마가 수술을 했다.
난소에 혹이 있었고 그 혹이 커져 터지는 바람에 한쪽 난소와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보다 훨씬 전에도 엄마는 수술을 했다. 갑상선에 혹이 발견돼서였다.
 
 
의정부 성모병원은 내게 엄마의 수술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엄마가 입원했던 병실, 엄마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 엄마의 진료를 기다리던 대기실,
그리고 맘 졸이며 기다렸던 3층 수술실 앞.
그 병원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일련의 시간들은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그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불현 듯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간의 잔상은 두려움이다.
    


그 병원에 이젠 내가 환자가 되어 진료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이전 병원에서 발급해준 진료 의뢰서를 들고 긴장한 채 들어선 병원 로비에는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가득했다. 살기는 좋아졌다는데 왜 이렇게들 아픈 건지,
그 중 한 명도 나라는 사실을 애써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료 의뢰서를 들고 병원에 오니 하이패스로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것 처럼
막힘없이 진료 접수가 진행되었다. 내 기억 속의 병원은 기다림이었는데.
기다리면서 턱 밑까지 차오른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싶었는데, 참 속절없이 빠르게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2층에 위치한 산부인과에 올라가니 로비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언뜻 둘러보니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괜히 주눅이 들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날 알만한 이가 없을텐데, 산부인과란 곳이 그렇다.
가지고 온 진료의뢰서와 검사자료를 외래 간호사에게 넘겨주고 의사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그 시간동안 문진을 진행했다. 인턴으로 보이는 피곤해보이는 의사와
대답하기 피곤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고는 다시 대기실로 나오니 곧 내 진료 차례가 돌아왔다.


진료실로 들어서자 내 예상보다는 젊은 의사가 나의 진료의뢰서와 검사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상이 나쁘지 않아 턱 밑까지 차올랐던 긴장감이 조금은 사그러들었다.
몇 마디를 주고 받고 바로 초음파를 진행했고, 역시나 이 의사도 자궁 내막의 두께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난소의 혹은 MRI를 통해 그 종류를 확인해볼 것이며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검사 일정을 잡자고 했다.
젊은 의사여서인지, 내가 다른 의사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인지 추진력이 있고 명확한 것이 안심되었다.
무엇보다 특유의 화법이 명료했다. 환자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리스트화 해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라고
전달하는 것이 내게는 확실하게 와닿았다.
어느 정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간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의사가 전달하는 용어들이 낯설지 않았으니 말이다.
의사는 내게 다낭성 난소 증후군 소견이 보이기 때문에, 임신을 준비한다면 난소 혹과 더불어 이 부분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이야기하였다.




진료실을 나와 검사를 예약하고 병원을 나서며 엄마에게 전화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그 혹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 채 엄마에게 걱정만 안길 것 같았다.
모든 게 확실해지면, 그 혹이 좋든 나쁘든, 수술을 하든 안 하든,
암이든 아니든, 모든 게 확실해지면 그 때 이야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 일정을 잡아 놓으니 오히려 맘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기다려보자. 뭐 하루 아침에 내가 아파 죽는 것도 아닌데.
지금은 홀로 이 병원을 나서지만 오히려 엄마와 함께일 때보다 더 두렵지 않다.

이 역시 나의 삶 가운데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어느 한 부분이므로
나는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으므로.


30대의 나는 그 시절보다 더 강해져 있음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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