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마주하기
1월 25일을 전후로 시작된 생리는 2월이 다 끝나가도록 계속 되고 있었다.
1월 말에는 평소 겪던 생리통의 몇 배는 넘는 고통이 찾아오기도 했다.
출혈의 양은 10월에 비해 많지는 않았지만 또 다시 길어진 생리 기간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병원을 찾지 않은 데에는 원래 생리 기간에 맞춘 것처럼
일주일 정도만 출혈의 양이 많은 편이었고 그 이후에는 소량의 출혈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리만 끝나면 병원에 꼭 가야지,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 하루 일정을 늦추고 있었다.
어쩌면 1월과 2월, 실로 오랜만에 느끼고 있었던 편안한 내 삶 속에 어딘가 불편한 사실을 끼워넣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병원에 가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찮을거야, 라는 시기에 맞지 않는 긍정으로
애써 불안을 잠재우며 2월을 그렇게 흘려 보내버렸다.
3월이 시작되었고, 봄이 찾아오는 것이 느껴질 무렵 병원을 찾았다.
출혈은 잦아들었을 때였고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오래 걷거나 바닥에 오래 앉아 있을 경우 오른쪽 골반에 통증이 약간씩 느껴졌는데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1월부터 느껴졌던 통증이었는데, 3월 병원을 찾을 무렵에는 이전에 비해 통증이 자주 느껴지고 있었다. 오래 걷고 난 뒤에 더욱 그러하였다.
이번에는 10월에 찾았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을 찾았다. 의정부 ㄹ 산부인과.
전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산부인과였다.
의정부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인터넷에 평은 많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 같았다.
미리 예약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8일 오전 부랴부랴 진료 시작시간에 맞추어 병원을 찾았다.
병원이 있는 건물은 이전에 몇 년 간 교정 치료를 받았던 치과가 있는 건물이었다.
낯설지 않은 그 느낌은 병원을 찾기 전 알게 모르게 불안했던 내맘에 조금은 안도감을 주었다.
초진이었으므로 이것 저것 차트를 작성하고 소변을 받아 제출하고 대기하는 동안,
이제 이 지긋지긋한 불안감에서 탈출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감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리고 온 김에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종합 검진을 받아야겠노라 생각했다.
의사는 젊은 여의사였다. 다소 기력이 없어 보였지만,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과 따뜻한 목소리가
맘에 들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의사와의 첫 교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의사가 주는 첫 느낌은 나와의 라포를 형성하는 데 엄청나게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것은 후에 큰 병원을 전전하며 더 강한 확신으로 와닿았다.
젊은 여의사와 그동안 나의 증상, 임신에 대한 계획, 불편 사항 등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바로 초음파를 진행했다. 역시나, 10월과 같은 피드백.
"자궁내막이 굉장히 두껍네요."
이미 지난 가을과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기에 이 피드백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였다.
그런데, 젊은 여의사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난소 쪽에도 작게 혹이 보이네요."
분명 가을까지만 해도 깨끗하다고 했던 난소였다. 2개월마다 혹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는 것은
주위에서도 많이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없던 혹이 갑자기 생길 수도 있는 건가.
그래, 혹 한 두개쯤은 성인 여자들 안고 있는 경우도 요즘은 흔하다 들었다.
"그런데 이 혹 모양을 좀 보세요. 혹 안에 하얀 부분 보이시나요? 혹은 2센치 정도인데 안에 이 흰 고형물질이
좀 걸리네요. 오른쪽 난소에 두 개가 있습니다."
가을과 달리 이번엔 초음파를 좀 들여다볼 정신이 있었다.
정말 혹 안이 희미하지만 흰색이었고, 그 중에 한 혹은 마치 오렌지를 반으로 쪼갠 단면처럼 반으로 나뉜 모양이었다.
여의사는 자궁 내막이 두꺼워졌을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임신이 되었을 때, 하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일때라고 이야기했다.
우선 대기할 때 제출했던 소변으로 임신테스트를 해보자고 했으나 의사는 내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간이 임신 테스트는 양성으로 나왔다. 임신이 아닐 것이라는 건 내가 먼저 알고 있었지만, 그 짧은 순간 기적처럼 테스트기에 임신 판정이 뜨길 바랐던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찰나의 바람이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언젠가 건강 관련 예능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질병이었다.
일정 주기로 배출되는 난자가 착상을 하지 못하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생리인 것인데,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난자가 제때 배출되지 않아 생리 또한 불규칙하게 진행되고 무월경을 겪기도 한다. 호르몬 이상으로 굵은 체모가 나기도 한단다.
제때 월경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자궁 내막은 계속 두꺼워진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이다. 무월경만 빼고는 나의 증상과 거의 같았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는 배란이 원활히 되지 않으므로 임신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드디어 불안감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임신 전 종합 검진 진행하시면서 호르몬 검사도 같이 진행하셔서 확실한 진단을 받으시는 것이 좋겠어요.
다낭성 난소 증후군 소견이 있지만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자궁 내막 증식증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난소에 있는 혹은 우선 사이즈가 작으니 2개월동안 초음파로 변화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종합 검진에는 여러 가지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 자궁 경부암 검진 등 자궁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검사들이 있었고 나는 여기에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증상인지를 좀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한 호르몬 검사까지 추가로 진행했다.
꽤 많은 양의 피를 뽑았고 이 혈액으로 종합 검사와 호르몬 검사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하였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우선적으로 두꺼워진 자궁 내막을 소파술로 인위적으로 배출하고 그 조직으로 조직 검사를 진행하기로 의사와 계획했다. 난소 혹은 꾸준히 지켜보기로 했다. 소파술은 간단한 시술이지만 내 상황에서는 내막이 꽤 두꺼운 편이므로 전신 마취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큰 수술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며 따뜻한 음성의 여의사가 안심시켜 주었다.
떼어낸 조직으로 검사를 해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그 의사가 참 고마웠다.
그렇지만, 무거운 마음은 거둘 수 없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일 경우 임신이 쉽지 않을 것이고, 추후 조직 검사 결과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전신 마취라는 걸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아무리 크지 않은 시술이라지만 그래도 내 몸 속에 무언가 인위적인 기구가 들어와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기는 해도 그것을 떼어낸다는 사실이 우습게도 조금은 무서웠다.
그래도, 괜찮을 거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고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긴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3월 8일로부터 일주일 후, 병원에서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종합 검진 결과는 나왔으나 조직 검사는 보류하자는 메시지. 애써 밀어내고 있었던 불안감의 실체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직 검사 보류.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 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하며 다음 날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