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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Feb 23. 2020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2015년 10월, 몸에 이상을 느끼다

지금부터 이곳에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렇지만 기억해 두어야 할

지난 시간들과 앞으로 펼쳐질 내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혹 나와 같은 일을 겪게 된 이가 이 곳에 우연히 들러 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살며시 담겨 있다.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동질감,이라는 단어로 인해 적잖이 위로가 되었고 많은 정보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이 주를 이루겠으나,

혹시 모를 '누군가'들을 위해 내가 아는 정보 또한 최대한 기록해둘 것이다.

이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완료되는 그 날까지 말이다. 


때론 말도 안되는 억울함에, 슬픔에, 고통에 힘들겠지만

이 또한 나의 삶이며, 나의 몫이라 여기며 담담하지만 단단하게

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보려 한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15년 10월 8일로부터 시작된다.



2015년 1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 둔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건강 상의 이유'였다.

10월 초, 갑작스런 하혈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에 처했다.

원래 생리 기간이 불규칙하기도 했지만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최근 5~6년간은 그래도 꽤나 규칙적인 사이클을 찾아 다행으로 여기던 차였다.

결혼 이후 임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획하며 그 전에 산부인과를 찾아 종합검사를

받아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시기에 갑작스레 하혈을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그 날의 아침. 10월 8일이었다.

다음 날은 한글날이었고, 10월 8일은 본사에서 중요한 교육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그 시기 생리가 1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었으나 이러한 일이 이전에도 없지 않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에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나의 둔함으로 병원갈 시기를 놓쳐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미루어 두었던 일이 10월 8일 터진 것이다.




도저히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듯하여 눈뜨자마자 병원부터 찾았다.

회사에는 몸이 좋지 않아 급히 병원에 들러야 하므로 교육 일정에 늦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집 근처 산부인과 의원을 찾았다. 병원 진료 시작 이전에 도착했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의정부 ㅇ 산부인과. 거리가 가장 가까워 급히 찾은 산부인과였지만,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산부인과를

찾게 될 누군가들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 날 여의사는 지각을 했고, 진료를 보는 내내 쩝쩝거리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그날 아침,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



진료가 시작되었고 초음파를 보며 여의사는 말했다.

"자궁 내막이 굉장히 두꺼워져 있네요. 자궁 경부 깨끗하구요, 여기 보이시죠? 이게 난소인데 오른쪽, 왼쪽 모두 혹 없어요."

사실 질 초음파를 해보았던 경험도 적고 아침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하혈을 해서 이미 눈앞이 하얀 내게

3초 정도 휘휘 보여주는 초음파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자궁 내막 두껍고 나머진 이상 무'라는 진단에 별 다른 소견 없이 피임약을 처방해주고 또 이럴 경우 '소파술'을 진행할 수 있으니

그리 알라고 하며 약 처방전도 주지 않았다. 근처 약국에서 피임약을 사서 먹어보란다.

자궁 내막이 왜 두꺼워졌는지에 대한 이유도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와 나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 나의 스트레스 정도를 의사가 알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신뢰할 이유보다 몇 배나 더 많았는데도 그 땐 그걸 느끼지 못했다.

우선 그 당시엔 내막이 두꺼운 것 외에 다른 혹은 없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정신없던 나는 그저 예예하며 병원을 나섰고, 그 길로 약국에 가 난생 처음 피임약도 사 먹어봤다.

그렇게 첫 진료를 마치고 여의사의 말대로 피임약을 복용하며 우선적으로 하혈을 멈추는 데 온 신경이 가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자궁 내 근종이나 난소 쪽 이상 소견이 없다는 것이 당시의 나에겐 큰 안도감을 주었다.

어찌 되었건 피임약을 며칠 먹으니 출혈이 멈추었고, 평범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또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소파술을 진행해보자고 하던 의사의 말이 가끔씩 떠올랐고 그렇게 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관리를 좀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갑작스레 길어진 생리 기간도, 하혈도 모두 나의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 패턴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기며

회사를 그만두고 관리를 좀 하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나 뿐만 아니라 남편 역시 그러하였다.

퇴사 결정은 그렇게 쉽고 빠르게 내려졌고, 10월 중순 상사에게 퇴사에 대한 뜻을 밝혔다.

커리어의 단절도 염려되었고, 나름 보람을 느끼며 천직이 아닐까 생각한 일을 놓는 것도 염려되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에겐 내 몸을 돌보고 아이를 갖는 것, 그것이 가장 우선순위였다.


그렇게 12월, 퇴사를 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모든 관심은 아이를 갖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럴수록 마음 한 켠에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길지는 않았지만 수 차례 자연임신 시도를 한 것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얼마 안됐으니, 라는 생각으로 그 불안감을 누르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맘편히 기다리자 생각하던 그 때,


다시 지난 10월의 증상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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