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즐거움은 바로 반신욕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어서다.
내 삶의 즐거움을 더욱 만끽하고 싶어 이번에 바스티를 샀다.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라고 쓰지만 풀소유를 지향하는 나이니 종류별로 다 샀다.
바스티는 욕조를 뜻하는 'Bath'에 'Tea'가 붙은 합성어로 추정된다. 반신욕을 하는 욕조에 넣는 티라는 콘셉트로 만든 마케팅 용어겠다 싶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몸의 세포가 열리고 노폐물이 빠져나오는 상상을 해본다. 뜨거운 물이 몸속 장기들을 데워준다. 피부 속 지쳐있는 혈액들이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활기를 되찾는다. 신나게 온몸을 휘젓고 다닌다. 소화작용을 도와주고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준다.
내가 있는 이곳이 욕조지만, 티잔에서 반신욕을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허브티로 물든 찻잔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윽한 허브향. 신선하고 달콤한 향으로 정신도 깨어나는 느낌이다.
온몸이 열기로 가득함이 느껴진다. 이럴 때 차가운 콜라 한 잔이 생각난다. 시원한 탄산이 식도를 가로지으며 느껴지는 그 짜릿함.
몸을 일으켜 몸의 열기를 식혀본다. '노천탕'이 그리워졌다.
'노천탕이 별거냐. 여기에 찬물로 샤워하면 그게 노천탕이지'
객기가 생겼다. 차가운 물로 샤워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샤워기를 들고 찬물이 나오도록 욕조 수전을 맞추고 나니 두려워졌다. 아직 찬물을 튼 것도 아닌데, 마음은 이미 객기 부리던 호기로움은 사라지고 찬물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 몸은 아직 열기로 가득하고, 아직 차가운 물이 나오지도 않는데 난 왜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이상했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는 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마치 이미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건 내 상상력이 만들어낸 망상이었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내 상상력이 만들어 낸 두려움이었다. 내게 지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찬물을 틀지 않으면 전혀 일어날 일이 없는 것인데, 마음이 스스로 객기를 부려놓고 스스로 두려워하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나를 내몬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이 참 많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데 내가 만들어낸 상상력으로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