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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광화문덕
Dec 06. 2024
겨울비에 젖은 마음, 따뜻한 떡볶이의 위로
내 혀끝에서 나오는 분노와 저주는 결국 내 마음에 독을 심어
초겨울 밤.
첫눈이 올까 말까 하던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지만, 차가운 비가 내려 겨울을 미리 알리고 있었다.
축축한 공기가 사람들 마음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찾아오는 찬바람은 왠지 사람 마음을 뒤흔든다. 가로등 불빛이 어둠 속에 길게 늘어질 무렵, 나는 후배와 함께 오래된 동네 치킨집에 앉아 있다.
오래된 동네 치킨집의 창문은 습기로 뿌옇게 흐려졌고,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만이 어둠 속을 찢고 지나갔다.
후배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내뱉는 말들은 날카롭고 무거웠다. 부서 버리겠다는, 깨트리겠다는 단어들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마치 얇은 유리조각이 테이블 위에 흩뿌려지는 듯했다.
나는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매운 양념이 기름기 어린 치킨과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나는 한 조각 한 조각 떡볶이를 집어 들며 그의 아픈 속마음을 헤아렸다. 마음속에 담긴 불만이 넘쳐흐르던 그는, 마치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전부 부정해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는 잠시 잔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네 마음속에 있는 화, 그거 오늘은 여기서 다 꺼내도 좋아. 내가 들어줄게. 하지만, 직장에서는 그러지 말어.”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받아내며 말을 이었다.
“너 이제 부장도 되고, 나중엔 임원도 돼야 할 사람 아니냐. 그런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단순히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웃을 줄 알아야 해. 특히 불편한 사람들 앞에서 여유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해. 너는 큰 사람이잖아.”
그는 약간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떡볶이를 한 조각 집어 들었다. 매운 양념이 혀끝을 찌르듯 감돌았다.
“난 병들어봤잖아. 내 혀끝에서 나오는 시기, 질투, 분노, 저주는 결국 내 마음에 독을 심어. 나를 망가뜨려.”
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살아온 걸 봐서 알잖아. 말로 세상을 부순다고 해서 부서지는 건 없어. 네가 병들 뿐이야.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네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 시작해. 네 마음이 울어...”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분노와 슬픔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길 바랐다.
“넌 내가 못한 걸 해냈으면 해.”
나는 떡볶이를 내려놓고 그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불편한 사람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너를 보여줘. 지금까지 잘 버텨왔잖아.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네가 그런 여유를 가질 때, 진짜로 큰 사람이 되는 거야. 그리고 그들이 너를 보며 놀랄 거야. 진정으로 너를 두려워하게 될 거야”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13년 넘게 팀장님과 함께 했지만, 오늘 말씀이 제일 멋있네요.”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우리가 만나는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만들자. 서로를 축복해 주고, 서로의 50대가 빛날 방법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며 살아보자.”
그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겨울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비가 유리창을
따라 가늘게 흘러내린다.
그 빗물이 마치 그의 눈물을 닮은 것 같았다.
나는
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했다.
“네가 더 나은 내일을 살길 바란다. 진심으로. 우리 건강하게 잘 살자”
그도 잔을 들어 올렸다. 우리의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고 단단하게 울렸다.
밖에서는 겨울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차가운 빗소리가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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