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을 키우지 못하면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2년 안에 결정돼
마음통 선배는 늘 내게 이 말을 강조했다. 기자로 입사해서 필력을 키울 수 있는 시기는 2년까지라고 말이다. 그 뒤로는 선배들이 기사 가지고 뭐라 하지 않는다 했다.
왜요?
"기사를 잘 써서 뭐라 안 하는 게 아니야. 머리가 커져서지. 3년 차가 되면 자기 기사를 가지고 뭐라고 하면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 내 딴에는 애정이 어린 충고지만 받는 이가 불편해한다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맞는 말이었다. 애정이 없는 후배에게 불필요한 이야길 해서 서로 기분 나쁠 필요는 없다. 내가 경험한 바로도 그러했다. 내 딴에는 후배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수용하는 태도에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었다.
네 기사 이해 안 돼
라고 했더니... 기분 나쁘다는 식의 답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론 나 역시 함부로 후배의 글에 개입하지 않는다.
후배의 글을 봐준다는 것은 내 시간을 쪼개서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실 글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 쓰는 게 훨씬 더 쉽다.
단언컨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후배의 글을 봐주는 건 고된 일임에는 분명하다.
요즘 난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들의 글이나 내 이름이 같이 들어가는 기사에 공들일 뿐이다.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지
그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2가지 부류의 기자를 봐왔다. 기사를 잘 쓰는 기자와 그렇지 못한 기자.
기사를 잘 쓰는 선배들은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기사가 곧 명함이 돼 출입처를 돌아다닌다. 동료 기자와 출입처 임직원들 역시 얼굴은 몰라도 기자 이름은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사는 무조건 큰 단독이 아니다. 기자만의 독특한 시각이나 필력이 만들어 낸 기사도 포함된다. 타사 기자들이 놓친 팩트를 가공해 만든 기사에는 감탄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들은......
기사 잘 쓰는 기자들의 특성은...
입사 초기때부터 부단히 글쓰기를 노력했거나 원래 필력이 있거나...
기사를 못 쓰는 이들의 특성은...
노력하지 않는다...
매일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글쓰기 능력은 늘지 않는다. 데스킹된 기사와 초안을 비교하면서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내 것이 된다. 퇴고가 중요한 이유다.
선배에게 기사를 넘기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이들의 글은 늘지 않는다.
물론 사내 글쓰기 교육 시스템의 부재를 탓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글쓰기란 결국 자신의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들 한다. 기사에도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난 초년병시절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래서 더 조바심을 가지고 고민했다.
지금 내 글이 완성됐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난 끊임없이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사실 난 글쓰기에 있어 지진아였다.
그렇다면...
선배들은 글을 다 잘 쓰나?
선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기사를 봐달라고 넘겼을 때 글의 구성이 아닌 조사나 맞춤법을 지적하는 선배, 기사의 작은 팩트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글을 내질러놓은 선배 등... 이들에게는 다시 글을 봐달라고 하지 않는다.
저마다 글 쓰는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
특히 조사나 맞춤법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①귀찮아서 대충 봐줬거나
②글의 구성을 볼 줄 모르거나...
설마...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모든 기자가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기자는 취재를 잘하는 기자와 기획을 잘하는 기자가 있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기자가 있다.
취재를 잘하는 기자는 단독 스트레이트를 잘 발굴해 낸다. 큰 기사는 스트레이트에서 나온다. 팩트 취재에 강한 기자가 사실 최고라고 본다.
그다음이 좋은 기획을 하는 기자다. 기획에는 필력이 중요하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잘 엮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도 많아야 한다. 그래야 기획 속 콘텐츠가 풍부해진다.
스트레이트가 날 것이라면 기획은 고급요리다. 필력이 좋을수록 멋드러진 플레이팅과 깊이 있는 맛이 나는 고급 요리가 완성된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는... 요즘 문제가 되는 미디어의 병폐이기도 하다. 기업체를 으르고 달래서 광고수주로 실적을 내는 기자... 아니면 존재감이 없는 기자...
지난 8년 동안 정말 '헉' 소리 나는 이런 부류의 기자를 2명 본적이 있다.
이들은 사내에서 입지가 상당히 좁았다. 취재력이 없고 필력이 없는 선배는 후배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인품마저 엉망이라면...
내가 겪었던 2명은 모두 외부 사람들에게 거칠기로 유명했다. 사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홍보대행사나 홍보직원에게 화풀이하듯이 말이다.
이들은 아마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주니어 시절에.... 기자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기자란 직함으로 살아갈 것인지...
에필로그
굉장히 민감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記者]란 신문, 잡지, 방송 등의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입니다. 취재해서 글이나 영상으로 풀어내는 이를 말하죠. 그것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글이나 영상으로 풀어내야 할 사람이 이것을 못한다면... 자질 논란이 일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지금의 미디어 현실이 난세(亂世)입니다. 기자라는 이들이 넘치고 넘치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감시자가 많아지면 더 투명한 사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 않다는 게 함정이죠...
제가 말하고 싶은 내용의 본질은 기자로서 그들이 얼마나 고민하느냐입니다. 저만이 제대로 된 기자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런 이야기들은 안 나왔으면 합니다...
"모 매체 기자만 오면 기자실에 음식물이 싹 사라진다", "모 매체 기자는 기자실에 와서 행패를 부리곤 해서 너무 힘들다", "기자회견에는 관심이 없고 사례품을 받으려고 줄 서 있다", "대놓고 수십만 원 호가하는 신상품을 달라고 강요한다...." 등이 그것입니다.
이게 사실이겠느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실제로 출입처에서 들은 하소연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