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 태어나는 관계들
요즘은 누구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어요. 노트북이나 태블릿만 있어도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토끼, 오리, 강아지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어울리는 이름도 붙여줄 수 있어요. 저도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름을 지어주고 애정을 쏟아 키우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성 들여 키운 캐릭터를 타인이 제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기분이 언짢은 건 물론이고, 잘못된 사용으로 캐릭터에 쌓인 신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독점적인 권리로 보호받는 방법으로는 상표권으로 등록받는 방법이 있는데요, 캐릭터도 상표로 등록될 수 있을까요?
● 캐릭터 자체(도형상표)를 등록받고 싶어요!
많은 창작자가 캐릭터 자체, 그림 자체를 보호받고 싶어 합니다. 내가 그린 캐릭터의 얼굴, 표정, 포즈, 스타일 등 그 자체가 나의 브랜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도형상표는 개성 있는 브랜드로 인정받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볼까요?
- 단순한 동물 형태(예: 토끼, 곰, 오리의 일반적인 형태 등)
- 특징 없는 표정 (예: 점 두 개 눈 + 동그라미 입 등)
- 유사한 캐릭터가 이미 많은 경우
- 장식적이거나 추상적인 느낌일 경우
귀엽고, 사랑스럽고, 잘 그린 그림이라도 '브랜드로 구분할 수 없다'라고 판단되면 특허청에서는 "상표로서의 식별력이 부족하다"라고 판단할 수 있어요. 제가 그 캐릭터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도 일반 소비자들이 그 캐릭터만 보고 "아, 이건 박윤경 작가의 캐릭터야!"라고 바로 연상할 정도의 특징이 없다는 거죠.
상표법에서 말하는 식별력이란, 특정한 표장이 특정인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나타내는 표지로서 기능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 캐릭터 이름(문자상표)도 등록받을 수 있을까요?
캐릭터의 이름도 상표가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름도 상표로서의 특징이 없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나 누구나 써야 하는 말이라면 상표로 등록받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 귀염토끼, 포근 친구, 말랑젤리 같은 일반 표현
- 상품을 직접 설명하는 듯한 이름
- 너무 흔한 이름
이런 이름은 상표로 등록되기 어려워요. 의미가 없는 조어, 반복 사용으로 브랜드로 인지된 이름이라면 등록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오래 써 온 상표도 어려울까요?
단순하고, 쉽고, 귀여운 캐릭터는 절대로 상표가 될 수 없을까요? 상표법은 "사용에 의한 식별력 취득"이라는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표로서의 특징(식별력)이 없어도 꾸준히 사용한 결과 소비자들에게 누군가의 상표로 인식된다면 예외적으로 상표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실무적으로는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인정받기 쉽지 않습니다. 수년간 꾸준히 사용했어야 하고, 그 브랜드로 매출액이 상당함음 증명해야 하고, 소비자 인지도 조사 같은 복잡한 입증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개인 작가에게는 현실적으로 부담이 큰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캐릭터를 상표로 등록받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 "캐릭터+이름"의 조합은 가능할까요?
캐릭터(그림) 단독이 아니라 "캐릭터+작가명"을 조합한 형태로 상표출원을 하면 등록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 캐릭터 밑에 "PARK YOON"이라는 글씨를 넣거나, 아예 캐릭터 안에 제 이니셜을 디자인 요소로 포함시킬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캐릭터만으로는 부족했던 식별력을 문자 요소가 보완해 줄 수 있습니다.
● 캐릭터에 옷을 입히는 건 어떨까요?
캐릭터만의 독특한 도형적 특징을 강화하는 방법도 있어요. 토끼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입에 네 잎 클로버를 물고 윙크를 하든지, 독특한 패턴의 옷을 입힌다든지 등의 방식으로 "이 캐릭터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는 걸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미피"처럼 나만의 고유한 토끼 모습이 된다면 소비자들은 그 토끼의 모습을 보면 작가를 바로 떠올릴 수 있으니 상표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됩니다.
● 권리까지 생각한다면
내 그림이 "마음에 든다"라고 해서 바로 상표등록이라는 권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절한 방법을 찾으면 충분히 상표로도 보호받을 수 있어요.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다면 권리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인지 효과적일지도 생각해 보시길 제안해 드립니다. 저도 캐릭터화할 수 있는 제 그림이 있는지부터 살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