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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26. 2021

별건 아니고 그냥 한밤의 콘치즈

들쭉날쭉 우리네 밥상

"오빠아 콘치즈 먹고 싶어."

"...그럼 나 오는 길에 사오라고 했어야지."

"보냈어 카톡."

"잠깐...2분 전에?"


 늘 그렇듯 햄버거를 사들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깥양반이 말한다. 콘치즈라고. 먹고 싶을만하지. 그런데 오늘은 6시부터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인 걸. 지금은 5시 45분이다. 10분 내에 후다닥 저녁식사를 마치고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런 내게 바깥양반은 내가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잡을 때쯤 불현듯 콘치즈 생각이 나 문자를 보냈던 것. 다행히 누나가 몇달 전에 준 밀봉 옥수수가 있다. 유통기한도 좀 넉넉해서 바로 까서 만들기만 하면 된다. 나는 햄버거 먹은 자리를 치우고 바깥양반이 누워있는 옆자리에 작은 상을 펴고 수업을 들었다.

"마약 옥수수 해줄까?"

"아니 콘치즈."


 콘치즈는 오랜만인데. 수업을 마치고 생각을 했다. 원래는 누나가 마약옥수수를 만들어 먹는데 쓰는 통옥수수를 나눔해준 거라서 마약옥수수도 재미는 있을 거다. 버터에 지글지글 구워서 파마산을 뿌리고 거기에 고춧가루 솔솔 치면 되려나. 시큼한 맛은 뭘로 내지. 그러나 어쨌든 바깥양반이 거부권을 행사하였으므로, 나는 식칼로 옥수수를 주욱 씨눈까지 탈탈 털어내서 팬에 올렸다. 맛도 좋고 하는 재미도 있는 음식인데 9시에 만드는 콘치즈라니.


 다만 임신 이후 우리의 식단이 들쭉날쭉해서 딱히 체중이 증가하고 있지는 못하다. 바깥양반은 사실상 하루 한끼 겨우 챙겨먹는 정도. 입덧은 끝나가지만 3개월 이상 시달린 섭식 스트레스의 후유증이 오래간다. 그럴때에 콘치즈라 좋지.

 버터에 지글지글 옥수수가 볶아지는 향이 올라오면 모짜렐라 치즈를 꺼내서 한 줌 먼저 같이 볶으면서 파마산치즈도 조금 뿌렸다. 나중에 바깥양반에게 얻어서 한입 먹어보니 스위트콘이 아니라서 맛이 밍밍 그 자체다. 파마산치즈 말고 설탕도 조금, 이왕이면 캐러맬라이징도 해서 볶아넣었으면 좋았겠다. 어쨌든 빨리 콘치즈를 만들고 나는 수행평가 채점도 해야 하기에 쉭쉭 손을 놀려 부지런히 볶았다. 중불에 오래 볶아야 해서 은근히 시간이 또 걸린다. 옥수수 두개를 다 쓰긴 어렵겠고 나머지 하나도 손질해서 봉지에 담아 냉동실 행. 주말쯤에 콘치즈 한번 더 해주면 되겠지.

 모짜렐라 치즈를 넉넉히 올려 오븐에서 210도에 10분. 콘치즈가 완성될 때 바깥양반은 거실에서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옛 드라마인데 지금 봐도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겪지도 않은 시월드 타령이 신혼 때에 비해 바깥양반에게서는 튀어나오지 않는다. 하긴 이 시간에 콘치즈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랑 사는데 뭐. 식탁으로 부르면 드라마 시청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식탁에서 쓰는 나무받침에 접시와 탄산수를 올렸다. 무슨 마더스데이 같구만.


 이제 콘치즈의 온도는 200 한참 아래로 내려왔을까. 자리에 놓아주자 바깥양반은 후후 불어서 입에 넣는다. 맛있냐 물으니 맛있다고. 그래. 한밤의 콘치즈는 이런 분위기겠지. 나는 거실로 작은 상을 꺼내와서 수행평가 채점을 시작했고, 바깥양반은 드라마에 집중하며 한참만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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