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동백이는 오늘도

겨울 속초 반달살이(18:집)

by 공존

"아으브아아으"


긴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기용 침대에 누워, 동백이는 한참 동안이나 길게 옹알이를 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먼저 동백이를 모빌을 켜두고 눕힌 뒤 각자 씻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동안 10분, 15분 가량을 혼자 마음껏 수다를 떨어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동백이와 모빌 친구들과의 대화와 같아 보였다. 태어나서는 한동안 두시간 주기로 맘마를 먹고 잠을 자던 아기의 찰나와 같은 시간들. 그 시간이 지금 대여섯시간의 외출시간으로 변했으니, 아이에겐 모빌이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로 보였을 테다. 잘 지냈어? 나는 오늘 엄마 아빠랑 바다를 보고 왔어. 너희들은 사이좋게 지냈니? 하는. 그런 말을 동백이는 알록달록 친구들에게 건냈다.


아이는 자라는 모든 토양에서 양분을 빨아들이게 마련이다. 3개월을 갓 넘겨 머나먼 동해바다에 안착하고, 그 곳에서 긴 긴 하루를 아이는 보냈다. 우리는 아침을 함께 숙소에서 먹고 외출을 나와, 보통은 저녁시간을 넘겨 들어왔다. 아이는 대개 가는 곳마다 차분히 잘 있어주었다.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아이의 더 거센 옹알이를 겪어보니 알게 된 이야기지만, 애초에 3개월짜리 아이가 시끄럽게 굴어봐야 고작, 큰 소리를 낼 수도 없고 오랫동안 울지도 못한다. 5개월을 꽉 채워가는 지금,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아줄 때면 이따금 집 벽을 쩌렁쩌렁 뒤흔드는 그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곤 한다. 아빠 엄마가 데리고 가는 곳마다 조용히 잠을 자거나 깨어나서도 이내 품에 조용히 안기던 너는 어디를 갔단 말이냐.


아이를 데리고 한 겨울 긴 휴가를 보내고 오니, 영수증은 어김없이 날라든다. 미뤄둔 일들로 나는 2월을 또 다시 바삐 보냈다. 외출을 하면 아이와 놀아주고, 집에 오면 아이를 재운 뒤 밤을 새는 일이 여럿. 그러는 사이에도 착착 시간이 흘러 개학을 맞았고, 목을 겨우 가누던 아이는 뒤집기와 배밀이를 한다. 아직 허리를 제대로 버티진 못하지만 서 있는 걸 좋아해, 겨드랑이를 받쳐서 세워놓으면 신나게 두리번 거리며 손을 빧다. 첫니가 났고, 드디어 머리는 가라앉아서 뿔처럼 솟아있던 그 모양새가 차분해졌다. 함께 보낸 휴가, 그리고 돌아와서의 바쁜 삶, 아이는 매 순간 자란다. 아빠가 길게 길게 함께 하던 시간에도, 그리고 아빠 얼굴을 거의 못보는 하루 속에서도.


이제 나에게 샘솟아나는 그런 고민들은, 아이가 커나가는 만큼 생겨나는 욕심에 나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것인데, 그러려면 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아이 없이 보내는 시간 사이의 선택의 문제가 찾아든다. 아이와 우리 가족을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며,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길 선택한다면, 먼 미래의 보다 나은 조건들을 일부 포기하는 일을, 감내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라도 있다는 건 나에게 좋은 일이다. 많은 경우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있는 시간을 모두 짜내어, 미래의 삶을 위해 투자해 넣어야 하지.


그러나 배부른 과거의 추억과 배부른 미래의 전망을 담아 겨울의 여행 일기를 정리하면서도, 지금의 나와 아내가, 아이가, 우리 가족이, 함게 하고 있기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가능하다는 답을 미리 예비해둔다. 아이와 살아가는 시간은 모든 것이 고난과 고민과 선택과 반성의 연속, 그러한 삶 속에 고작 내 약간의 개별적인 삶이 더해진들, 그것이 아이와의 삶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나하나의 선택은 그저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일 뿐. 그런 시간도 긴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아이의 온기를 곁에 느끼며 잠에 들고, 아이의 울음소리에 이른 아침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모든 시간은 바꿀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동백이는 오늘도, 투정과 함께 잠에 들고, 두번이나 황금색 변을 싸고, 200ml의 맘마를 거의 항상, 남기지 않고 먹으며, 자기 손으로 무언갈 집고, 그것을 입에 집어넣는다. 아빠는 오늘도, 수십가지의 선택에 대한 미련을 가슴에 묻으며 학교로, 학교에서 또 학교로, 차를 달린다. 그리고 엄마는 오늘도, 집에 먼지는 안끼나 벌레가 혹시라도 생길까 이곳저곳 쓸고 닦는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는 오늘도.

keyword
이전 17화이 공간을 곁에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