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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Jul 02. 2024

글을 쓰기 위해 커튼을 달았다

 3년 전 이사를 하며 내 방이 생겼다. 남편과 함께 쓰는 안방이 아닌 내방이.


이사 전엔 캘리그래피나 글을 쓸 때면 가족들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식탁이나 탁자에서 다. 아이의 책상, 거실에 놓인 탁자, 식탁을 오가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녀야 했다.

내방이 생기면 무슨 일이든 꾸준히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아담한 방,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는 책상에서 오롯이 글을 쓰는데 집중하는 나를 상상했었다.


 갑작스럽게 이사를 결정하며 정신없이 집을 보러 다녔다. 다양한 구조의 집 중에서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내 방으로 꾸밀 수 있는 알파룸이 한몫을 했다.


 내가 꿈꾸던 방은 책장과 책상 그리고 안락한 일인 소파가 있는 심플하고 모던한 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갈 곳을 잃은 피아노와 스타일러 그리고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내 방 곳곳에 배치되었다. 다른 방이나 거실에 배치가 애매한 가구들이 내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내가 꿈꾸던 방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그리던 방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공간으로 이용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차고도 넘쳤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방에서 캘리그래피나 글을 쓴 적이 거의 없다는 거다. 통유리창으로 된 오픈된 공간이라 집중이 안된다는 핑계를 대 보지만 나는 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과 끈기가 부족해서라는 걸.


 핑계를 차단하기 위해 미루고 있던 커튼을 달았다. 하얀색 시폰 커튼으로 분위기를 살려볼까도 했지만 독립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분위기를 포기하고 암막 커튼을 설치했다. 가구배치는 바꿀 수가 없어 소품들을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슬라이드 유리통창을 닫고 커튼을 치니 완벽하게 독립된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오픈된 공간이라 집중이 안 된다느니 쓸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핑계는 더 이상 될 수 없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순 있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공간이라면 몰입하는데 도움이 된다. 집이 될 수도 있고 카페가 될 수도 있고 도서관이 될 수도 있다. 각자 선호하는 글 쓰는 공간 스타일이 있다. 나는 사방이 막힌 독서실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래서 카페를 갈 때도 구석진 곳에 앉는 편이다. 이젠 집에도 그런 공간이 생겼다. 이제부터 이 방을 글을 쓰는 공간이라고 인식하고 글 쓰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타서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고 커튼을 친다. 방안이 커피 향으로 가득하다.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판에 손을 올린다.

내 방에서 글쓰기, '오늘부터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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