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KBS 같아서 KBS 안 되겠어.

공통특성은 지워진다

by mbly

2008년, KBS 신입 아나운서 공채 시험을 쳤었어요.


2007년도 쳤고, 2009년도 쳤으니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합숙면접에서 같은 방을 썼던 분이 합격하셨다는 건 기억납니다.


같은 학교 후배이기도 했고, 착하고 매력적인 눈웃음이 정말 인상 깊었던 분이었지요. 당시에 그 친구는 처음 아나운서 시험을 본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시험을 보는데 합숙까지 오다니! 합숙면접은 4차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온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요즘은 전형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예전엔 시험 전형이 5 차수 정도로 이뤄졌어요. 아나운서 시험 1차에서는 비디오, 오디오 시험을 치릅니다. 카메라 앞에서 뉴스 원고를 짧게 읽고 그걸 검증받는 시험이에요.


2차는 필기시험입니다. 기본 시사상식과 방송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입니다. 객관식 문제도 있고 단답형, 서술형 문제도 나옵니다. 논술, 에세이, 실제 MC 오프닝 원고 등을 잘 쓰는 것이 정말 중요하죠.


어떤 방송사에서는 영어시험을 보기도 했었는데, 토익이나 다른 영어시험 점수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지요.


3차에서는 실무진 면접을 봅니다. 선배님이 되실 아나운서 분들, 같이 일하게 될 PD님 등이 면접관으로 앞에 계세요.


여기까지 통과했을 때 4차 합숙면접에 들어갑니다. 1박 2일 동안 깊이 있는 실무면접, 토론면접 등을 보고 면접관들이랑 식사도 함께 하면서 다양한 면모를 검증받게 돼요.


이때 식사는 정말... 숨 막히죠. 어디까지나 면접 과정에 있는 거니까요.


잘 먹어야 서글서글한 인상을 줄 것 같고, 그러면서도 면접관에게 눈을 조금이라도 더 맞추기 위해 자주 고개를 들어줘야 할 것 같고, 혹시나 밥 먹는 중에라도 나에게 질문이 오면 면접장에서 하는 대답과는 좀 다르게, 인간적인 따뜻함을 풍기면서도 분명하게 말을 해줘야 할 것 같고, 그 기회를 놓칠까 봐 양껏 입에 밥을 넣으면 또 안될 것 같고. 밥 먹는 일이 세상 어렵습니다. 면접장에서는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 예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식사 면접에선 그런 걸 예측하기에도 어려워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합숙면접 면접관으로 들어가면서는 지망생들에게 최대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평가를 위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좀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이 없는지 거의 개인 코칭에 가까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자, 그래서 다시 2008년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합숙면접에 임했던 저의 결과는?


네, 떨어졌어요. 5차인 최종 임원면접에 가지는 못했네요.


아쉬운 마음도 마음이지만 떨어진 이유가 뭐였을까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면접 답변 내용 준비는 물론이고 첫째 날과 둘째 날 이미지도 달라 보일 수 있도록, 단정한 모습, 편안한 모습 이렇게 콘셉트까지 맞춰 준비했었거든요.


최종 발표가 나고 나서 같은 방에서 합숙했던 아나운서에게 합격 축하 전화를 했는데, 운 좋게도 그때 떨어졌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면접관 중 한 분이 저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있었더라고요.


너무 전형적인 KBS 아나운서 같아서 아쉬웠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아니, KBS 아나운서를 뽑으면서 너무 전형적인 KBS 아나운서라 안 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너무 정답 같아서 안 된다는 말이잖아요. 이상하죠?


그런데 이후에 이 책을 보면서 면접관의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지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신병철 박사님의 '논문 백 편 씹어먹기' 시리즈 중 하나예요. 100편 이상의 심리학 논문을 통해서 브랜딩, 마케팅, 리더십, 고객 대응 등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여기 있는 내용 중에 '소비자 선택 모형 Choice Model'에 대해 읽게 되었어요. 아마 경영 쪽 공부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잠깐 소개해 드릴게요.


소비자는 뭔가를 선택할 때 공통 특성, 나쁜 특성, 좋은 특성 이렇게 3가지로 정보를 분류하고 선택합니다. 그중에 가장 먼저 탐색하는 건 공통 특성이고, 가장 먼저 지우는 것도 공통 특성입니다. 그러고 나서 나쁜 특성을 배제하고, 좋은 특성 중 하나를 골라 선택합니다.


한 마디로 공통 특성은 지워지고, 나쁜 특성은 배제하고, 좋은 특성 중에 비교해서 선택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면접에서 활짝 웃으라는 이야기 많이 듣잖아요? 다시 말해서 잘 웃으면 합격 확률이 올라간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면접장에 온 지원자는 모두가 본인이 이 회사에 가장 적합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거예요. 그렇다면 아주 독특한 뭔가가 없다면, 공통적인 특성은 면접관의 머릿속에서 지워집니다. A도 성실하고, B도 성실하고, C도 성실하다고 하면 '성실함'이라는 특성은 면접관의 머릿속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죠.


그다음, 나쁜 특성, 면접 태도가 좋지 않다거나 답변을 잘 못한다거나 하는, 면접 합격 기준에 못 미치는 역량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지원자는 당연히 배제하게 되겠죠. 안 뽑겠죠?


마지막으로, 면접장에서 활짝 웃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너무너무 긴장되는 자리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활짝 웃는 사람이 사실은 참 드뭅니다. 공통적이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좋은 속성인 거죠. 게다가 웃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면서 같이 웃게 됩니다. 미러링 효과라는 게 있지요. 면접관에게 호감이라는 감정이 일으켜지면서 좋은 특성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따라서 웃는 사람을 최종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제가 너무 KBS 같아서 KBS 아나운서가 되지 못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이미 KBS라는 조직에는 KBS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KBS 같다는 건 공통 특성인 거죠. 저는 지워졌던 거예요.


나쁜 특성은 없었겠지만 (그러니 합숙면접까지 올라왔겠죠?) 공통 특성 말고 저만의 좋은 특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저의 탈락 이유였습니다.



면접과 관련해서 개인 코칭을 하다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면접 모범답안을 가르쳐 주세요.



"이 회사가 원하는 정답 인재는 어떤 건가요? 이 질문의 정답은 무엇인가요?"


정답은 없어요. 혹시 지난 면접에서 정답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이번에 말하면 여러분은 공통 특성이 되어서 지워질 거예요.



당신만의 경험, 당신만의 생각, 당신만의 태도



아주아주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왜, 어떻게, 무엇을' 이 3가지에 대해서만이라도 차근차근 준비해보면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당신만의 것'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워지지 마세요!




메인 이미지 출처 : fla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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