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배려
자기소개서를 쓸 때나 면접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왜 뽑아야 하는데?
제가 지원자였을 때는 정말 원망스럽기 그지없는 질문이었어요. 저를 이미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2010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YTN 앵커 공채에 지원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할 아나운서를 뽑았고 경력도 필요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도 방송사 공채를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그 해에도 방송사 채용이 정말 없었어요. 있었어도 거의 비정규직 채용이었고 신입 채용은 더더욱이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막막했던 시기였어요.
저는 현직에 있었던 시기지만, 역시 비정규직일 때였어요. 정규직 전환은 2011년에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도 애초 계약대로 햇수를 채우면 바로 해지가 되었을 거예요. 정규직 전환이 되기 전까지는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다른 방송사에 시험을 보러 다녔습니다. 지금 아나운서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얼마나 막막한지는 그래서 저도 잘 알아요.
여하튼 2010년 YTN에도 간절한 마음을 안고 지원을 했었는데요, 서류에 합격한 후 실무면접에 들어갔던 그때의 그 공간, 맡아지던 냄새 느껴지던 분위기 이런 게 아직도 살짝 떨림이 느껴질 만큼 생생합니다.
네댓 명 정도 같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공간이 아주 크지 않은 아늑한 면접장이었고 편안한 의자에도 앉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왼쪽에는 시험 때마다 몇 번 마주쳤던 남자분도 계셨어요. 시험을 치르다 보면 서로 인사까진 하지 않아도 눈에 익은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면접관 분들도 지원자들을 엄격하게 맞이 하시진 않았어요. 대체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듯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질문만큼은 날카로웠습니다. 그때 받았던 질문이 바로 이거였죠.
"왜 우리가 당신을 뽑아야 하나요?"
긴장은 했지만 아무래도 경력이 있었으니까 처음 아나운서 시험 보러 다닐 때만큼 떨리지는 않았어요. 면접관의 질문을 잊어버릴 만큼 그렇게 긴장하던 때는 이제 지났죠. 그런데 저 질문을 받는 순간, 무릎 위에 포개어 놓은 양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저는 이때 아직 [논백경쟁전략]에서 보았던 '공통되는 부분은 지워진다'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웬만큼 경력을 가진 아나운서들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대답을 했던 것 같아요. 예상 가능했고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죠. 그 때문에 떨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 왼쪽에 앉아있었던 남자분이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애초부터 YTN 앵커가 될 생각은 없었거나 본인은 앵커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온 것은 꼭 방송사에서 앵커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 외 다른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때 본인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또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은 프리랜서 방송인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꼭 본인을 방송에 투입하지 않더라도 방송 프로그램에 적합한 인재 풀을 갖추고 있으니 언제든 연락 주시라는, 사업가로서의 인사를 의미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뭔가 재미있죠?
이 사람의 대답은 비록 면접관이 애초에 원했던 답과는 방향이 달랐더라도, 어쩌면 면접관의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YTN에서 그 사람과 인연을 맺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사람은 한 사람에게만큼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에게 말이죠.
이후로 줄곧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인상에 남길 수 있는 한 마디라는 건 뭘까? 어떻게 하는 걸까?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작하는 한 마디'에 대해서 신중하게 다듬어보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시작할 때 늘 똑같이 인사말을 하더라도 새벽, 오전, 저녁, 밤 뉴스에 따라서 어떻게 표현해낼지 고민해봤어요.
프로그램 VCR을 같이 본 다음 바로 던져주는 MC의 한 마디는 뭐가 좋을지도 고민했죠. 아주 짧은 한 마디일 뿐이라도 말이에요. 또 앞의 가수가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면서 만든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해 가면서 뒤의 가수에게 자연스럽게 이어 줄 수 있을지도 무대 아래에서 계속 생각했지요.
어떤 말투로? 어떤 분위기로? 어떤 단어로? 세세하게 고민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와... 진짜... 먹고 싶네요."
"아.. 이게 경주의 맛이고 멋이죠."
위의 멘트들은 그다지 신선한 멘트라고는 볼 수 없어요. 익숙하게 들었던 말이죠? 그렇지만 말의 디테일, 그러니까 '목소리, 말투, 분위기'만큼은 다를 수 있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핵심을 꼬집는 내용 전달, 신선한 표현은 여기에서 배우려고 애썼습니다.
신문기사 제목의 법칙
신문 기사는 내용을 간결하게 함축하고 있거나 아니면 수많은 정보 중에서 진짜 봐야 할 것을 보게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식약처 "코로나 19 먹는 치료제 긴급사용승인 여부 내일 결정"
식약처가 (누가) 먹는 치료제 승인 여부를 (무엇을) 내일 (언제) 결정한다 (어떻게). '어디서'와 '왜'가 빠지긴 했지만 여기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아닙니다. 넣을 건 넣고 빼야 할 건 뺀, 명료한 신문기사 제목이에요.
아래 제목은 또 조금 다른 시각으로 뽑아낼 수 있습니다.
빌리 엘리엇 무대 구동의 핵심 장치인 PLC 결함이 있었고, 커스터마이징 된 장비가 해외에서 수급되어야 안전한 무대를 직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발레리노가 되고 싶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감동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내년 2월 2일까지 서울 구로구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이 글 속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뭘까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거죠. '이번 주에 공연을 안 한다'는 거겠지요.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나왔더라고요.
빌리 엘리엇, 이번 주 공연 취소
자 그럼 이런 신문기사 제목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1. 내용 안에서
주어진 내용 안에서 육하원칙을 이용해서 뽑는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이 들어간 단 한 문장은 한눈에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당연히 인상에도 바로 남겠죠.
2. 내용 밖에서
주어진 내용 밖에서 보는 사람이 어떤 정보를 가장 기대할지 관점을 달리해 뽑아내는 것이죠.
이 책에도 이 내용이 있더라고요. [스틱] 칩 히스, 댄 히스의 책입니다.
오늘 비벌리힐스 고등학교의 케네스 L. 피터스 교장은 다음 주 목요일 비벌리힐스 고등학교의 전 교직원이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새로운 교수법 세미나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세미나에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시카고 대학 학장 로버트 메이너드 허친스 박사, 캘리포니아 주지사 에드먼스 팻 브라운 등이 강연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 이야기를 신문 기사로 쓴다면, 그 제목은?
다음 주 목요일 휴교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교직원 누가 세미나에 가는지, 그 세미나에 누가 강연자로 오는지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다음 주 목요일에 휴교한다는 정보인 거죠.
정리해 볼게요.
육하원칙으로 내용 안에서 제목을 뽑을 때는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게 보는 이를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고요, 내용 밖에서 제목을 뽑는 것은 보는 사람이 어떤 걸 가장 기대하는지 이 이야기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스피치에서도 마찬가지겠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보는(듣는) 사람을 배려할 것
당신을 왜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을 할 때도 이걸 활용하면 아주 좋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이후에 제가 면접관이 되어보니까 '왜 당신을 뽑아야 하나?' 이 질문은 지원자뿐만 아니라 면접관 자신한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지원자를 나는 왜 선택했나?'
면접관인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면접관 역시 증명해 보여야 했습니다. 어쩌면 지원자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는 건 공격이 아니라 도와달라는 의미인지도 몰라요.
내가 당신을 선택하려고 하는데, 그 타당함을 좀 설명해다오.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와달라는 의미라는 걸 먼저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긴장하지 말고, 목적에 집중하고 듣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이야기해보세요.
메인 이미지 출처 : flat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