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지는 것과 말의 내용이 일치하는가
아나운서 지원자로서만 면접장에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면접관으로 면접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면접장에서 지원자만 긴장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더라구요. 면접관들을 위한 면접교육이 왜 있어야 하는지도 그때 피부로 느꼈지요.
물론 본인의 업무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에 새로운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느냐, 또 그 절차를 어떻게 타당하게 만들 거냐는 다른 문제였어요.
무작정 지원자를 면접장에서 만나 질의 답변을 하고 느낌만으로 당락을 정하는 것이 당연히 아니고요, 팀의 요청에서 시작되어서 윗 선으로 차례차례 보고와 컨펌을 거쳐 최종 채용 결정이 나면, 그때부터 담당 부서 실무진은 인사팀과 함께 채용 형식과 내용을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결정해야 할 사항이 정말 많아요.
언제부터 채용공고를 내고, 각 단계별 일정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본업과 겸업해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업무 스케줄과 조율은 가능한지, 또 업무 스케줄을 고려해서 채용팀에 포함될 사람은 누가 될 것인지 구성을 하죠. 담당 부서 팀에서는 몇 명의 인원이, 그 외 타 부서에서는 몇 명에게, 또 누구에게 요청해서 구성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공개채용을 할 것인지, 추천을 받아 비공개로 진행할 것인지, 몇 차까지 프로세스를 진행할 것인지, 각각의 면접은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필기시험을 치를 것인지, 합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등 형식적인 면에서도 신경을 써야 하고,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아주 세세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채용 목적을 분명히 하고, 심사 기준을 정하고, 뉴스원고와 MC원고는 어떤 내용으로 준비할지 등 준비물을 챙기고, 질문 리스트를 뽑고, 예상 답변은 물론 그렇지 않은 답변이 나왔을 경우에는 어떻게 피드백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죠.
면접관 각자의 심사기준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도 당연히 필요하지요. 여러 번의 회의와 컨펌을 거쳐 타당하고 일관성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전 조율을 해도 면접관마다 의견이 나뉘어서 면접 후에도 회의를 거쳐야 하긴 해요.
여하튼 이메일로 채용 지원서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면접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사실 더 바쁜 면접 준비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요, (아! 지원서를 이메일로 안 받는 곳도 있으니 이것도 결정해야 할 사항 중에 하나겠군요!)
시험을 치르러 다녔을 때는 채용과정에서 설레고 긴장하는 건 지원자들만의 몫인 줄 알았는데, 실제 면접관이 되어보니 면접관이야말로 채용 공고 이전부터 굉장히 설레고 긴장하면서 어쩌면 지원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아니, 설렌다는 건 좋게 표현한 거구요. 사실 채용 준비에서 면접 심사, 결과 발표와 신입사원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굉장히 힘들고 피곤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최대한 신경 써서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면접 당일날, 굳어있는 면접관의 얼굴을 보는 게 정말 당연한 일이에요. 지원자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답변이 터무니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피곤해서 낯빛이 흙빛인 분들도 아마 많을 겁니다.
저도 가능한 웃는 낯으로 지원자들을 대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고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장기 있으면 한 번 해보실래요?"라는 질문에, 단숨에 피곤한 면접관들을 각성시키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아주 좋은 취업 전략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아나운서 시험장에서는 노래 장기를 하는 지원자들이 정말 많아요.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 노래 발성도 뛰어난 분들이 많죠. 성악과 출신 지원자들은 정말 서류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면접관들 고개를 절로 스르륵 들게 할 만큼 훌륭하게 노래를 하기도 합니다.
제가 면접관으로 들어갔던 실무면접에서 "저는 장기로 랩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한 남자 지원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랩?'
그 친구도 절로 고개를 번쩍 들게 하긴 하더군요. 하긴, 아나운서가 되려면 또렷한 발음이 정말 중요하니까 그걸 돋보이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 결과는.. 들렸던 고개가 다시 떨어지게 하는.. 부끄러움은 면접관의 몫이었던 안타까운 장기자랑이었어요. 어떻게 반응해주어야 할지, 그다음 질문은 뭘 이어나가야 할지 순간, 정지가 오더라고요.
맥을 끊는다는 이야기가 있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로채는 것 뿐만 아니라 본인이 말하는 도중에도 애초에 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딴 길로 새는 것도 맥을 끊게 되는 것 중 하나죠. 그리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딴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도 맥을 끊게 하는 일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저 사람은 무슨 의도였을까?' 이런 물음이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들게 한다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하는 사람의 목적 달성은 이미 실패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장기자랑을 전략으로 삼는 지원자는 그 시간을 통해서 면접관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좀 더 궁금하게 만들면서 면접을 이어나가게 해야 합니다.
장기자랑의 목적은 '노래를 잘하니까, 랩을 잘하니까 아나운서로 뽑아주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자랑으로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고 호감이 들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궁금증이 솟아나오게끔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장기자랑도 자기소개의 일환으로 일관성 있는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메인뉴스 앵커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고, 시사 프로그램을 주로 하고 싶다는 지원자가 뜬금없이 사투리 장기자랑을 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전략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블로그 포스팅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제목과 내용이 일치되어야 포스팅이 상위에 뜬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키워드를 찾는 것도 중요하고, 글의 길이도 중요하고, 내용에 전문성도 필요한데, 무엇보다 제목과 내용이 같은 흐름을 가져야 로직이라는 녀석도 좋은 글이라 판단한다 합니다.
그런데 뭔가 사례나 인용도 풍부하면 좋을 것 같고, 내 생각의 자유 흐름대로 쓰게 되기도 하다 보니 실제 제목과는 딴 판인 내용 1, 2, 3이 나오는 경우가 정말 많다더라고요. oo 하는 비법이 제목이라면 내용에는 비법 1, 2, 3이 나와야 하고, oo 하는 이유가 제목이라면 이유 1, 2, 3이 나와야 하는데 전략없이 쓰다보면 섞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목에 맞춰 내용을 구성한다는 이 이야기가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기는 애요. 그런데 실제로 써보니 저도 그렇더라고요. 자꾸 다른 이야기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잘 써야겠다는 욕심이 생길수록 내용과 일치되는 사례가 아니라 좋아 보였던 사례를 억지로 집어넣고, 제가 스스로 맥을 끊으면서 독자에게 다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게 되었어요.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기자랑은 관심과 흥미를 돋울만한 사례 정도에 해당하겠죠. 혹은 내가 이 회사에 채용되어야 하는 이유 1, 2, 3 중에 하나에 포함되겠죠. 그러니 당연히 좋아 보였던 사례가 아니라 내가 주장하는 나의 면접 이미지 혹은 포부와 일치하는 것으로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포항MBC 면접장에서 딱 한 번 장기자랑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지역방송에서는 서울 본사와는 달리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를 원해요. 뉴스, 교양, 오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죠.
그래서 앞에서는 뉴스를 신뢰감 있게 전달하는 면모를 보여주었고, 장기자랑으로는 코믹한 모습도 살짝 보여드렸습니다. 그때는 개그우먼 정선희 씨가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고 계셨었는데, 명랑 앵커라고 해서 청취자의 사연을 재밌게 구성해서 뉴스처럼 읽어주는 코너가 있었거든요.
그걸 따라 했었는데, 덕분에(?) 입사를 했는데요, 한 가지 단점은 입사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그 흉내를 계속 냈었다는 거지요.
자, 오늘은 어쩌면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면접 중 장기자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나의 이미지와 내가 말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법'은 꼭 장기자랑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죠.
일관성있게 보여주고 있는가?
'보여지는 것과 말의 내용이 일치하는가!'
여러 말하기 전략에서 유용하게 사용해보시길 바랄게요.
ps. 정선희 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