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말이지
"지효야, 뭐 해?"
"안 그래도 카톡 하려고 했는데, 너 오늘은 치맥 가능해?"
"나 내일부터 일 나가게 되었어!"
또 치맥데이가 미뤄졌다. 합격 소식도 정말이지 기뻤지만 생각보다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친구의 출퇴근 시간은 왕복으로 3시간이었다. 일산에는 사무직보다는 서비스직이 많은 편이다. 사무직을 찾아 헤맸던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괜찮은 일자리들은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해방일지' 드라마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서울에 집에 없으면 늦은 시간까지 회식 자리에 참여하는 일은 고사하고 자연스레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본인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그 먼 거리를 왕복해서라도 일을 하겠다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대단함을 느꼈다.
한때 나도 일산에서 독산역까지 출퇴근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삶에 질도 떨어지고 퇴근 후 먹게 되는 포장마차 음식 덕분에 살이 정말 많이 쪘다. 건강이 자연스레 나빠졌고, 업무, 인간관계까지 모두 엉망이 되었다. 결국 1년도 다 채우지 못한 채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출퇴근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 되었다. 그리고 조무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출퇴근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첫 출퇴근으로부터의 해방일지였다. 그래서 난 친구에게 같이 병원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는데 한사코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의 줏대 있는 모습에 대단함을 느꼈다. 지금의 일을 얻기까지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더는 손을 벌릴 수 없다고 말한 친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의지와 목적이 분명했다. 외국계 기업으로 취업을 하고 싶다던 친구는 간호학과를 자퇴한 뒤 중국어 학과를 갔다. HSK 취득이 졸업 요건이었던 친구는 입학한 지 5년 만에 HSK를 치렀고, 2년 동안 성실히 계약직으로 일하였다. 계약직 이후 이직을 하기가 어려웠던 친구는 사무직에 필요한 공부를 하면서 내실을 다져나갔다. 지칠 법도 한데 친구는 언제나 성실했고, 근검절약했다. 친구에게 옷은 사치였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아껴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의 모습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네 곁에는 성실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정직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을 헤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여건하에서 언제나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30여 년 간 살아오면서 겪게 된 많은 사람들 중에 나의 단짝은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친구 역시도 많이 힘들고 지친 날들이 많았었을 텐데 자신이 힘들다는 이유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온 친구 덕분에 건강한 친구관계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친구와 이리도 오랫동안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지금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친구에 대한 존경심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미국에 있는 동안 정말이지 외로웠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같이 어울려 다니는 날이 줄어들수록 자연스레 멀어졌다. 더욱이 제일 더 밉상이었던 사람은 말뿐인 사람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동기를 보면서 점점 신뢰가 떨어졌다. 그래서 결국 떠나는 날 나도 모르게 생체기를 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사람도 나와 더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난 나 좋다고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왜냐하면 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난 그 사람에게 더는 볼일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더 신뢰가 가고 좋은 건 사실이다. 사과의 여러 모습 중에 단면만 보고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난 나의 단짝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느끼곤 했다. 나의 여러 모습을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며 항상 나의 입장에서 공감해 주는 모습 덕분에 지금까지 신뢰를 쌓고 오래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네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다.
1.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할 줄 아는 사람
2.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할 줄 아는 사람
3. 말과 행동에 진심이 있어 귀티가 나는 사람
4. 그릇이 넓은 사람
5. 눈치가 빨라서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
6.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
7. 유머가 있는 사람
8.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9. 일관성 있는 사람
10.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1번 유형은 정말이지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되고자 노력했다.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득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다가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가며 만나는 것이 손해라고 느꼈던 탓일까. 생리학 수업 때 교수님께서 만학도 어르신을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하필이면 나와 자리가 멀어져 따로 앉게 되었는데, 20대 초반의 아이들은 자기와 자기 친구만 챙기기 바빠 보였다. 교수님은 대놓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다음 수업 시간에 만학도 어르신을 나와 네 동기 가운데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뒤 교수님의 강의를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교수님께서는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간호사는 타인을 돌보고 주변도 돌아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한데 아직 임상을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건 당연하리라. 그렇게 생각해 볼 때쯤 20대 초반의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고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깊었던 시기에 교수님의 말씀은 짠한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다들 나이가 들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느려지고 남들보다 뒤처질 날을 겪게 될 수 있다. 그때서야 이해가 될 수 있을까. 만약 나의 어머니가 학교에 가셔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면 어떨지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마음에 와닿고 행동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운좋게도 많이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떠한 사람을 만나냐도 중요하지만 네가 어떤 사람이 되는 가도 중요하다.
이런저런 일로 인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나의 단짝과 같은 사람들 덕분에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부터 치유받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어디선가 일하고 있을 단짝 친구가 잘되길 남몰래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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