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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an 10. 2024

문제는 달러야!

픽사베이


달러가 만능인가?

미국의 중앙은행을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FRB)이라 부른다. 이곳은 은행의 은행이자 세계의 은행이다. 감히 이에 대적할 금융 기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의 말 한마디에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세계 주식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진다. 제롬 파월 현 FRB 의장의 입은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까지 웃고 울게 만든다. 아리송한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달러가 어떻게 해서 세계 유일의 결제 수단이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화폐 혹은 통화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당연히 동전과 지폐가 먼저 떠오른다. 그다음으로 은행에 예치한 예금도 생각날 것이다. 화폐는 경제를 순환시키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피와 같다. 피는 몸을 순환하며 인체의 장기가 필요로 하는 물질을 전달한다. 피가 없으면 생명체는 생존할 수 없듯이, 화폐 없는 경제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득한 고대 사회부터 중세,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로 이어지는 동안, 화폐는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자 부의 상징이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그리고 고대 중국은 고유한 화폐를 발명했다. 이들 화폐는 제국의 팽창과 함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특히 화폐는 중세 말기의 상업 부흥에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스페인은 남미를 식민지로 삼고, 그곳에서 많은 양의 금과 은을 약탈했다. 그들은 이것을 기반으로 통화를 발행했고, 한때 스페인 화폐는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도 식민지를 통해 획득한 금과 은을 기반으로 자국의 화폐를 발행하여 식민지에 퍼뜨렸다.


역사적으로 화폐를 찍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중앙 정부만 갖고 있다. 오랫동안 각국 정부는 돈을 함부로 찍어낼 수 없었고, 국가가 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돈을 발행했다. 돈을 찍을 낼 수 있을 만큼의 실물 자산을 보유해야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제도를 금본위제도라고 불렀다. 이것은 근대 경제체제를 구축하면서 각국이 설정한 통화 발행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금이나 은 등의 실물 자산이 없으면 정부는 함부로 돈을 찍을 수 없었다. 이 원칙 때문에 정부는 통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통화 팽창으로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일도 없었다. 또 과도한 통화 발행으로 나라가 빚을 지는 일도 없었다. 정부가 통화를 남발함으로써 물가가 상승하는 일도, 그 바람에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주름이 생기는 일도 거의 없었다.


1, 2차 세계대전으로 연합국은 엄청난 전쟁 비용을 치렀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국의 금 보유량이 크게 줄었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미국도 베트남 전쟁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다. 전비를 조달하느라 미국 정부의 금 보유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미국 정부는 전격적으로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금 보유량과 상관없이 달러를 찍어내겠다고 선언했다. 달러와 금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자, 물가는 큰 폭으로 뛰고 달러 가치는 하락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달러의 지위도 흔들렸다. 바로 그때, 미국과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비밀 협정이 체결되었다. 1975년 당시, 미국은 부패한 사우디아라비아 왕권을 보장해 주고, 대신 석유를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협약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세계는 석유가 없으면 한순간도 돌아가지 않았다. 이 협상 덕분에 달러는 세상의 유일한 결제 수단이 되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달러야!

달러를 앞세운 미국은 금융 권력을 휘두르며 세계 금융 질서를 통제했다. 금본위제도를 폐지한 미국 정부는 거침없이 달러를 찍었고, 그 결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빚이 많은 나라가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었다면 신용등급이 폭락하고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은 빚이 아무리 많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은 필요하면 언제든 돈을 찍고, 빚이 쌓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미국 정부의 무분별한 통화 팽창은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미국의 물가는 금본위제도를 채택한 1965년의 1.6%에서 1980년에는 13.5%로 크게 상승했다. 1970년대 초반, 1달러로 살 수 있었던 석유량이 지금은 그 당시의 2%밖에 살 수 없다. 달러 가치는 무려 98%나 폭락했고, 서민들의 삶은 힘들어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부자는 더 큰 부자,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했다.


COVID-19 팬데믹 기간 경기 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제로 금리를 유지했다. 이를 위해 엄청난 달러를 살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정부의 확장적인 통화 정책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 2021년의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7.1%에서 2022년 9%를 상회했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급격하게 이자율을 올렸고, 기업과 서민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 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의 느슨하고 무능한 금융 기관 관리 정책이다. 2008년 발생한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에 빠뜨렸다. 이 사건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부실 주택담보 채권, 즉 모기지 대출 상품을 판매한 탓에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이자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금융기관은 주택담보 대출자의 대출을 회수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이 거꾸로 수많은 홈리스를 만들고, 그들의 가정을 파탄 나게 했다.


월가의 금융 임원들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해 수천억 원의 보너스를 챙겼다. 이들 금융기관은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 자금 지원으로 부실을 털어냈다. 또 이 과정에서 이들은 따로 추가 보너스를 두둑이 챙기고 유유히 월가에서 퇴직했다. 정말 놀랍게도 2008년 금융위기로 처벌받은 월가의 임원은 한 사람도 없다. 미국 정부가 시중 금융기관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하는 바람에 월가에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상태다.


중앙집중 금융의 방만하고 무능한 금융 정책이 일으킨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융위기는 우리의 경제적 삶을 힘들게 한다. 앞으로는 중앙정부, 특히 미국 정부의 지나친 통화 팽창과 부실한 금융 정책으로 서민들이 고통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바로 이쯤에서 우리가 한 번쯤은 달러의 대안으로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비트코인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외면하고 손사래 칠 일은 아니다. 굳이 비트코인이 아니래도 상관없다.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통화제도라면 또 어떤가.


수천 년 동안 법정 통화가 세계 경제 성장에 꼭 필요한 교환의 수단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렇지만 최근의 디지털 경제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금융 질서를 요구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꼭 달러만 고집해야 하나?' 그런 관점에서 2024년 1월 10일 오늘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할 것인지 궁금하다. 승인을 거부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승인 발표를 또 연기할까? 어떤 결론이 나든 시장은 요동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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