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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Mar 22. 2024

다크 초콜릿 같아요.


다크 초콜릿

"선생님은 다크 초콜릿 같아요."

"다크 초콜릿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평소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 친한 분이 있다. 언젠가 그분이 나를 보고 한 말이다. 다크 초콜릿? 정확하게 말뜻을 몰라 잠시 당황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게 들려준 말이라 나쁜 뜻은 아니라고 짐작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얼른 지식 검색을 했다. 


먼저 위키백과사전의 설명이다. '다크 초콜릿(dark chocolate)은 초콜릿의 일종으로, 우유가 들어가지 않고 코코아 가루, 코코아 버터, 설탕을 함유한 형태의 초콜릿이다. 카카오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다른 초콜릿들보다 비교적 쓰다. 다크 초콜릿에는 폴리페놀, 카테킨, 플라보노이드 등의 항산화 물질이 녹차나 와인보다 많이 들어 있다. 


음 그렇구나. 몸에는 좋지만, 맛이 쓰구나. 그렇다면 내 첫인상과 말투가 쓰다는 뜻이겠지. 내가 까칠하고 톡 쏘는 화법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제일 모르는 것도 자신이다. 다크하다니 검다는 뜻도 있지만, 속이 시커멓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다시 나를 만날 일이 없었을 테니까. 


다음은 챗GPT 4.0에 다크 초콜릿 같은 사람은 어떤 성격인지 물었다. 요즘 지식 검색과 설명에서 탁월한 성능을 자랑하는 인공지능인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그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다크 초콜릿 같은 사람은 성숙하고 강인하며, 깊이 있는 통찰력과 독립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 어려움을 견디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려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선호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신념과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또한, 정제된 취향을 가지고 있어 예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선호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이들은 깊이와 복잡성으로 인해 매력적인 존재가 됩니다."


이건 뭐 칭찬 일색이라 민망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부분적으로 맞기는 하다만, 통찰과 독립적 사고, 신념과 가치, 예술 분야의 취향,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썩 틀렸다고 하긴 힘들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크 초콜릿을 가진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한다. 


"다크 초콜릿 같은 성격의 부정적인 면은, 그 강인함과 독립성이 때로는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어 보일 수 있으며, 깊이 있는 통찰력과 성숙함이 과도하게 비판적이거나 남들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할 때 너무 이론적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아이디어를 추구할 수도 있으며, 정제된 취향이 때로는 엘리트주의적이거나 타인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성격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기하다. 대충은 이해가 간다. 내게 그런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소통의 어려움보다 그런 상황이 오면 속내를 잘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까칠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남자인데 말이다. 앞으로도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겸손하고 자중하라는 말도 이해한다. 


낙양의 종잇값을 올리다. 

바로 이 점이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울 줄 알았다. 생각이 깊어 다른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알았다. 욕심은 적어지고 배려가 넘쳐야 하는데 여전히 그에 미치지 못한다. 삶의 쓸쓸함과 달콤함, 그리고 고독과 기쁨, 단맛 쓴맛 봤지만, 여전히 생각은 우매하고 지혜는 모자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시절도 되돌아가면 정말 잘할 텐데. 그런 회한이 이제 와 다 무슨 소용일까. 부질없는 마음에 그냥 한 번 읊조려 본다. 


아직 늦지 않았다. 공부하고 노력하면 지혜에 미치지는 못해도 약간의 깨침은 있을 것이다. 월척이 아니면 어떤가. 스스로 위안할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살다 보면 힘에 부치는 일도 많다. 삶은 원래 쓸쓸한 일인 것을 진즉에 알았다면 그렇게 서럽지는 않았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성숙한 삶을 살아야겠다. 


옛날 중국 진나라에 좌사라는 문인이 있었다. 처음에는 글솜씨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열심히 독서하고 글을 쓰다 보니 글솜씨가 나날이 발전했다. 그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삼도부(三都賦)'라는 글을 발표했다. "삼도부"는 당시 중국의 세 대도시인 장안(長安), 낙양(洛陽), 그리고 소도(蕭都)를 주제로 한 세 편의 부로 이루어졌다. 


좌사가 삼도부를 발표했을 때, 이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나중에 크게 유명해졌다. 삼도부는 특히 서술의 방대함과 문체의 우아함, 그리고 상세한 묘사로 고대 중국 문학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들이 하도 삼도부를 베끼느라 진나라의 수도인 낙양의 종잇값이 크게 올랐다. 그 뒤부터 좋은 글을 말할 때는 '낙양지가(洛陽紙價, 낙양의 종잇값)를 올린다.'는 말이 나왔다. 


무릇 글 쓰는 이는 이런 욕심을 한 번쯤 품을 법도 하다. 나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착각은 자유고, 망상은 해수욕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 주제넘은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이제는 강호에 글재주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실감한다. 감히 그들과 견주기에는 필력이 달린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다만 짧은 내 생각을 키우고, 모자라는 지혜를 채우기 위해 글을 쓸 따름이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헝클어진 머리를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이제는 다크 초콜릿의 좋은 점을 닮으려 노력한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 속이 깊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씁쓸하지만 풍미가 있고, 너무 달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 나는 다크 초콜릿 같은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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