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동탄을 출발한 차는 인천을 향해 달린다. 고속도로에는 안개만이 자욱하다. 온통 안개 밭이다. 자동차 불빛에 부딪힌 안개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지만, 도로 위는 여전히 흐릿하다. 뻔히 아는 길이지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 당혹스러움이 주는 긴장감이 밀려온다.
가을이라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기온이 25도를 넘는다. 달아오른 대지는 새벽마다 채 식지 않은 숨결을 내뿜는다. 그 위로 차갑게 식은 공기가 내려앉아 수억 개의 물방울을 낳는다. 그것이 바로, 새벽의 안개다.
과학은 안개를 만들지만, 내게 안개는 그리움을 낳는다. 안개는 그저 기상 현상이 아니라, 내 내면의 은밀함을 드러내는 서정이다. 안개 너머에 숨은 아련함, 그 설렘이 나는 좋다.
안개가 내린 아침, 세상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길이 낯선 미로로 변한다. 매일 지나치던 가로등은 희미한 등대처럼 멀어진다. 내 눈길이 닿는 곳은 몇 걸음뿐이고, 그 너머는 온통 회색의 커튼이 드리워졌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안개는 그런 것이다.
안갯속 세상은 한결 부드럽다. 건물의 모서리는 둥글어지고, 나무의 가지들은 수채화 속 번짐처럼 흐려진다. 세상의 날카로운 선들이 희미해지면서, 마음도 같이 부드러워진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도 젖은 안개에 묻혀 아득하다. 낯선 이의 목소리마저 안갯속에 스며 멀어진다. 흐릿한 안갯속에서 마음은 오히려 고요히 맑아진다.
나는 안개를 사랑한다. 안개는 늘 내게 불확실성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예측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안개는 모호함을 설렘으로 바꾼다. 앞을 알 수 없음은 불안이 아니라, 곧 그리움이다.
인생도 안개와 닮아있다. 우리는 늘 앞날을 내다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안갯속을 헤매며 멀리서 보이는 희미한 등불을 찾아 걸어갈 뿐이다. 안개가 걷히면 선연히 드러나는 세상이지만, 안갯속에서는 모두가 깨어나지 않은 꿈이다. 산다는 건 늘 안갯속을 걷는 일 같다. 그래서 우리는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 역시 그런 게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면, 그 설렘과 두근거림은 어디로 갈 것인가. 무슨 말을 할까, 내게 어떤 마음일까, 그런 모호함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안개처럼 흐릿한 감정들이 서로 스며들며 얽힌다. 한 걸음 앞이 사랑일까.
안개 낀 길은 늘 아득하다. 하지만 그 아득함 속에 희망이 숨어있다. 안개는 언제나 걷힌다. 시간이 지나면 해가 떠오른다. 바람이 불면 안개는 조각구름이 되어 하늘로 흩어진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늘 익숙한 풍경을 본다. 설렘과 그리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익숙한 일상이 있다.
나는 가끔 안개가 영원히 걷히지 않기를 바란다. 이 몽환적인 상태가 계속되기를, 세상이 이토록 신비로운 채로 머물기를 원한다. 답을 알고, 길이 훤히 보이는 세상보다는, 한 걸음씩 더듬어가며 발견하는 세상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인천에 도착하니 서서히 안개가 걷힌다. 흐릿함 속에 숨었던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건물들은 다시 날카로운 윤곽을 드러내고, 사람들은 바쁘게 걸어간다. 일상이 돌아온다. 나는 아직 안개의 여운 속에 머문다. 그 몽환과 불확실의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