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의 인문학 1】
식욕이 떨어진다고
그럼 빨간 떡볶이가 어때?
열정뿐만 아니라 입맛도
살리는 빨간색이야
빨강의 미(味)학
"떡볶이 국물은 왜 빨간색일까?"
"그야 빨간 고춧가루가 들어갔으니까 그렇지!!"
두 사람이 분식집에서 맛있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나눈 말이야. 고춧가루의 빨간색이 떡볶이 국물의 빨간색을 만들지. 그래서 메울 수밖에 없어. 어라? 가만히 생각하니 만일 파란 고추라면 국물이 파란색이 된다는 말이잖아. 빨간 고춧가루를 파랗게 물들이면 떡볶이 국물 색깔이 파랗게 될 거야. 고추의 매운맛을 그대로 두고 색깔만 바꾼다 해도 매운 맛이 제대로 살아날까? 빨간색의 시각 효과가 매운 맛을 더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어.
일본 도쿄에 가면 파란 국물 라면집이 있다고 하네. 안타깝지만 아직 가보진 못했어. 갔다 와서 글을 쓰면 좋을 더 실감 날 텐데 아쉬운 대로 자료를 인용해 볼게. 이곳 가게의 라면은 우리가 아는 빨간색 라면이 아니라 파란색 라면이야. 먹어 본 사람은 맛이 깔끔하고 산뜻하다고 하는 걸 보니 그런대로 맛이 있나 봐. 그렇지만 보기에는 선뜻 젓가락이 나가지 않을 것 같아. 파란색 국물을 보는 순간 먹고 싶은 사람이 싹 달아나. 아무래도 파란색 라면 국물은 식욕을 당기게 하지 않고 억제하는 부정적인 식감이야.
만일 우리가 파란 국물을 좋아하고, 그것이 식욕을 당기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떡볶이 가게에서 너도나도 국물을 파랗게 물들이겠지. 왜냐하면 그게 식욕을 당기게 해서 음식을 잘 팔리게 해 주니까 말이야. 유전자 변형을 통해 파란 장미를 만든 지도 꽤 오래됐어. 그렇다면 고추의 유전자를 변형해 파란 고추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야. 가을 햇볕에 말린 파란색 고추를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면 될 것 같아.
빨강은 식감을 자극해. 빨갛게 익은 사과를 보면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돌아. 한여름 더위를 싹 달아나게 하는 붉디붉은 수박 맛은 어떤가. 초록의 수박을 두 쪽으로 쪼갰을 때 드러나는 붉은 속살이 식욕을 후끈 자극하지. 사람들은 과일이나 음식을 입으로 맛보기 전에 눈으로 먼저 시식해. 그렇듯이 빨간색 떡볶이를 보는 순간 입맛이 당기는 이유는 바로 빨간색의 미(味)학 때문이지.
태초의 색은 빨강이다.
“와!! 대지가 온통 붉은색이다!!”
태곳적 원시 지구를 본 사람은 이렇게 외쳤을 거야. 지구 표면에 넓게 분포한 산화철이 공기와 접촉해 원시 지구를 온통 붉은색으로 만들었어. 빨간색은 지구의 탄생 시점에 함께 생겨난 색이야. 빨강은 대지의 붉은색이며 피의 색이지. 인간은 선홍빛 붉디붉은 빨강을 제일 먼저 만난 거야.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빨강만 색인 줄 알았어.
아득한 옛날, 인간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사냥을 나섰어. 사냥터에서 만난 짐승들과 목숨 건 사투를 벌였어. 창끝이 우람한 들소의 가슴을 찌르자 붉은 피가 용솟음쳤지. 사냥꾼은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핏빛 들소 고기에 행복했어. 사람들은 동굴에 모여 축제를 벌였지. 들소의 붉은 피를 제단에 바쳐 다음 사냥의 풍요와 무탈함을 기원했던 거야.
기원전 15500~13500년경의 알마티라 동굴 천장에는 붉은색 들소가 그려져 있어. 거칠고 억센 들소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해. 동굴 사람들은 덩치 큰 붉은 들소를 사냥해 축제를 벌였을 것이야. 그들에게 들소의 붉은 피는 풍요와 수확의 상징이야. 그러니 인류는 빨강은 식욕을 당기게 하는 색이 되었어.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빨간색 옷을 입기 시작했어. 빨간색으로 옷을 물들이고, 빨강 장신구를 만들기 시작했지. 옛사람들은 연지벌레의 일종인 곤충으로부터 질 좋은 빨간색을 구했어. 연지벌레 말고도 식물에서도 붉은색 염료를 구했지. 서양 꼭두서니와 브라질 나무에서도 질 좋은 빨간색이 나오기도 했어.
연지벌레는 지중해의 사철 푸른 떡갈 나뭇잎에 붙어사는 곤충이야. 이 연지벌레의 암컷에서 얻는 빨간색이 가장 뛰어난 색으로 유명해. 연지벌레의 암컷은 빨간 액이 가득 든 알을 낳고는 나뭇잎 위에서 죽어. 사람들은 죽은 연지벌레를 나무주걱으로 긁어내지. 이렇게 구한 연지벌레를 건조해 분말로 만들어. 이것을 갈아서 만든 빨강은 선명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났어.
연지벌레로부터 붉은 색소를 얻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야. 아름다운 붉은 색소 1kg을 얻으려면 최소 수만에서 수십 마리의 연지벌레가 필요해. 그러니 그 많은 붉은 염료를 만들기 위해 죽어간 연지벌레의 숫자는 천문학적이야. 귀족들은 대대로 물려줄 값비싼 의복에는 연지벌레의 빨강을 사용했어. 왜냐하면, 이 빨강은 햇볕에도 색이 바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어.
열정과 분노의 색깔
로마와 중세의 귀족들은 붉은색 옷을 즐겨 입었어.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히 붉은색 염료 가격도 꽤 비싸. 평민들은 감히 생각도 못 하고, 귀족과 왕족이 붉은색을 차지했어. 중세 유럽의 지체 높은 왕족과 귀족들도 붉은색 옷을 즐겨 입었어. 가톨릭 추기경의 입는 붉은 옷은 순교자들이 흘린 붉은 피를 뜻하기도 해.
붉은색에서는 피 냄새와 함께 폭력과 잔인함이 묻어나. 분노에 찬 사람의 얼굴이 붉게 변하듯, 빨강은 치밀어 오르는 화(火)의 색이야. 또 사람의 뜨거운 열정과 강력한 욕구를 표현할 때도 붉은색을 사용하지. 빨강은 열정과 분노, 사랑과 증오의 양극단을 오가는 색이야. 붉은색은 전쟁과 살육의 현장에서 흘리는 피의 상징이기도 하지.
붉은색은 사람의 본능을 강하게 자극해. 사람을 흥분시키고, 에너지를 넘치게 해 주는 색으로 빨강이 제격이지. 빨강은 호흡과 심장 박동 수를 높이는 등 우리 몸을 활성화해. 온몸의 근육을 긴장하게 만들어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빨강은 두려움을 없애주고 용기를 주는 흥분의 색이야.
매혹적인 체리 토마토(cherry tomato)색을 생각해 봐. 그 빨강 입술은 사랑에 빠진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색이라고 할 수 있지. 그녀의 요염한 빨간 입술의 매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빨강의 강렬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지.
그렇지만 빨강은 공격성과 까다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어. 지배와 반항의 색이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친 흥분과 불안의 상징이기도 해. 눈에 띄고 싶은 사람들은 빨강 옷을 입거나 빨간색 넥타이를 매는 거야.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할 일이 있으면 빨강을 멀리 하는 것도 좋아. 왜냐하면, 빨강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색이라 아이들을 흥분시킬 우려가 있어. 그건 빨강이 가진 약점이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