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Jul 17. 2023

이름 없던 오렌지색의 반전

【색(色)의 인문학 3】


나는 이름 없는 색이었어

오렌지를 닮아 오렌지색이라 불리고

오렌지 향기 따라 

온 세상으로 이름이 퍼졌어




이름 없는 색의 이야기

이름도 없던 내가 유명해진 사연을 들어봐. 이름 없는 색(色)이라 말하니 의아하겠지. 지금 내 이름은 주황이야. 사실 나는 이름을 가진 지 얼마 안 됐어. 빨강은 원시시대부터 제 이름을 가졌어. 아마 2~3만 년 전부터 빨강은 당당히 제 색깔을 드러냈지. 노랑과 파랑도 마찬가지야. 일찍부터 떡하니 자기 이름을 가졌어.


나는 어땠냐고? 말도 하지 마. 오렌지가 익고, 그 향을 맡기 전까지는 이름이 없었어. 색(色)은 색인데 이름 없는 색이었단 말이야. 처음 사람들은 나를 독자적인 색으로 여기지 않았어. 무슨 말인지 궁금할 거야. 지금부터 내 웃픈 과거를 들려줄게.


주황(朱黃)이라는 내 이름을 잘 봐. 붉을 주(朱)와 누를 황(黃)이야. 빨간색과 노란색을 합친 색이라는 뜻이야. 빨강, 노랑, 파랑은 이 자체로 자기 이름이야. 나처럼 남의 이름의 첫 한자를 따서 지은 게 아니잖아.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를 무지개색이라고 하지. 나 빼고는 다 고유한 자기 이름을 갖고 있어. 참, 이렇게 서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니.


옛날부터 많은 사람이 빛과 색을 연구했어. 그걸 다 말하면 이야기가 지루해. 르네상스 이후만 살펴보면, 데카르트를 선두로 해서 뉴턴과 괴테가 빛과 색의 원리를 규명했지. 뉴턴은 광학적 원리를 이용해 빛을 일곱 색깔로 분해했어.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은 380~750 nm의 파장을 가졌어. 그 가운데서 585-620 nm가 바로 내 자리야. 그때부터 비가 개면 나타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 속에 내가 있는 거야.   


뉴턴 이전까지만 해도 나를 아는 사람은 많이 없었어. 내가 색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 사람들은 나를 빨강 아니면 노랑으로 불렀어. 아니면 빨강-노랑이라고 하기도 했지. 빨강이라고 하기에도 약하고, 노랑이라고 하기에는 덜 튀는 색이라는 거야.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뜻이겠지. 웃기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어. 뭐 어쩌겠어. 사람들이 알아줄 때까지 기다려야지.


드디어 나는 색이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어. 달콤한 오렌지 덕분이야. 오렌지도 사실 여러 종류가 있어. 우리가 즐겨 먹는 오렌지는 약 4,500년 전쯤 중국에서 처음 재배되었다고 해. 오렌지는 실크로드를 거쳐 서서히 유럽으로 이동했어. 시기적으로 보면 중국에서 포르투갈로 14세기경 전파되었어. 그러다가 16세기가 되자 다른 유럽 지역으로도 전파되었지.


사진 출처 : https://natuurhuys.be/products/vervulling-1-ml-set


유럽 사람들은 오렌지를 맛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어.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지니 얼마나 기분이 좋아. 사람들은 이때부터 오렌지가 익고, 그 향이 널리 퍼지는 것을 기다렸어. 사람들은 잘 익은 오렌지색을 좋아하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생각했어. 빨강-노랑의 내가 오렌지색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오렌지색이라 부르기 시작했어.


그때 나는 너무 기뻤어. 거리에 나가 “나는 오렌지색이다!!" 하고 크게 외치고 싶었지. 어깨 힘도 들어가고 무지개색 일곱 빛깔에도 한 자리를 얻었어. 오렌지 덕분에 번듯한 이름을 가진 거야. 다른 색보다 턱도 없이 늦었어.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름을 가졌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세상에 늦게 나와서 좋은 점도 있어. 다른 색들은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흑역사의 아픈 기억이 있어. 빨강은 분노의 색이라는 평가도 받았고, 노랑은 꽤 오랫동안 천대받았어. 파랑은 중세 초기만 해도 시체의 색이라고 멸시받았어. 거기에 비하면 나는 형편이 나은 편이야. 달콤한 오렌지 향기 덕분에 얻은 이름이니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 늦게 이름을 얻은 대신에 안티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아.  


오렌지색 힐링

주황색에는 베타카로틴(Beta-carotene)이 많이 들었어. 베타카로틴은 강력한 황산화제로 세포를 보호하고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돼. 또 몸이 필요로 할 시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A로 변환하는 기특한 녀석이야. 또 베타카로틴은 암 예방과 피부 건강에도 효능이 좋다고 해. 


오렌지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해. 덕분에 변비와 빈혈 예방에 좋은 효과가 있고, 피부미용과 감기예방, 그리고 항암효과도 있는가 봐. 특히 베타카로틴의 보고라고 알려진 당근을 많이 먹으면 노화가 방지되고 피부가 젊어진다고 하니 자주 먹어 봐. 그리고 주황색 잘 익은 파파야에도 비타민 C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고 하니 건강에는 만점일 거야. 


나는 활동성과 호기심을 상징하는 외향적인 색이야. 심리적으로 따뜻하고 편안하며 갈등을 이완시켜 주지. 반대로 너무 진하면 불안하게 만들기도 해. 나는 밝지만, 노랑처럼 너무 눈부시지 않아. 따뜻하긴 해도, 빨강처럼 너무 뜨겁지도 않지.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따뜻하게 해 줄 만큼만은 빛나기는 해.


그대들도 나처럼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튀지도 않으면 좋겠어. 주위를 환하게 밝혀 줄만큼만 빛나는 사람이 되란 말이야. 한겨울 난롯가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정겨움, 그게 바로 나야. 그대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 나는 항상 그대들 곁에 있어. 힘들 때면 언제든지 나를 보러 와. 나는 그대의 위안이 되고,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 줄 거야. 


이전 12화 빨강, 그리고 또 빨강의 열정과 힐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