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의 인문학 5】
역병의 색이자 배신의 색
태양을 닮은 색에서
황금색에 밀려났지만
밝고 따뜻함으로 되 살아났어
흑사병과 노랑
노랑 혹은 노란색 하면 뭐가 떠올라? 봄날의 개나리나 프리지어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춥고 어두운 겨울을 끝내고 맞는 노랑꽃들은 기분을 들뜨게 하지. 좋은 현상이야. 그것 말고도 노랑의 밝은 이미지는 많아. 생활 속에서도 많이 볼 수 있어. 유치원 통학 버스와 그 속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앙증맞은 노란 모자를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올라. 사람들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나를 좋아해.
요즘에야 대우받지만, 옛날에는 나는 참 서러웠어. 긴 세월 동안 사람들로 멸시받았어. 배신자의 색이라느니, 변절자의 색이라는 욕을 들었어. 그뿐 아니라 허영과 사치의 색으로 비난할 때도 많았어. 그동안 내가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한 트럭도 넘을 거야. 뭐 파랑도 빨강도 다 흑역사가 있기는 해. 그렇지만 내 앞에서는 명함도 못 꺼내.
중세 시절, 병에 걸리면 피부가 검게 변해 죽어가는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강타했어. 지금의 코로나와 같은 질병이지만, 당시에는 의료 기술이 낮아서 피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어. 전 세계에서 최대 2억 명이 사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야. 유럽에서만 최소 2천5백만 명에서 최대 5천만 명이 사망했어. 유럽 전체 인구의 30~60%나 되니 한 집 건너 한 집씩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이지. 페스트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짐작이 가겠지.
흑사병이 빠르게 확산하자 유럽의 주요 항구에는 난리가 났어. 그때 한참 해상운송이 붐을 일으키고 상업이 발달하던 시기였잖아. 항구마다 갓 입항한 선박을 검역한 후 전염 가능성이 있는 배나 승객, 화물을 억류했어. 그리고 약 40일간의 격리를 마친 후, 이상이 없을 때 육지에 내릴 수 있었어. 이때부터 검역을 상징하는 색깔로 나를 지정했어. 그러다가 18세기가 되자 검역 현장에 아예 노란 깃발(Yellow jack)을 설치했지.
그때부터 내 색깔의 깃발이 펄럭이면 사람들은 피해 갔어. 그곳이 검역소이고 전염병 환자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한 거야. 지금도 선박에 노란 깃발이 걸리면 배에 전염병 환자가 있으니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지. 검시관이 전염병 검사를 하고 안전하다고 판단해야 노란색 깃발을 내릴 수 있어. 그 후에야 배는 항구에 입항하고 승객들은 배에서 내릴 수 있어.
나로서는 참 억울한 일이야. 내가 눈에 잘 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이용한 거야. 사람들은 이때부터 달갑지 않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지저분한 색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 게다가 사람들은 나를 허영과 거짓의 상징이라고도 여겼어. 나로서야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야? 그 서러움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어.
배신자 유다의 노란색 옷
그뿐이면 말도 안 해. 예수를 배신한 유다 있지? 중세 화가들은 유다를 그릴 때 종종 노란색 옷을 입혔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마치 내가 예수를 배신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 거야. 순전히 화가의 상상으로 그린 그림으로 내가 배신자의 색이라고 오해받게 된 거야. 이 때문인 줄 몰라도 중세 시대의 노랑은 광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졌어. 많은 그림 속에서 광대나 미치광이들이 노란색 옷을 입고 나타나.
인류는 오래전부터 노랑을 사용했어. 신석기시대 동굴 그림에서도 노란색을 찾아볼 수 있어. 노랑은 자연에서 매우 흔한 색상이기 때문에 그래. 꽃, 과일, 그리고 동물 중에서 노란색이 많아. 그 덕분에 고대 이집트에서 노랑은 무한과 불사를 상징하는 나를 신성하다고 여겼을 정도지. 중세 초기만 해도 사람들은 바를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겼어.
진짜 가슴 아픈 일이 뭔지 알아? 2차 세계대전 중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 사건에도 내가 등장해. 강제 수용소행 유대인들이 달아야 했던 ‘별’이 노란색이었어. 나와 유대인들은 복장이 터졌지. 당시 나치는 유대인을 박해하고 탄압하는 색으로 노랑을 이용했던 거야. 이건 정말 있을 수도 없는 참혹하고도 비인간적인 행위였어.
또 한 가지, 나는 황금색 때문에 더 천대받았어. 사람들은 황금의 찬란한 색과 비교할 때 쉽게 변색하는 노랑을 기피했지. 그리고 물체도 오래 두면 노랗게 변하잖아. 그건 물체의 성질 때문에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나 때문에 그런 걸로 착각해. 환자의 얼굴을 누렇게 떴다고 말하거나 속 쓰릴 때 올라오는 위액의 더러움을 상징하는 색으로 나를 생각해. 나로서야 통탄할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냥 세월이 세상인심이 변하기만 기다렸지.
사람 팔자 알 수 없다지만, 내 팔자가 그래. 이집트 시절에는 태양을 닮은 색으로 추앙받던 내가 하루아침에 기피 1호가 된 거야. 중세의 화가들이 무심코 그린 유다의 노란색 옷 탓도 있어. 눈에 잘 띈다는 이유로 흑사병 검역소 깃발로 사용한 게 결정타인 것 같아.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어간 질병의 검역소를 떠올리는 건 얼마나 끔찍한 공포였을까. 하필 그 상징색이 나라니 참 억울하기 짝이 없어.
최근에 와서 오해가 풀려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 기분이 처질 때 밝은 노란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네. 나는 원래 밝고 명랑한 색이었어. 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건 얼마 되지 않아. 버림받고 외면받던 내가 오늘날 환골탈태한 셈이야. 솔직히 나도 어깨가 으쓱거려져. 그러니 내 미소가 밝을 수밖에 없겠지.
노란색인 나는 낙관주의, 활력, 기쁨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을 대변해. 나를 보면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지. 주의를 끄는 내 재주는 집중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강의실에 노란색을 섞어 칠해두면 머리 회전에 도움이 될 거야.
노랑인 나는 장점만 있는 게 아냐. 내게도 단점이 있어. 노란색을 너무 많이 칠하면 불안감을 조성할 수도 있어. 휴게실을 온통 노란색을 칠하면 오히려 휴식에 방해를 주기도 해. 왜냐하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데, 오히려 집중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야. 따라서 노랑을 사용하려면 다른 색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아.
비 오는 날에는 노란색을 입는 게 어때? 우중충한 기분을 밝게 만들고, 상쾌한 느낌이 들어 좋아. 흐린 날씨를 상쾌하게 바꿔주는 색으로 노랑만 한 것도 없어. 내리는 빗속에 노란 레인코트 깃을 세우면 멋지겠지. 빗속의 여인이 되는 거야. 그건 밝고 활기찬 느낌을 주는 노랑의 매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