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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ul 28. 2023

노랑, 힐링과 희망의 증거

【색(色)의 인문학 6】


어두운 질곡을 이겨내고

불행의 세월을 보내고

드디어 희망과 힐링의 색으로

온화한 색으로 거듭난 노랑



쨍하고 해 뜰 날이 왔어.   

한때 사람들이 나를 질투와 허영의 색이라고 부른 적 있어. 심지어 배신의 색이니 변절의 색이라고 비난도 했지.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나는 밝고 따뜻하고 신뢰할 만해. 나는 희망의 색이야. 나를 희망의 증거라 불러도 좋아.


나는 노랑이야. 가시광선 중에서 570~590nm의 파장을 가진 색이야. 파장의 길이가 겨우 20nm로 짧아. 630~750nm에 걸쳐 있는 빨강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아. 색의 범위가 좁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배신과 변절의 색이라 조롱받던 내 명예가 회복된 건 화가들 덕분이야. 모네를 중심으로 한 인상파 화가들은 빛과 그림자, 색상, 분위기를 캔버스에 재현했어. 빛과 그림자를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지! 밖으로 나가 자연을 보고 그려야 해. 이들이 화실 밖으로 나와 나를 만난 거야.


그들은 야외와 강가에서 이젤을 펼쳤어. 날 것 그대로의 빨강과 파랑 그리고 노랑을 화폭에 담은 거야. 그들은 들판에 피어 있는 깨끗하고 예쁜 노란 꽃을 보고 깜짝 놀랐어. 노랑이 깨끗하고 윤기가 흐르는 색인 줄 몰랐던 거야. 그때서야 지금까지 그들이 알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내 진가를 알아본 거야.


노란색 하면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올라. ‘노란색의 화가'라고 불리는 그는 코발트블루 하늘과 노란색 밀밭을 좋아했어. 고흐는 자기가 생각하는 노란색을 내려고 무척 고심했어.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노란색 물감을 직접 맛보기까지 했데. 고흐가 이토록 노란색에 집착한 것은 정신착란의 전조 증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어쨌든 그가 보여준 노란색은 단연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그림을 그리는 10년 동안 고흐의 색채는 몇 번 변했어. 처음 고흐의 그림들은 우울하고 어두운 색조였어. 몽마르뜨에 와서 색조가 밝아지고 다양해졌지. 그 후 아를로 이사한 후 본격적으로 노란색을 사용했어. 아를과 오베르 등에서 그린 <해바라기>, <노란 집>. <아를의 침실>, <밀밭>, <오베르 교회>에서 밝은 노랑이 많이 등장해.


'밀밭'(1888) 빈센트 반 고흐



동양은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어.

오방색이라고 들어봤니? 한국과 중국은 예로부터 빨강, 파랑, 노랑, 주황, 검정을 동서와 남북, 그리고 중앙의 다섯 가지 방향을 나타낸다고 생각했어. 다섯 가지 방향을 나타내는 색이라는 뜻으로 오방색(五方色)이라 불렀어. 세상을 이루는 요소(나무, 금, 불, 물, 흙)와 이들을 관장하는 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과 세상의 중심인 땅을 색으로 표현한 거야.


오방색의 중심에는 땅을 뜻하는 노랑이 있어. 생명의 근원은 땅이잖아. 온몸으로 태양빛을 받으며 생명을 잉태하는 땅은 빛과 광명을 상징하지. 노랑은 들판의 곡식을 무르익게 하는 색이지. 풍요와 부귀영화를 뜻하는 나를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귀하게 여겼어.


오방색


동양에서 나를 천지만물의 가운데 자리에 앉혔어. 그래서 나는 서양보다 동양이 더 좋아. 세상의 중심이라 칭하는 중국 황제만이 노란색의 곤룡포를 입을 수 있었어. 황제를 빼고는 누구도 노랑 곤룡포를 입을 수 없다는 법령이 당나라에서 청나라까지 무려 1,400년이나 계속되었어. 이 정도면 내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겠지.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황후화>


나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해. 2006년 개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황후화>에는 엄청나게 많은 노란 국화가 등장해. 노랑 빛으로 물든 금빛 반역이라고 할까? 권력을 둘러싼 황제와 아들 그리고 황후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를 나로 채색한 거야.


이슬람 세계에서도 나는 귀한 대접을 받았어. 사람들은 샤프란(saffron, 페르시아어)의 노란 꽃으로부터 노란색을 구했지. 샤프란은 한 뿌리에서 한두 송이의 꽃만 피고 색소는 꽃가루에만 들어 있어. 꽃송이의 노란 수술을 빼내는 일도 무척 까다롭지. 값비싼 샤프란의 노란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이슬람 세계의 왕족이나 귀족밖에 없었어.


나는 희망의 증거야

노랑은 눈부시며 명쾌하고,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이야. 밝은 노랑은 젊고 선명하며 외향적인 성격을 보여주지. 밝은 노란색은 쉽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그 덕분에 어린이들의 비옷과 통학 버스의 색으로 사용되지. 색채 심리학자들은 나를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라고까지 칭찬해.






'맥도날드'와 '오뚜기‘, 빙그레의 '바나나 우유'도 노랑이야. 노랑은 무얼 뜻하는지 알아? 먹고 난 뒤에 오는 편안함이야. 빨강과 노랑의 배색은 입과 눈길을 끄는 훌륭한 조합이야. 식탐을 자극하는 빨강과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노랑이 속삭이지. "먹어 봐, 행복할 거야!!" 밝은 노랑의 디자인은 이들 회사의 이미지를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노랑의 힐링 

요즘 들어 사람들은 나를 밝은 기분을 주는 치유의 색으로 좋아해. 이 정도면 내가 질투와 허영의 색이 아닌 줄 알겠지? 나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힘든 시간을 보낸 보상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제는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치고 있어.


“질투와 배신의 색이라고? 이거 왜 이래, 나는 희망과 밝음의 노랑이야!”


삶이 힘들고 비참해도 견뎌보면 어떨까? 나도 지독한 멸시와 모멸의 시간을 보냈더니. 끝내 쨍하고 해 뜰 날 왔잖아. 그렇다고 그냥 빈둥거리면서 기다리는 말은 아니야. 끝까지 희망의 끈을 꼭 붙잡아. 날 봐. 내가 바로 희망의 증거야!!


노란색은 밝고 활력 넘치는 느낌을 주고, 긍정적인 감정과 즐거운 기분을 들게 해. 노란색은 주의를 집중시켜 집중력을 높일 수 있어. 집중력이 높아지면 기억력도 향상하고 창의력도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노랑은 개방적인 마음을 일깨워 대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 활발한 에너지가 필요하면 노랑을 가까이해 봐. 


오렌지색을 닮은 노란색 야채와 과일에는 알파와 베타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애호박, 단호박, 늙은 호박 등 여러 종류의 호박은 노란색 속살을 요리해 먹어. 호박의 속이 노란 까닭은 노란색을 띠게 하는 베타카로틴 때문이야. 베타카로틴은 암을 예방해 주고 암세포의 증식을 막아주는 기특한 자연의 항암제라고 할 수 있어. 늙은 호박 속을 파내어 호박죽을 끓여 먹으면 산모의 회복에도 아주 좋다고 해.

      

레몬, 자몽, 바나나 같은 노란색 과일은 혈액 순환을 돕고, 콜레스테롤을 개선하는 작용을 해. 또 노란색 과일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그리고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지. 탄수화물 대신 많이 먹으면 다이어트에도 그만이야. 노란색 과일의 껍질에 많은 헤스페리틴(hesperitin)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 


이렇게 따져보니 노란색이 주는 힐링 효과가 무척 커. 기분이 울적하면 노란색을 가까이하고, 기운이 빠지면 노란색 과일을 많이 먹어 봐. 그러면 세상이 한결 밝아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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