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권고사직
2020년 11월 흐린 어느 날
권고사직을 당했다. 작년 말의 일이다.
실업급여도 끊겼다. 올 초의 일이다.
입학이 있으면 졸업이 있고
입사가 있으면 퇴사가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나는 퇴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퇴출이었다. 적폐도 아니고...
화가 난다. 슬프다.
마치 풀코스를 열심히 뛰고 있는데 제한시간 때문에 회송 버스에 강제로 태워진 느낌.
내가 잘 나가던 대기업 대리 시절인 1990년대 말에 IMF가 터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리 해고되어 회사 밖으로 밀려났다.
순식간에 직장을 잃은 많은 사람들은 차마 집에 말도 못 하고 출근하듯 집을 나섰다.
하릴없이 할일없이 양복에 구두를 신은 말쑥한 차림으로 근처 산에 올랐다.
나도 하릴없이 할일없이 길을 나섰다.
다른 점이라면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었다고나 할까.
할 일이 없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10K를 달렸다.
성내천 길을 달리면서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 왜 내가 회사에서 잘렸을까? “
“ 애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데 뭐 먹고살아야 하나? ”
생각들은 달리면 달릴수록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나 달리기는 묘했다.
심장은 쿵쾅대고, 폐는 신선한 공기를 퍼마셨다.
몸은 괴롭다 아우성쳤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아직 살아 있네~” 하고 나를 격려했다.
땀방울이 흐르는 순간, 마음속 응어리도 함께 녹아내렸다.
달리기의 수많은 장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마음을 풀어주는 힘이었다.
달릴 때면 이어폰 속에서 내가 최애 하는 들국화의 '행진'이 흘러나온다.
“행진, 앞으로, 행진, 앞으로”라는 단순한 가사가
내 발걸음과 박자를 맞추며 삶의 리듬처럼 다가왔다.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고 싶어 한다.
누구나 플랫폼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마라톤은 1등으로 들어온 선수뿐 아니라 경기를 완주한 모든 사람에게 갈채를 보내는 희한한 경기다.
1등이 아니어도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걸음을 내딛으면 많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 결국 골인할 수 있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빠르지 않아도, 눈부시지 않아도,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딘다면
결국 도착의 순간은 찾아오고, 그 자체로 환호받을 가치가 있다.
달리기는 몸에 좋은 운동이다.
심장을 강화하고, 혈압을 낮추며, 수명을 연장한다는 수많은 연구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값진 것은 달리기가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라는 점이다.
잡념이 사라지고, 우울이 가벼워진다.
흔히 말하는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면, 세상이 조금은 덜 무겁게 느껴진다.
육체적 피로가 쌓이는 만큼 서서히 감정의 응어리도 풀려간다.
더 중요한 것은 달리기의 방향이다.
뒤로 달릴 수 없고, 옆으로도 애매하다. 오직 앞으로만.
이 단순한 진리가 내게 위로가 된다.
설령 60대에 일을 그만둔다 해도, 여전히 남은 인생이 길고
그 길은 앞으로만 열려 있다는 사실.
달리기가 돈을 벌어주지 는 않는다.
회사를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달리기는 무너진 몸과 마음에 다시 불을 지펴 준다.
흐린 11월의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지만,
나는 오늘도 운동화를 신는다.
그리고 희망을 품고, 앞으로 달린다.
들국화의 노래처럼,
“앞으로, 앞으로” 행진하는 그 길 위로 나는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