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폼생폼사
2022년 10월, 높고 외롭고 외로운 어느 날
모든 운동은 폼이 생명이다.
골프도, 테니스도, 축구, 야구도 폼이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마라톤도 예외는 아니다.
마라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모든 운동과 마찬가지로, 폼이 전부다.
마라톤에서 바람직한 폼은 다음과 같다.
1. 허리를 곧게 세우고 높게 유지한다.
2. 엉덩이의 큰 근육(대둔근)을 중심으로 사용한다.
3. 무릎의 궤도를 일직선으로 유지한다.
이 세 가지가 기본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폼은 단순히 신체의 모양이 아니다.
폼은 곧 태도다.
그리고 태도는 결국 자신을 드러낸다.
폼이 곧 사람이다.
달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폼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결이 보인다.
발을 질질 끄는 사람은 삶도 질질 끈다.
케이던스가 좁고, 리듬이 끊기며, 결국 경기에서도 좋은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
팔을 위아래로 과하게 흔들며 위세 좋게 달리는 사람도 있다.
당당해 보이지만 왠지 거만하다.
그런 사람은 삶에서도 남 앞에서 뽐내려는 마음이 크다.
대개 경기 초반엔 잘 달리지만, 후반엔 페이스를 잃는다.
좌우로 흔들며 지그재그로 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달림이는 인생에서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산다.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마라톤에서는 직선보다 비효율적이다.
거리를 더 달리고도 기록은 손해를 본다.
결국 마라톤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바른 자세, 바른 태도가 필수다.
폼이 태도요, 태도가 곧 폼이다.
그렇다면 마라톤의 바른 태도란 무엇일까?
나는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에서 그 답을 찾는다.
수행자의 여덟 가지 올바른 길 ―
마라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 정견(正見) – 바르게 본다.
자기와 세계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
마라톤을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바른 견해’가 첫걸음이다.
2. 정사유(正思惟) – 바르게 생각한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알고, 목표를 합리적으로 세운다.
3. 정어(正語) – 바르게 말한다.
동호회 사람들과 진실된 말로 화합을 이끌어낸다.
4. 정업(正業) – 바르게 행동한다.
꾸준히 훈련에 참여하고, 바른 폼으로 달린다.
5. 정명(正命) – 바르게 산다.
운동뿐 아니라 일상과 직장생활도 균형 있게 조화시킨다.
6. 정정진(正精進) – 바르게 노력한다.
목표를 향해 꾸준히, 바른 방향으로 부지런히 훈련한다.
7. 정념(正念) – 항상 깨어 있어 바른 생각을 유지한다.
달릴 때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항상 알아차린다.
8. 정정(正定) – 바르게 집중한다.
대회에서 온몸과 마음을 집중해 완주를 이룬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정견(正見)**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견해,
즉 ‘모든 것은 변한다(無常)’, ‘내 것은 없다(無我)’, ‘삶은 고(苦)이다’라는 인식이 있어야 나머지 수행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마라톤에서도,
“이 운동이 단지 몸을 단련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라는 바른 견해가 먼저 필요하다.
폼이 태도이듯, 정견은 마라톤의 출발점이다.
폼생폼사, 일도 마찬가지다.
이건 일에서도 다르지 않다.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일)의 결과 = 사고방식 × 열의 × 능력”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사고방식, 즉 태도가 잘못되면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
결국 태도가 폼을 만들고, 폼이 결과를 만든다.
폼이 흐트러지면 자세가 무너지고, 자세가 무너지면 마음이 흔들린다.
마라톤도, 일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마라톤은 폼생폼사
결국
바른 폼과 바른 태도,
그것이 달리기의 진짜 인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