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라톤 예찬
2023년 1월, 매서운 추위가 감돌던 어느 날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다.
성별이나 연령처럼 명확한 구분부터, 심지어 꽤 유명한 과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양자 공부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나 역시 사람을 가르는 나름의 확고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다.
혹자는 내게 골프를 치는 사람과 안 치는 사람, 한라산을 오른 사람과 안 오른 사람으로 나누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마라톤은 단순한 체육 활동이 아니다.
가장 단순해 보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하지 않은 행위다.
마라톤은 걷기보다 육체적이며 등산보다 명상적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이 있다.
첫사랑과 달콤한 입맞춤을 나눴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희열을 느꼈다.
그녀와 헤어졌을 때 느낀 감정 역시, 이 세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을 때도, 나는 이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맛보았다.
첫아이를 얻었을 때, 나는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충만한 기쁨에 젖었다.
첫 마라톤 완주 테이프를 끊었을 때 느낀 감동 역시,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충만함이었다.
어머님을 잃었을 때, 나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풀코스 마라톤 도중 달리기를 멈추고 걸었을 때의 좌절감 또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이었다.
전 세계 인구 중 0.01%만이 달성한다는 42.195km 완주,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도전해 볼 만한 값진 목표다.
마라톤이 인생이고, 인생이 마라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리기를 하면 몸만 아니라 마음이 건강해진다.
엔도르핀 때문만이 아니다.
뇌 속 ‘미토콘드리아’가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에너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 능력을 보는 대표 지표가 바로 ‘VO2max(최대산소섭취량)’이다.
달리기는 최대산소섭취량을 크게 향상시켜줄 수 있다.
꾸준히 훈련하면 배기량 1500cc 아반떼가 3000cc 포르셰로 바뀌는 것과 같다.
이 에너지가 충분해야 같은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달리면 다시 살아나는 이유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주 150분 이상의 저강도 유산소 운동이나 주 75분 이상의 중강도 운동(달리기 등)을 12주 이상 꾸준히 하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항우울제와 유사한 수준의 치료 효과를 낸다고 한다.
하루하루 이어가는 5km 달리기가 하루 세 번 복용하는 항우울제 한 알만큼의 효과를 내는 셈이다.
달리기는
치매와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 질환에 탁월할 뿐 아니라,
고혈압과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추고,
암과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의 발병률과 사망률까지 뚜렷하게 줄여주는,
말 그대로 ‘일석삼조의 의약품’이다.
몸의 에너지가 높아지면 마음의 시야도 넓어진다.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힘,
그건 체력에서 온다.
드라마 *〈미생〉*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이기고 싶다면, 니 고민을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라.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결국 달리기는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몸이 단단해질 때, 마음도 흔들리지 않는다.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고, 뇌에도 좋은 달리기를 예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