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달리기 책을 쓰는 이유
2025년 8월 8일, 땀나는 여름날
나는 ‘매뛰퇴남’이다.
풀어쓰면 ‘매일 뛰어서 퇴근하는 남자’.
농담처럼 시작된 별명이었는데, 이제는 내 삶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문장이 되어 버렸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것.
책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반도체 인문학』이라는 책을 냈는데, 의외로(?) 잘 됐다.
세종도서에도 선정되고, 2 쇄도 찍었다. 덕분에 다시 일할 기회도 얻었다.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다시 달리게 만든 셈이다.
그다음은 『AI 인문학』이었다.
출판사에서 청탁도 있었고, 요즘 세상에 AI만큼 뜨거운 주제도 없었다.
『반도체 인문학』의 부제 “반도체의 반만 알아도 세상을 이해한다”처럼,
이번에는 “AI의 A만 알아도 세상이 풍요롭다”라는 부제까지 만들어 놓고 ‘이거다!’ 싶어 달려들었다.
하지만 막상 써보니 사정이 달랐다.
AI 발전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내가 오늘 쓴 내용은 내일이면 구식이 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 건, AI가 나보다 AI를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반도체에 관한 정보도 나보다 더 깊고 넓게 파악해
그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요약해, 내가 쓴 것보다 더 세밀한 글을 만들어냈다.
마치 러닝머신 위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기분이랄까.
뛰고는 있지만, 어딘가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
AI는 달리고, 나는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 책은 정세희 교수가 쓴 '길 위의 뇌'
20년 경력의 재활의학과 의사이자 러너인 정세희 교수는 말한다.
"오늘의 운동이 내일의 내 몸과 뇌 건강을 결정한다."
그래서 알게 됐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내가 직접 보고, 뛰고, 느낀 걸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두 번째 책은 김영하 작가가 쓴 '단 한 번의 삶'
이 책에서 김 작가는 필멸자로서 일회용 인생을 사는 인간인 자신 삶을 내밀하게 펼쳐놓는다.
그래서 알게 됐다.
AI는 인간만이 겪는 경험―특히 죽음 같은―을 결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세 번째 책은 강원국 작가의 '강원국의 책 쓰기 수업'
나의 롤모델이기도 한 강 작가는 말한다. "책 쓰기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며, 먼저 산 사람의 책무다."
그래서 알게 됐다.
AI는 행렬 계산을 통해 문장을 구성할 뿐이지만, 나는 글을 통해 ‘내가 왜 쓰는가’를 스스로 묻고, 글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거의 삼분의 일이나 쓴 『AI 인문학』 을 과감히 중단하고 내가 매일 발로 땀 흘린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AI 인문학』이라는 최첨단 주제가 땀내 나는 개인 경험인 『달리기 인문학』으로 180도 바뀐 이유이다.
달리기는 단순하다.
특별한 장비도, 요란한 기술도 필요 없다.
그저 두 다리와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이상하게 깊다.
호흡이 가빠오고, 다리가 무거워지고,
멈추고 싶어질 때 한 발짝 더 내딛는 그 순간,
삶의 본질 같은 것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쓰려한다.
거창한 미래나 최신 기술이 아니라,
땀방울이 맺힌 오늘의 길 위에서.
버스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을 때의 은근한 뿌듯함,
신발끈을 고쳐 매며 느끼는 사소한 다짐.
그 안에 숨어 있는 나의 인문학을 꺼내 보려 한다.
그런데, 문득 불안이 스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독자가 한 명뿐이면 어쩌나.
영화도 망했다던데. ^^
그래도 괜찮다.
한 명이라도 끝까지 읽어준다면,
그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 글은 완주한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