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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뛰퇴남의 달리기 인문학

5. 천천히 달려야 멀리 간다

by wangane

2022년 10월, 낮은 구름이 드리운 늦가을의 어느 날


그럼 과연 올바른 폼이란 게 있을까?


달리기를 좋아하다 보니, 유튜브나 SNS에 달리기 영상이 끊임없이 뜬다.
‘길 위의 뇌’를 쓴 정세희 교수는 말한다.
사람마다 체력, 체형, 달린 시간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에게 맞는 폼을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고.
그래서 그는 달리기 자세를 가르치는 강사들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긴다.


물론 아래와 같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있다.

1. 상체 + 시선 + 기울기

상체는 너무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젖히지 말고 머리 → 어깨 → 골반 → 발이 일직선 느낌 유지

시선은 너무 아래를 보지 말고 앞 10~20m 정도 수평선 쪽을 보며 목 긴장 풀기

허리에서 숙이는 게 아니라 발목을 중심으로 약간 앞으로 기울이기 (미세한 각도) → 브레이킹 효과 줄임

2. 발 착지 + 스트라이드

발은 몸 중심선 아래, 골반 바로 아래에 닿게 함

미드풋(mid-foot) 혹은 앞볼 착지 중심 (뒤꿈치 착지는 과도하면 무릎·관절 부담 증가)

3. 팔 동작 + 손 + 어깨

팔꿈치는 약 90도 정도 구부리고, 몸 옆선에 가까이에서 앞뒤로 흔들기

팔이 가슴 앞으로 크로스 되면 비효율 → 앞뒤 방향으로만 움직여야 함

손은 가볍게 쥐고 긴장 풀기 (“주먹 꽉 쥐지 않기”)

어깨는 귀 쪽으로 올라가지 않게, 긴장 풀고 아래로 유지


나의 경우, 팔자걸음이라 의식적으로 두 다리가 11자가 되게 하여

정수리 위로 하늘에서 줄이 내려와 머리를 살짝 끌어올린다는 느낌으로 허리를 곧추세워

뒤꿈치도, 앞꿈치도 아닌 발바닥 중앙으로 착지하며 달린다.


초보 달림이들에게는 속도보다 자세가 우선이다.

위의 기본자세를 습관처럼 몸에 익히면, 언젠가 자신만의 최적의 폼을 만나게 된다.


폼만큼 논란이 많은 게 훈련법이다.
인터넷과 인스타그램에는 수많은 러닝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얼마 전 읽은 『80 대 20 러닝 훈련법』이 그 해답을 알려줬다.



맷 피츠제럴드는 지구력 스포츠 코치이자 러너다.
그는 고강도 인터벌 훈련이나 극한의 피로보다, 저강도·고훈련량의 꾸준함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즉, 80%는 천천히, 20%는 강하게 달릴 때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와 실제 러너들의 데이터를 통해 그는 증명했다.
이 비율이야말로 인내심과 지구력을 기르는 최고의 법칙이라고.

책에는 훈련법뿐 아니라 '자세는 신경 쓰지 마라'라는 흥미로운 챕터도 있다.

바람직한 자세는 뇌가 알아서 만들어 준단다. 단 꾸준히 천천히 오래 달려야 한다.


또 하나의 효과적인 훈련법은 언덕 오르기이다.

나는 풀코스 마라톤 골인 지점에 다다를수록 근력이 딸려 몸이 뒤로 젖혀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르막을 여러 번 반복해 달리면 근력, 폭발력, 달리기 효율 개선에 큰 도움이 되어 막판까지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난 건 속도가 아니라, 지속력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끝까지 꾸준한 사람도 드물다.
달리기든 인생이든, 결국 오래 달리는 사람이 승자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
“회초리(回初理),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매일 천천히, 꾸준히, 오래 달리는 사람만이 완주한다.


흔히 80/20 법칙을 ‘파레토 법칙’이라 부른다.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 원리이자, 달리기의 원리이기도 하다.

80%는 천천히, 20%는 빠르게.

그 단순한 비율이 우리를 더 멀리 데려간다.


역사상 최고의 격투기 선수로 손꼽히는 조르주 생 피에르(Georges St-Pierre)를 길러낸 전설적인 코치 피라스 자하비(Firas Zahabi)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몸이 쑤시도록 운동하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훈련은 해야 하지만, 다음날 일어날 때 기분이 상쾌해야 합니다”


그는 훈련의 핵심을 ‘일관성’이라 했다.
매번 한계를 넘으려다 부상당하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운동은 즐겁고 중독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지속된다.


결국 절정의 순간은 멈출 때다.
오히려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건,
달리기를 ‘고행’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달리기도 인생도 같다.

장기적으로 보면 언제나 꾸준함이 치열함을 이긴다. 늘 그래왔다.


부처님의 마지막 유언이 떠오른다.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달리기는 그렇게 매일을 깎아 만든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달리기는 최고의 수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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