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다 Jun 13. 2023

보아야 보이는 것들 - 쪼안

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 조리사

# 8살 사람자녀 1, 14살 동물자녀 1


 쪼안은 현재 글로벌 유통기업의 직원식당에서 조리사로 근무 중이다. 작은 쌍안경과 함께 등장한 그녀는 최근 도심 속에 있는 새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인터뷰 도중에도 종종 창밖에 보이는 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가 새에 관해 내게 해준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우리가 흔히 아는 비둘기, 까치, 참새 외에 많은 새들이 이 도심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폴더 이름으로만 보았던 직박구리를 실제로 보았다는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 들 중에 내 마음에 가장 많이 남았던 말은 바로 이 말이었다. 

‘우리 곁에 이 많은 새들이 항상 존재했는데도 우린 모른 거예요. 이제야 그들의 소리가 들리고, 보려고 하니까 보여요.’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육아 회색지대에도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분명 존재했다. 


- 지금 하고 있는 서비스계열의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올해로 9년 차네요. 원래는 식품 관련 마케팅분야 일을 7년 정도 했었어요. 출퇴근 거리가 왕복 4시간이나 되다 보니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더라고요. 지금 다니는 회사는 걸어서 편도 15분 거리에 있어서 위치상으로 너무 만족스러운 곳이었죠. 


- 조금은 공격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4년제 대졸자로서 기존과는 다른 지금의 일을 쉽게 선택할 수 있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셨어요? 

 가족을 꾸린 이상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고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을 때도 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무엇보다 저는 길바닥에 4시간씩을 버리며 살 순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서비스직 일반 사원으로 들어와도 원한다면 다른 자리로 옮길 수 있고 위로도 쭉쭉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착각이었죠. 이전에 경험해 왔던 직장은 출판이나 마케팅을 하는 업체들이다 보니 규모가 작아 팀을 옮기거나 위로 빠르게 올라가는 게 가능했어요. 막상 지금의 큰 규모의 조직에 들어오니까 운영 방식도 다를 뿐만 아니라 나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널려 있더라고요. 직접 경험해 보고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가 오만했구나.’를 깨달았어요. 굳이 분류하자면 화이트 칼라 노동자로 일을 하다가 블루칼라의 노동자가 된 건데, 저 스스로는 화이트칼라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착각했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우린 그냥 노동자죠. 노동자 계급.  


 일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을 그저 생계유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처럼 일이 곧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행위라고 생각하면 연봉이나 기업의 인지도, 사회적 평판, 지위와 같이 눈에 보이는 평가 가능한 기준들에 대해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자와 같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행위로써 일을 대할 때에는 일은 일 그 자체일 뿐 나 스스로의 가치와 행복이 일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일을 하면서 이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나의 가치를 증명해 가고자 실행한 일들이 사실은 나의 존엄을 해치는 일일 수도,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으로 삼고 시작했던 일이 나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떠한 일을 통해야만 마주할 수 있었던 경험들이 쪼안에게도 생기고 있었다. 


- 아이와 개를 돌보면서 스케줄 근무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남편이 늦은 오후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그 시간은 제가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더라고요. 조리사로서 부서를 옮긴 뒤로 동료들이 배려해 줘서 마감시간 근무는 하지 않고 있죠. 그런데 제가 일을 하는 그 시간 동안 남편은 늦게까지 일했으니까 오전 내내 본인 시간을 갖거나 잠을 자고, 저는 집안일도 하고 출근도 하고, 아이와 개도 돌보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고 투쟁했죠. 처음에는 왜 나는 이만큼 하는데 너는 이만큼 밖에 안 하는지에 대해서 초점이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자고 난 이불을 정리하는 것, 먹고 난 자리를 치우는 것, 아프면 스스로 병원에 가는 것과 같이 자기 돌봄은 자기가 하자로 초점이 맞춰지게 됐어요. 

말하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이곳에 9년 일하면서 회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제도나 시스템을 사측으로부터 권장받거나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그런 제도가 있다고 알려주면 제가 역으로 가서 ‘이런 게 있다던데’라고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던 것 같네요. 지금 교대조 근무 배려받을 수 있는 부서로 옮긴 것도 같은 팀 언니들이 다 알려주고 배려해 준 거예요. 최근에 학위와 자격증을 딴 사회복지학 역시도, 같이 일하는 50대 후반의 어머님들이 식품영양학을 새로 공부하고 영양사 자격증을 따시는 모습을 보면서, 또 워낙 적극적으로 저에게도 뭔가 공부해 보라고 추천해 주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 왜 사회복지학이었어요? 

 단순하게 접근하면 우선 자격증이 나올 수 있는 전공에 도전하고 싶었었어요. 그리고 제가 기존 학위 자체가 신문방송학이어서 식품영양학과로 편입을 하려면 자연계열이라 2학년으로 편입을 해야 했거든요. 사회복지학과는 같은 계열이라 3학년으로 편입이 가능했고요. 효율적인걸 선택하자 해서 사회복지학을 선택했는데, 공부하는 동안 너무 재밌었어요. 지금 당장에는 힘들게 딴 자격증도 학위도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제가 원래 처음 대학에 진학할 때 부모님이 사회복지학을 추천해 주셨었거든요. 당시에는 ‘나는 따뜻한 사람이 아니야’ 하면서 신문방송학을 선택했는데, 그때 했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곤 해요. 근데 결론적으로는 그때 내가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었다면 지금처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사회의 구조, 정치적 상황이나 맥락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 있었을 시절이 아니거든요. 공부하면서 사회복지학이 단순히 봉사나 희생정신만을 강조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권리, 사회적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체계적이고 보편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시스템은 물론 정치적 접근까지 이뤄내야 하는 통합적인 학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더불어 공부를 하는 시간 동안 제가 저만의 독자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남편에게도 ‘나 공부해야 하니까, 네 몫을 해 줘’ 아이에게도 ‘엄마 공부해야 하니까 너 뭐 하고 있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기존에 여성으로서 내면화되어있던 돌봄 의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면죄부가 주어진 거죠. 예전에는 남편이 뭘 요구하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가 혼자 약속 잡고 나가면 집에 남아있을 남편한테 미안해지고, 나가기 전에 먹을 것을 챙겨 놓고 했었는데, 공부하는 그 기간 동안은 그렇지 않을 수 있었고,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요. 서로 감정적으로 일상적으로 너무 밀착되어 있다가 조금의 거리감이 생긴 거죠. 오히려 각자의 시간과 영역이 생기니까 서로 관심도 더 갖게 되고 좋더라고요. 남편도 종종 혼자 캠핑 다녀온다고 하고 그래요. 아… 혹시 이게 중년의 위기일까요? 


- 역시 한국인은 밥이 참 항상 문제네요. 

 맞아요. 아무래도 제가 저녁시간에 애를 챙겨야 하다 보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제 몫이 되더라고요. 저는 심지어 개 밥도 만들어 먹이거든요. 하하. 좀 유난스러운가요? 근데 들어보세요. 애가 사료를 안 먹어요. 이것저것 브랜드 다 바꿔도 사료를 안 먹어요. 1달을 굶겼는데도 안 먹어요. 근데 강형욱 님이 그러는 거예요. 개랑 고양이 입장에서 건조된 사료를 1년 내내 먹고 싶겠냐고요. 애초에 강아지와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살기를 선택한 것은 인간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였다고요. 그래서 아기 이유식 해줄 때처럼 간 안 하고 만들어줘요. 사람들 먹을 것 준비할 때 개 줄 것 빼놓고 한 번에 몇 가지 만들어 놓고 주고 그래요.  


- 개 밥까지 만들어 먹일 정도면 먹는데 정말 진심이시네요. 그러고 보니 지금 근무하시는 것도 식음료 쪽이고 이전에 근무하셨던 직장들도 식품과 관련한 출판사나 마케팅 회사였어요. 먹는 걸 원래 좋아하시나요? 

 네, 저희 외가 쪽이 대가족이었는데 외할머니께서 손이 좀 크셨어요. 가족들이 모두 모여 만두를 빚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빚어진 것을 솥에다가 찌면서 그걸 또 먹으면서 계속 빚었어요. 친가 쪽도 맛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이셔서 주말 아침에 백화점 지하에 가서 핫케이크를 사드셨었대요. 집에서 족편부터 샥스핀까지 만들어 먹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친척들이랑 맛집 찾아다니는 먹자계도 하고 있는데 개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집을 비울 수가 없어 요즘엔 저희 집에서 모여 음식을 해 먹곤 하거든요? 얼마 전에도 돈가스를 20장, 새우도 한 40마리 튀긴 것 같네요. 먹는 걸로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재밌고 요리하는 것 자체도 재밌어요. 근데 이게 같이 즐거운 느낌이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타인을 돌보기 위한 노동의 일환으로 요리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요리라는 행위 자체는 물론이고 음식을 대할 때 양가적인 감정이 되더라고요. 어느 시점부터는 제가 의미 없이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고 있었어요. 재료를 직접 사 오고 손질해서 요리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생각되니까, 달고 자극적인 음식들로 손쉽게 저를 만족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그 먹는 것을 매개로 한 관계가 중요하셨던 것 아닌가요? 

음, 둘 다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 관계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먹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어요. 저는 다양한 식재료의 맛과 그것이 얻어지기까지의 과정 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제가 심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되더라고요. 

 장을 보고 다듬고 손질하고, 어떤 음식에 쓸 건지 선택하고 소분하고 조리의 과정을 거치고 이런 모든 과정들이 있는데 사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죠. 반면에 인스턴트는 정말 한큐에 요리하고 먹고 끝낼 수 있잖아요. 록산게이의 <헝거>에서도 언급됐듯 제가 느끼는 어떤 불안함이나 부당함들을 간편하고 자극적인 먹을 것들로 풀면서 손쉽게 저를 학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평균이상으로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에 에너지를 70~80%만 쏟는 게 아니라 90%, 100% 쓰고 있었든요. 나 스스로도 돌보지 못하면서 남편, 애, 개를 신경 쓰느라 애매한 위치에서 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개가 아프면서 알게 된 게, 누군가 아파서 못 잘 때, ‘같이 쓰러지지 않을 내 체력은 확보해 놓아야겠다.’ 였어요. 제가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밸런스를 맞춰 그때그때 조율하고 적응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은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좀 힘을 빼고 하려고 해요. 제가 평소보다 조금 덜 해도 별일이 안 생긴다는 걸 경험하면 괜찮아져요. 이렇게 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결과를 바라지 않은 채로 무언가가 쌓여가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안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러면 뭐… 그렇게 살고 끝이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종종 ‘사서 고생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로 시작되는 염려 섞인 농담조의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사실은 열심히 살려고 애쓴다기보다는 어떤 일이든 진심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기는 하나의 행동 패턴이기도 하다. 열심히 살려고 그런 게 아니라 진심을 다 하다 보니 그렇게까지 하게 된 거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과 체력이 한계가 있으니 육아든 일이든 어느 한 곳에 진심을 쏟고 나면 나에게 혹은 다른 곳에 쏟아부을 만한 에너지는 남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의 에너지 소진을 자책하며 무능함으로 연결시켜 더 자신을 가혹하게 다루거나 다른 한쪽에 진심을 다 쏟아붓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우리는 그렇게 온전히 진심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각 혹은 남아있지 않은 에너지에 대한 자괴감으로 회색지대에 서있었다. 그러나 쪼안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는 ‘자기 돌봄’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가치였다. 나 스스로도, 내가 가진 에너지는 어느 정도인지, 그중 쓸 수 있는 건 얼마큼 인지, 무얼 해야 그 에너지가 다시 차오를 수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만 조절할 수 있었다.   


- 쪼안님은 뭘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니까 애한테도 ‘네가 좋아하는 걸, 행복한 걸 찾아라’라고 쉽게 말 못 하겠어요. 사실 그게 찾을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남편 직업의 특성상, 요즘의 학부모들이 아이에게 갖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그래서 생각해 보게 됐던 게, 부모가 아이를 가르칠 때 그 시대상을 반영하잖아요. 우리 부모 세대는 경제성장을 이룰 때 여서 대학 가면 누구나 무언가를 이룰 수 있었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 될 수 있었죠. 그래서 부모님들이 저희를 키우시면서 ‘학교 빠지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면 잘 살 수 있다.’ 하신 거겠죠. 근데 그렇게 자라난 저희가 살아보니까 그다지 행복하지 않고 별게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자식들한테 ‘네가 좋아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해라.’라고 해요. 근데 그 행복과 좋아하는 것의 기준도 너무 모호해요.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모호한 거죠. 좋아하는 걸 찾으라는 조언을 받아들이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지금 환경 자체가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 자꾸 찾으라니까 혼란스러운 거죠. 맥락을 생략한 채 결과와 성장, 성공, 개발과 발달만 얘기하는 사회다 보니 사실 이것에 순응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불편해져요. 막상 아이가 좋아하는 걸 어렵게 찾았는데 밥벌이가 안돼, 집도 못사, 열정페이야 그러면 막상 또 싫을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자식 고생하는 건 싫으니 ‘넌 내가 해온 것보다 더 잘해서 그리고 남들보다 잘해서 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점점 더 개별화되고 자본을 따라가게 되겠죠. 앞으로의 사회가 더 행복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계 속에서 연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인데 말이죠. 

 행복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은 찾은 것 같아요. 어떤 교육이었는데 가르치는 슈터가 아니라 퍼실리테이터 입장에서 진행됐거든요. 내가 가진 정보들을 나눠주고 내 지식을 전달하고 입력시키는 게 아니라 공통의 키워드를 함께 다루며 조율해 나아가는 과정이 참 재밌더라고요. 앞으로도 중재자로서 누군가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어요. 


- 누군가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돕는 일은 그동안 쪼안님이 관심 가져온 페미니즘에도 쓸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것, 그게 저에게 페미니즘이었고 요즘의 새 인 것 같아요. 새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는데 쉽게 보이지 않으니까 소리로 구분하거든요. 새소리를 인식하는 어플을 켜서 확인하는 건데, 그걸 듣음으로써 이 친구들의 없던 존재가 드러난 거예요. 저는 이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얘들이 어디에나 있어요. 딱새, 박새, 오목눈이, 곤줄박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저는 앞으로 제가 이런 시선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이전에는 새를 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뭐야? 저 사람 여기서 뭘 보는 거야? 그걸 왜 보고 있어?’ 했을 텐데, 이제는 이게 어떤 대상을 단순히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식의 세계가 확장되고 보이지 않던 세상이 나타나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언제나 존재하며 소리를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귀 기울이지 않아 존재할 수 없었던 것들, 우리가 그 소리를 의식적으로 듣고자 하고 그들의 존재를 바라봐 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쪼안이 만난 도심 속의 새, 페미니즘을 통해 알게 된 여성으로서의 나, 정성을 들여 요리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각각의 의미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배운 사회 속의 어느 집단이 그러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행복’도 그저 모호한 개념일 뿐, 내가 꿈꾸는 나만의 행복이 무엇인지, 얼마나 충족되어야 만족스럽다고 느끼는지 귀 기울여 살피지 않으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마음 또는 체력의 여유, 그 여유가 선물해 준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나 소감이 있을까요? 

저는 저의 많은 부분이 회색지대라고 생각했어요. 변동되는 스케줄근무 속에서 전업 엄마들처럼 정해진 모임에 나가거나 친해질 기회를 정기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커리어도 새롭게 도전해 자격증을 따긴 땄는데, 당장 써먹을 곳이나 지금 업무와의 크게 접점도 없어요. 기혼여성으로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드러내는 일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었고, 아이 교육문제나 발달에 대해 헌신적인 태도를 갖지도 않죠. 그래서 한번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뭔가를 장황하게 쏟아낸 기분인데, 그 과정 자체가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이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새들은 언제나 늘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보게 되었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고 했잖아요.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새들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선이 꼭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고 느꼈어요. ‘나의 일상에도 나만의 역사와 맥락이 있는데 그 목소리를 낼 기회나 장도 없고, 들으려는 사람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구나... 그냥 흔하게 있는 ‘참새, 비둘기, 까치’처럼 ‘결혼한 여자, 애 엄마, 워킹맘’ 정도로만 나 자신이 규정되고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서글퍼졌어요. 제가 이야기했던 박새, 오목눈이, 딱새, 곤줄박이, 직박구리처럼 생소한 새들은 생각보다 엄청 흔해요. 우리 주변에 정말 많아요. 향다님이 인터뷰하고 있는, 정말 다양한 일상을 살고 있는 회색지대 여성들처럼 말이죠. 그래서 새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그들이 내는 소리와 행동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를 안다는 것이 저는 너무 재미있고 소중해요. 이번 인터뷰도 저에게는 그런 맥락에서 너무 재미나고 소중하다고 생각했어요.


쪼안과의 인터뷰는 ‘따뜻한 얼음’ 같았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따뜻함, 그 과정 속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냉철함, 자연과 사회를 함께 어울러 통찰해 내는 진지함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유머감각이 그러했다.

그동안 그녀는 책이나 온라인을 통해 만난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을 기웃거리면서, 부러워도 해보고 따라도 해보았다고 했다. 그렇게 2~3년을 지내다 보니 이제는 그 시간을 토대로 나만의 것을 만들어 실험적으로 무언가를 해보아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녀만의 새로운 실험들로 가득 찬 일상의 정원에서 즐겁게 지저귈 새들의 소리를 기대해 본다.

이전 15화 질문하는 삶 - 함안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