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글/그림 홍우리, 『나의 첫 심부름』(키다리, 2022)
아이가 할머니의 그릇을 돌려드리러 할머니 댁에 가고 있다. 이것이 아이의 첫 심부름이다. 아이의 발걸음에 즐거움과 조심스러움이 묻어있다.
누구에게나 첫 심부름이 있을 것이다. 첫 심부름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아도 그 기억을 꺼내려는 것에 가슴이 뛴다. 설렘이다. 처음이라는 것이 전해주는 선물 같은 기분이다.
‘쨍그랑!’
그 소리에 아이의 심장은 개미만큼 작아졌고, 갑자기 새까만 걱정 구름이 몰려왔다.
아이는 당황한 마음에 그 상황을 모른 척하며 도망쳤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심부름을 하는 것도 심부름을 망친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일부러 그릇을 깬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릇이 깨진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실수일 뿐이었다. 아이가 그 실수를 자신의 잘못으로 자책하고 놀라서 도망치려는 모습이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그림 덕분에 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이가 도망간 곳에는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런데 나팔꽃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나팔 소리처럼 아이를 날카로운 말들로 비난했다.
나팔꽃들의 질책에 아이는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며 맨드라미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아이는 맨드라미처럼 붉은 분노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깨진 그릇으로 가장 속상한 사람은 아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아이의 잘못이라고 몰아가자 그 속상함이 분노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장미꽃을 만나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뾰족한 장미 가시가 아이의 마음에 콕콕 박혔다. 속상해진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하지 못해 아이는 눈물로 웅덩이가 만들어질 만큼 많이 울었다.
아이에게 꽂혀 있던 가시들이 그 눈물에 휩쓸려 빠지기 시작했다. 때로 눈물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불안, 부인, 분노, 타협, 우울과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씻겨 내주기도 한다.
웅덩이에서 더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앞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제대로 보고 털어내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 때가 있다.
아이 앞에 있던 무지개로 아이는 용기를 얻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무지개 마음이 떠올랐다. 그 마음으로 자신의 눈물 웅덩이에 비친 자신을 보고 아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일부러 그릇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자신의 실수를 돌아봤다. 그리고 인정했다. 그릇이 깨지면서 위축되어 작아졌던 아이의 몸이 자라기 시작했다.
때마침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셨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했다.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아이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시고,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이와 할머니는 깨진 조각들을 다시 모아 붙였다. 금이 간 그릇이 새로운 그릇이 되었다. 음식을 담는 역할 대신 화분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그릇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것으로 아이는 성공적으로 심부름을 마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실수에 대해 할머니의 따뜻한 배려를 예상했다면, 아이는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일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험이 사람을 자라게 한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그 설렘과 두려움이 성공의 목적지에 도달할 때도 있고, 실패라는 샛길로 빠질 때도 있다. 성공의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고, 실패의 샛길로 빠진다면, 이것은 또 다른 방법을 찾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길이든지 간에 ‘처음’이라는 것은 ‘성장’이라는 길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므로, 결과만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작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