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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Aug 23. 2024

(성장의 단계) 때가 되면 말이 되는 이야기

: 수영하는 하마

글, 그림 안효림, 『말도 안 되는 이야기』(길벗어린이, 2023)          




싸개에 꽁꽁 싸여 있던 아기 하마가 어느새 돌아눕고, 어느새 기고, 어느새 걷는다. 아기 하마가 성장을 하면 할수록 그동안 자신이 보았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 다른 세계에서 아기 하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된다. 새롭다는 것은 신기하고 재미있어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두렵고 걱정되어 망설여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서 아기 하마에게 고민이 생겼다. 엄마는 아기 하마에게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아기 하마가 생각할 때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기 하마는 푸념하듯이 자신의 고민을 물고기들에게 했다. 물고기 역시 아기 하마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들은 비늘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고, 아가미도 없는 하마가 수영을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며 아기 하마에게 수영을 하지 말라고 했다.



고민이라는 것은 할지 말지를 망설일 때 고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는 않은데,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이미 아기 하마는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수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수영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 없이 엄마가 설명해 준 수영하는 방법을 무시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기 하마는 자신이 수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대화 상대를 찾아간 것 같다.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지지해 줄 상대를 만날 때 자신의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지는 면이 있다. 



물고기들이 아기 하마에게 수영을 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수영하는 법이라는 것은 따로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분명히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 자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아기 하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었던 것인가?



아기 하마가 수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빗물이 점점 불어나면서 이제 아기 하마는 물속으로 가라앉듯이 들어가 버렸다.      



세로로 그려진 그림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물이 차올라 아기 하마가 물에 잠겨 들어가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아기 하마가 처음으로 물에 빠졌다. 무섭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그 위기 속에서 아기 하마는 차분하게 엄마가 가르쳐준 수영법을 하나씩 해 보기 시작했다.



‘힘을 빼고

몸이 떠오르면

팔다리를 살랑살랑 움직여

그러면 앞으로 가는 거야’     



아기 하마는 자연스럽게 물 위로 떠올라 빠른 속도로 수영을 해서 앞으로 나갔다.     



엄마의 말이 맞았다.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은 두렵다. 그 두려운 세상을 만날 때 그 곁에 엄마의 잔소리가 먼저 와 있다. 



엄마는 그 세상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엄마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가 다치지 않고 그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얹어진 말이 아이에게는 잔소리다.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 잘 전해지면 좋을 텐데,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보기도 전에 날카롭게 선 말소리만을 듣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경험도 자신이 경험할 세상도 궁금해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말없이 아이 곁에서 아이가 만날 새로운 세상을 기다려 주고, 아이가 당황하는 그 순간에 도움의 말을 건네면 좋을 테지만, 자기 자식이 덜 힘들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엄마는 아이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야 되는 순간이 올 것에 불빛을 미리 건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밝은 곳에서 아이가 건네받은 불빛은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엄마는 아이가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야 되는 순간이 올 것에 진흙탕 속을 걷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스팔트 길 위에서 알게 되는 진흙탕 속 걷는 법은 아이에게 공상과학 이야기보다 쓸모가 없다.



엄마는 안다. 



살다 보면 반드시 터널 속도 들어가게 되고, 진흙탕 속으로도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밝은 아스팔트 위에서 앞으로도 이 길 위에서만 살 것 같은 아이는 자신의 인생의 변화를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아기 하마가 물속에 잠기는 위기에 처해서야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처럼, 우리 아이도 자신이 힘든 순간 속에서라도 엄마의 이야기를 떠 올리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현실성 없는 엄마의 이야기를 현명하게 써서 꼭 아이가 힘든 순간에 그 말이 빛을 바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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