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영진 Nov 17. 2019

내 몸 사용설명서를 만들기로 했다

그동안은 잘 몰랐던 내 몸의 탐구

스미냑 비치, 스미냑, 발리, 인도네시아




인간의 모든 행위는 육체에 의해 실행된다


이제껏 내 몸의 특성을 파악해 보려는 시도를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다. 정신과 몸이 한쌍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체의 문제에 대해 마냥 방관했던 건 아니다. 특히 여행 중 발생하는 질병과 부상에 관해서는 꽤 날을 세웠다. 몸이 아프면 여행의 흐름이 엉망이 된다는 생각에 나름 신체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며 여행을 해 왔다. 


그렇지만 그 정도가 내 몸을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시도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불과 몇 년 전에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몸에 관한 한은 무관심했다. 일상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행에서도 몸을 함부로 굴릴 때가 많았다. 어지간한 부상이나 질병은 그냥 버텼다. 병원행을 단호히 거부하는 나 자신을 내심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힘자랑이나 일삼는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 사나이였던 게다. 


그러다가 여행에서 신체의 상태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내 몸의 특성을 하나둘씩 깨닫기 시작했다. 기관지가 예민하다는 사실, 내 피부가 제주의 햇볕 혹은 그와 비슷한 강도의 자외선에 가장 쉽게 그을린다는 점, 감기가 찾아들기 직전의 전조 현상, 신체의 구조가 힘을 쓰는 운동보다는 순발력을 요구하는 운동에 더 적합하다는 점,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마다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이유가 내 발이 평발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 군 면제 조건인 평발로 태어났음에도 당시에는 그런 줄 몰라서 현역으로 군에 입대해 만기로 전역했다는 점, 좌우가 살짝 비대칭인 콧구멍, 장기 여행을 하면 살이 쭉쭉 빠지는 체질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내가 간헐적으로 인식하게 된 내 몸의 특징들이었다. 


발리에서 체류하며 내 정신세계를 탐구하다 보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몸으로도 옮겨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의 문제까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정신세계의 탐구로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여서 내 몸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감지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컨디션 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심신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몸의 생리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지탱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하기에 몸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반응을 꾸준히 관찰했다.


정신세계의 탐구와 마찬가지로 몸의 탐구 역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행해 나갔다. 생활을 하다가 내 몸의 특징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신체적 반응을 새로이 발견하면 그 내용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자동기술법 글쓰기를 할 때 정신세계의 특징과 함께 조목조목 적어 넣었다. 여러 날 동안 몸의 특징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하루에 몇 가지씩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어떤 특징은 반복적으로 돌출했다. 게 중에는 인간 공통의 특징도 있었고, 나에게만 국한된 특징도 있었다. 


감각의 엔진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니 이전에는 기술 체득에만 초점을 맞췄던 수영에서도 환경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달라지는 현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식사 직후의 수영은 의욕적인 마음과는 달리 힘에 부친다는 사실을 자각했는가 하면, 수온이 높은 수영장에서 공포감을 느끼는 경향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전자의 경우, 영양분을 몸에 채워 넣은 직후여서 힘차게 몸을 가동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었지만 음식물이 미처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았는지 몸에서 힘이 감돌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무겁게 느껴지면서 평시보다 힘이 더 들었다. 그나마 공복에 하는 수영보다 조금 더 나았을 뿐이다.


수온이 높은 물속에서 공포감을 느끼는 현상 역시 새롭게 발견한 내 몸의 특징이었다. 온천 형태의 물놀이 시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날이 무더운 야외 수영장에서는 온몸으로 훅 끼쳐오는 뜨거운 기운으로 인해 공포감이 수시로 밀려왔다. 수면 아래에 고인 후텁지근한 기운이 원활한 호흡을 방해하기도 했다. 불과 몇 도의 수온 상승이 내 몸에 야기하는 영향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한 경험은 수영에 대한 거부감도 불러일으켰다. 머리에 새겨진 기억보다 몸에 새겨진 기억의 힘이 훨씬 강력하기 때문인지 스스로를 다독여 수영장으로 끌고 가기가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선호하는 음식에 대한 새로운 각성도 있었다. 오감이 모두 예민한 편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가릴 것 없이 예민하다. 미각 역시 예민했지만 여행을 할 때는 대충 먹고 다녔다. 대도시야 몸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지만 오지에서는 그럴 수도 없는 일. 입에 맞지 않지 않는 음식도 자주 마주쳐야 하는 여행에서 미각을 가동하면 결핍감에 자주 시달릴 듯해 감각을 스스로 둔화시켰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대신 현지의 음식들에 적응하는 편을 택했다. 


그런데 신체의 작용을 유심히 살피고 있기 때문인지 그동안 잠재워 둔 미각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했던 현지식 백반 짬뿌르에 대해 어느 날부터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되돌아보니 처음에도 살짝 거부감을 느끼긴 했다. 날마다 진수성찬을 즐길 수는 없는 처지라 내 안에서 이는 거부감을 모른 척 지나치고 있었다. 그렇도 모자라 짬뿌르를 먹을 때마다 현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며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짬뿌르에 적응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려 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다.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모른 척 타협했을 뿐이다. 그때는 그랬다지만 지금은 그때와 또 다른 상황. 선호하는 음식도 아닌데 맛있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꾸역꾸역 음식을 식도로 퍼붓는 일을 몸이 반길 리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나 자신을 계속 속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몸의 문제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이어서 신체가 보내오는 신호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짬뿌르와의 열애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짬뿌르와의 계약 연애를 마무리지은 후, 짬짬이 음식 탐방에 나서기 시작했다. 현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음식인 현지식 볶음밥 나시고랭과 볶음국수인 미고랭마저 물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새로운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현지식 꼬치구이인 사테가 내 입맛에 제법 잘 맞는다는 사실, 그중에서도 발리식 사테가 꽤 잘 맞는다는 점, 그리고 배가 고프면 휴식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은 몸대로 스스로의 존재 방식이 있었다. 정신력으로 몸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순간도 많지만 결국 몸은 자신에게 적합한 생태 하에서 편안히 존재하는 듯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몸의 생리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과거에는 객기를 앞세워 몸을 혹사시킨 날이 많았지만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될 것이었다. 바야흐로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도모해야 할 때였다. 




# 정신의 요람으로서의 육체

어린 시절 머릿속에 이식된 '남자다움'의 강박으로 인해 그동안 힘자랑은 종종 해온 반면 신체에 대한 탐구는 전혀 하지 않았다. 다수의 대한민국 남성들이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육체는 정신의 요람이다. 정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육체는 정신의 대외적 표현 양식이면서 인간 행위의 주체다. 현실 세계에서 모든 행위는 육체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상에서의 삶을 숭상했던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육체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천명했다. 육체가 감각하는 것만이 진실이며 육체의 욕망 실현이 최고의 선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필요한 것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육체는 손을 쭉 뻗어 필요한 것을 지목한다. 이성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자각하는 최후의 기관 역시 육체다. 심리학에서는 진실은 비논리적, 비이성적, 비합리적 영역에도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들까지 감지할 수 있어야 인식이 완전해진다고 강조한다. 두뇌의 작용만으로는 인식을 완성시킬 수 없는 셈이다. 그만큼 신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신체는 발달시켜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자 목표인 것이다. 신체를 세심하게 보살피면 내면의 상태도 고양된다. 신체의 상태를 가다듬음으로써 내면을 진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신체의 작동 원리와 자신의 몸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다.



이전 11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