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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추억이 많은 자는 부유하다

허랑하게 흘러온 인생은 없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KLCC,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빛나는 추억과의 대면은 마음과 몸을 살찌운다


안토니가 또 왔다. 우붓 5인방 중 한 명인 그가, 쾌활하고 유쾌하고 애교 많은 그가 내가 묵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것도 내가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내가 묵는 숙소를 향해 돌진해 왔다. 발리 여행을 마치고 방콕으로 떠났던 안토니는 내가 발리 생활을 마무리하던 당시 태국 여행을 마치고 말레이시아로 넘어와 있었다. 잘하면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동선이 겹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도착한 다음날 안토니가 기다렸다는 듯 불쑥 들이닥쳤다.  


조용한 곳에서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해 계획한 여행이었다. 작업의 대상은 그동안 여행길 위에서 찍은 수십 만 장의 사진들. 내 여행의 궤적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 사진을 하나하나 열람하는 과정에서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가 많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장면들이 의식 위로 불쑥 튀어 오르곤 했다. 생각보다 많은 곳을 여행했음을 실감했고, 기억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다채로운 추억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모든 길을 지나쳐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할 때마다 저릿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화려한 삶에 대한 동경이 크지 않은 편이라 큰 탈 없이 생활해 오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면서 살아왔다. 이만하면 족한 인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밋밋한 삶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내 여행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훑어 내리자니 내가 무수히 많은 길목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감정이 벅차올랐다. 내 삶의 궤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도 않은 것 같아서 내심 흐뭇했다. 부침이 없지는 않았지만 풍요의 기준을 물질로만 제한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부유한 인생인 듯했다. 


내 추억록 속에는 '쿠알라룸푸르'라는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인생의 한 지점에서 쿠알라룸푸르 역시 풍요로운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거리에서 만났던 친절하고 선량한 시민들이며, 기대 이상으로 발전해 있던 사회상이며, 도시의 중앙을 뒤덮고 있던 드넓은 녹음이며, 국교인 이슬람교의 지반 위에서 힌두교와 불교와 기독교가 사이좋게 융기해 있던 모습까지 도시 곳곳에서 마주친 풍경들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여러 나라들의 집합체인 동남아를 문화와 전통의 분별없이 한 덩어리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인식을 선사해 준 풍경들이었다. 그랬던 쿠알라룸푸르에 다시 발을 들였다. 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쿠알라룸푸르의 오늘부터 먼저 확인해 봐야 할 터였다. 마침 안토니도 들이닥친 김에 며칠 시간을 내 함께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제 막 도착한 상황이라 숨을 좀 돌리며 현지 적응부터 하려던 참이었다. 지역 환경도 어느 정도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안토니의 명랑한 발걸음을 앞세워 지역을 탐방하러 나서는 길. 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더웠다. 우리의 발길이 닿은 첫 장소는 내가 옛 여행에서 묵었던 차이나타운이었다. 당시에는 여행 인프라가 지금만큼 풍요롭지 않았다. 여행 정보도 월등히 부족했다. 입소문을 듣고 투숙했던 그때의 숙소가 그대로 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안토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옛 숙소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시일이 꽤 지난 탓에 숙소의 이름은 어렴풋하고 위치마저 가물가물했지만 이 어디쯤에 추억 속의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분주해졌다. 


거리를 구석구석 훑으며 돌아다니는 동안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도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기억의 조각들이 어느새 저희들 스스로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듯 그 시절의 일들이 슬그머니 형상을 갖추며 머릿속에서 하나둘씩 펼쳐졌다. 소멸되었던 기록이 갑작스레 복원되는 현상을 경험하는 기분이 묘했다.  


옛 숙소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들어가서 양해를 구하고 실내를 구경할까 하다가 너무 부산스럽게 구는 듯해 참았다. 더위를 식히려고 맥주를 마셨던 식당도 찾아냈다. 기억의 창고 안에서는 새까만 천으로 덮여 있던 장소였다. 옛 숙소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았는데 또 하나의 추억 속 공간을 찾아내게 되어 마음이 더욱 흡족했다. 식당 앞에 서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중년 남성 하나가 노천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 손가락 길이의 고리 한 쌍을 내밀며 체결하고 해체하는 시범을 보였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반복되는 실패에 약 올라 고리를 사길 기대했던 것 같은데 길지 않은 시간에 고리를 풀어냈다. 그 모습을 본 사내가 유쾌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잊고 있었던 사내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일대를 걷다가 큼직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 가만히 보니 옛 여행 때 방문했던 센트럴 마켓이었다. 아직 내부로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이내 실내의 모습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외관의 몇몇 특징들이 예전의 기억을 불러낸 게다. 세월의 물살에 휩쓸려 멀리로 흘러갔을 거라 생각했던 장면들은 내가 몰랐을 뿐 내 안 어딘가에서 제 모습 그대로 살아있었다. 


다음날에는 다른 구역을 여행했다. 세계 10위권의 높이를 자랑하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와 널찍한 도심 공원 등이 한데 어우러져 쿠알라룸푸르 여행의 방문 1순위로 꼽히는 KLCC(Kuala Lumpur City Centre). 한 나라의 수도를 대표하는 볼거리답게 KLCC는 수많은 이들로 북적였다. 당시만 해도 그 높이로 세계 수위를 다퉜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이후로 이어진 중국과 중동의 공격적인 초고층 빌딩 건립 사업으로 인해 그 위상이 많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올려다보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풍모는 예전과 다름없이 압도적이었다. 


하늘을 뚫을 듯 저 높이까지 솟은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자니 차이나타운에서와 마찬가지로 옛 여행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원 안에 자리한 야외 수영장이며, 현지식 팥빙수를 테이크 아웃해서 먹었던 쇼핑몰 앞 연못 분수며, 화장실 이용료를 아끼기 위해 찾았던 쇼핑몰 2층 화장실까지 모두 기억이 났다. 아직 내부로 들어서지도 않은 내 앞에서 그때 그 풍경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는 장면을 마주하고 있자니 다시금 기분이 묘해졌다. 느긋한 마음으로 곳곳을 거니는 동안 내 추억 속의 공간들이 예전 그대로의 얼굴로 나를 향해 미소를 보내왔다. 


독립 선포가 이루어진 메르데카 광장과 도시의 허파에 해당하는 드넓은 녹지 레이크 가든도 반갑기는 매한가지였다. 일대를 초록으로 가득 채운 넓은 숲 지대며, 당시의 기억이 하나둘씩 살아나는 새공원과 나비공원 등 레이크 가든의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우리를 다정하게 반겼다.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나비공원에서 마주친 벨기에 여행자 피에르와 함께 메르데카 광장을 지나 리틀 인디아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생각해 보니 리틀 인디아 한켠의 허름한 이발소에서 피에르가 면도를 했었다. 번쩍이는 나이프로 피에르의 수염을 다듬던 인도인 이발사의 마법 같은 손놀림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레이크 가든에 진입하기 위해 차도를 따라 걷기도 했었다. 새 공원 앞 벤치에서 지친 다리에 휴식도 선사했었다. 전신을 검은색 천으로 가린 이슬람 여성의 모습 위에 닌자의 이미지를 포개어 보기도 했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씩 피어날 때마다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로 번졌다. 옛 추억들과의 조우로 행복감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쿠알라룸푸르 생활의 초입.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만하면 시작이 좋은 듯했다. 




# 건강을 촉진하는 추억의 힘

현실이 힘겨울 때 추억은 아주 훌륭한 도피처의 역할을 한다.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모습을 지금의 내 모습 위에 포개다 보면 현재를 잠시 망각하게 된다. 그 시절 내가 꽤 반짝거리는 존재였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시절의 모습들 중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과 여전히 내 것인 것을 분별해야 할 테지만 현실에 짓눌린 상태에서는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것들을 불러들여 내 존재 위에 입히게 되기도 한다. 현실 도피 심리의 작동이다. 전성기를 지난 이들이 '왕년'을 쉴 새 없이 부르짖는 행위의 바탕에도 그러한 원리가 깔려 있다. '추억팔이'라는 표현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도 그래서다. 추억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행위는 퇴행을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추억의 미덕은 유효하다. 적절한 흐름 속에서 추억을 반추하면 삶을 지탱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긍정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한 공중파 방송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추억과의 대면이 건강 지수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비밀리에 진행된 실험의 끝에서 피실험자들 대부분은 건강 지수의 향상을 체험했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 화창했던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이나 자신을 일으켜 세워 주었던 곳을 목적지로 선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자극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여행지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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