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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분명한 의사 표명은 결례가 아니다

나 자신의 보호에 단호함을 아끼지 말 것

KLCC,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단호한 태도는 존중을 이끌어 낸다


어둠이 거리에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숙소 앞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분주한 걸음으로 거리를 지나치는 체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체마는 카우치서핑 주간 이벤트에서 만났던 스페인 여행자. 산만한 대화들 속에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화두로 유일하게 맞닿았던 친구였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였기에 쉽게 공감대를 넓힐 수 있었다. 모임 이후에도 체마는 간간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즉흥적이면서 떠들썩한 보통의 스페인 사내와는 다르게 깊고 섬세한 태도가 인상 깊었는데 메신저 상의 결은 그보다 더 곱고 부드러웠다.  


체마는 모임 당시 여자 친구를 동반한 상태였다. 아시아를 함께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숙소 앞에서 다시 마주친 그는 혼자였다. 반가운 마음에 일단 그를 불러 세웠다. 커다란 짐을 앞뒤로 짊어진 채 황급히 발을 놀리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모습이 예와 다르게 어수선했다. 동공도 불안정하게 흔들리기에 사정을 물어보니 공황 상태에 빠져있다는 대답. 숙소를 잡고 나서 자세한 얘기를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30분쯤이 지나 숙소의 휴게 공간에서 다시 만난 체마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나를 다시 만나자마자 자신의 속사정부터 정신없이 토해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체마가 여자 친구와 동반 여행을 계획한 기간은 총 3개월.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었다. 자신은 남아서 계속 여행을 하기로 해 스페인으로 복귀하는 여자 친구를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3개월 간 한 몸처럼 지내다가 헤어지려니 엄청난 상실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공항에서도 서로 끌어안고 울기를 반복했다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그녀를 보내고 쿠알라룸푸르 시내로 돌아와 숙소를 잡으려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예산 내에서 묵을 수 있는 숙소들이 만실이더란다. 안 그래도 상실감의 풍랑이 거센데 머물 곳마저 찾을 수가 없어서 대혼란에 빠진 상태라고 했다. 빈 방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다가 나를 만났다는 설명이었다. 나에게 숙소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후 길 건너편의 숙소를 방문했던 체마는 결국 하루 숙박 예산의 두 배를 주고 내가 묵는 숙소의 독방 하나를 잡았다. 더 이상 돌아다닐 기력도 없는 데다가 마음을 기댈 사람도 몹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저녁이 되어 체마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괜찮으면 오늘 하루는 자신의 옆에 있어 달라는 체마의 부탁이 있었다. 숙소 인근의 한 이슬람 사원 앞 분수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가 한창 깊어질 무렵, 인도 사내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투는 정중했으나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온 상황. 양해도 구하지 않고 우리 사이에 끼어든 그의 사연은 꽤나 우울했다. 낙심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신세 한탄부터 하는 것으로 보아 이야기의 말미에 구걸을 할 듯했다.  


반면 체마는 그의 이야기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 표정은 사내가 빨리 물러나 주길 바라는 듯했으나 사내의 사연이 비참하게 느껴졌는지 이따금 공감의 태도를 취하며 사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체마가 반응을 하면 할수록 사내는 자신의 속사정을 더 적극적으로 쏟아냈다. 5분쯤 상황을 지켜보다가 사내를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사연은 구슬펐지만 체마부터 챙겨야 했다.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지금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나누는 중이니 우리끼리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면 고맙겠어." 


겸연쩍은 표정으로 사과 인사를 건넨 사내는 당초 예상했던 대로 혹시 기부를 좀 해 줄 수 없겠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사연을 다 듣지 못해 판단이 서지 않으니 다른 이들에게 부탁해보라고 말하며 그들 돌려보냈다. 사내가 자리를 뜬 후, 다시금 체마와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남은 얘기가 꽤 있는 상황이었다. 


이튿날 아침, 휴게 공간에서 체마를 다시 마주쳤다. 상태는 많이 좋아졌냐고 물었더니 전날보다는 감정의 파고가 낮아졌는데 묘한 기분도 내면에서 출렁거린다는 대답. 곁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오전이라 시간 여유가 있으니 함께 있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체마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전날 밤 우리에게 접근한 인도 사내 이야기를 꺼냈다. 그를 상대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영어 단어 하나가 떠올랐고, 그게 계속 화두로 맴돈다고 했다.  


체마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낱말은 ‘Assertiveness’. 우리 말로는 ‘단호함’이었다. 전날 밤 내가 인도 사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했다. 사내가 빨리 얘기를 마치고 물러가기를 바라고 있었음에도 사내의 사연에 감정이 휩쓸려 자신으로서는 상황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며, 분명하게 대응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단호함을 연습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체마는 나에게서 단호한 모습을 봤다지만 실제 상황은 그와 좀 달랐다. 호불호가 분명한 성향임에도 결례가 될까 봐, 혹은 상대가 서운해할까 봐 속마음을 함구해 온 시간이 길었다. 개선의 필요를 느낀 최근이 되어서야 의사를 분명하게 표출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는데 발언 타이밍을 놓쳐 어영부영 상황에 휩쓸려 갈 때가 여전히 많았다. 짱구의 협업 공간에서 운영 매니저가 이벤트 참석을 권유할 때마다 농담을 하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것도 단호함의 부족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정중하고 정확하게 불참 의사를 밝혀도 됐는데 미안한 마음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대응했다. 서양 친구들은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하던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체마가 '단호함'의 문제를 언급한 날 저녁, 숙소의 휴게 공간에서 아랍계 여행자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기에 빙긋 웃으며 그의 인사에 화답했다. 그러자 그가 일방적으로 대화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발언이 흘러가는 모양새로 보아 이슬람교의 교리를 전파하려는 듯 보였다. ‘도를 아십니까’ 풍으로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 지점에서 그에게 종교와 관련한 대화는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는 종교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삶과 우리가 속한 사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라면서 다시 발언을 이어갔다. 타인의 의중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봤지만 소재만 교체했을 뿐 결국 종교 이야기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그에게 다시 말했다. “계속 종교로, 그것도 네가 숭앙하는 종교로 모든 발언이 귀결되는데 이게 종교 이야기가 아니면 뭐냐? 그리고 내 의향은 묻지 않고 다짜고짜 종교 이야기를 꺼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 내가 분명히 종교와 관련된 대화는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 반감을 먼저 키워 놓고 하는 대화가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 가리라고 생각하냐? 네가 섬기는 신이 네 방식을 옳다 여길 것 같으냐? 이것이 네 종교가 말하는 사랑이고 자비냐? 이게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냐?” 


말을 빨리 하는 편이 아닌데, 게다가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어휘를 골라서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때만큼은 몇 차례 예행연습이라도 한 듯 발언이 속사포처럼 입에서 터져 나왔다.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마음속 감정 그대로 말을 내뱉는 기분만큼은 후련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상대의 얼굴이 빨개졌다.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것 같기도 했고, 내 기세에 눌린 것 같기도 했다. 잠시 당황해하던 그가 자신이 경솔했음을 인정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이집트에서 온 언론인이었다. 이슬람 교도였음은 물론이다. 그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의 네 발언이 상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훌륭한 가르침을 얻은 것 같다. 지금 얘기한 것들을 토대로 철학책을 써 보는 게 어떠냐?”  


존중을 이끌어 내게 되어 다행스러웠으나 이 상황이 나에게 전한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따로 있었다. 얼마든지 단호하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것, 그래도 불미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것. 예상보다 평화로운 결말이 새로운 교훈 하나를 내 몸에 각인시켜 주는 저녁. '단호함'이라는 낱말이 내 머릿속에서도 맴돌기 시작했다. 




# 자기 보호의 중요성

관계의 불협화음 속에 불필요하게 끌려들어가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라는 게 워낙 복잡다단해 내 마음처럼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권력이 작용하고 있거나 이권이 관련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상황 논리에 휘말려 의사 표출을 주저하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내 안에 쌓인다. 누적된 여파는 후에 내 모습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형시킨다. 정신세계를 교묘하게 잠식해 들어오는 관계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인 상황은 이상할 게 없는데 마주하고 나면 기가 빠지거나 마음이 어수선해진다면 관계의 실체를 되돌아보는 게 좋다. 이런 일을 빚어내는 사람을 요즘에는 '멘탈 뱀파이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역시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대다. 타인에게 끌려가길 반복하는 흐름 속에서는 내 삶을 내 의지대로 밀어붙일 수가 없다. 상대의 사정이 아무리 안타까워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게 먼저다.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보호는 자기 회복의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행동 지침으로 제시된다. 사소한 상황이라고 그냥 참고 넘길 게 아니라 최대한 의사 표출을 함으로써 원치 않는 여파가 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상황을 차단하는 것이 좋다. 내가 확립되어야 나 자신과 주변이 모두 평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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