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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간 Sieben Stunden

9. 타인의 꿈을 듣는 다는 것은 -2)

by 언젠가

아름다운 당신의 비전은 잘 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헌신적인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 나는 헌신적인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반자의 외조와 내조가 필요한데 나는 그길에 합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 길이 있고 내가 힘들게 이룬 내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 나는 내 길과 영역을 무시하고 평가절하하며 침범하는 사람들에게서 내 영역을 지키느라 너무 힘들었다. 당신이 찾는 여자가 아닌것 같으니 다른 여성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대답에 그는 긴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을 끝에 그는 담담히 설명했다. 배우자 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 현재의 성과와 위치,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비교적 디테일 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침묵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가 침묵을 선택한건

나를 찾아내고 나에게 다가오고 우리의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는 그 과정에서 한번도 의구심이 들었던 적이 없이 나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당신이 찾는 여성이 아닌것 같으니 다른 여성을 찾아 보라는 말이 충격받아서 였다고 대답했다.


그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배우자의 헌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바란적도 없었다는 그의 대답에 안심이 되는 동시에 그가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 관계를 진지하게 시작했다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타인의 꿈을 듣는다는 것, 그것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남자, 어쩌면 동반자 적인 관계로 발전 싶어하는 사람에게 그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듣는 다는 것은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나 역시 진지해 져야 하는데 그걸 감당할 수 없다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 전에 관계를 단절 시키는 것이 맞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린 관계란 것이 있나? 많은 시간 대화를 했지만 우린 만난적도 없다. 사진으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긴 했지만 그 일상은 상대와 공유한 시간이 아니고 타인과 공유한 시간들의 기록이였다.

남자의 꿈을 듣는게 무거우니 이제 통화하지 말자는 결별을 선언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린 그냥 편하게 일상을 나누는 친구 사이 이상인 것도 확실하다.

아직 뭐라 규정 지을 수 없지만 서로의 생각과 취향을 궁금해하고 일상에 대한 대화 서로 읽는 책과 영화 서로의 어린시절 서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 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으며 중요하고 민감한 개인정보도 알고 있다.



아, 이상하고 달콤한 관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의 교류. 그런데 어색하고 이물감이 드는게 아닌 이 모든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련의 과정 같은 느낌. 이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지만 아무튼 경험하고 받아들이고 기꺼이 즐긴다. 그것이면 된다.

아마도 내가 느끼는 현재의 행복감은 현실과 일상에 크게 방해 받지 않는 교류이고 대화이지만 밀도와 강도가 꽤 빠르고 강하다는것, 무게감이 있는 약속들과 대화들 미래의 청사진들이 그려지지만 사실은 아직 그 무엇도 알 수 없고 확인 할 수 없다는 것. 그 사이에서 나는 꽤 행복하고 즐겁다. 아,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이 마음, 이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기쁨. 이 나이에 새로울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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