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매일 산악 러닝을 하는 사람
이 사람은 내가 기존에 알았던 40대 중반 성인 남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직 간접적으로 알게 되고 교류하던 이웃들, 사회에서 만난 사람, 직장 동료들 중에는 이런 샘플이 없었다.
그는 독일의 어느 동화 속 마을 같은 곳에서 살며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집과 오분 거리의 대학 연구실을 도보로 출근하여 연구를 하고 점심과 저녁시간에는 집으로 돌아와 요리를 준비하여 역시 오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이들과 식사를 나눈다.
퇴근을 하면 인근 숲 속에 들어가 산악 러닝을 시작한다. 매일 7km~10km를 뛴다. 그리고 아름다운 숲의 풍광을 즐기고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나에게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다고 사진을 보내준다. 하이델 베르크의 주요 산책로나 숲속길, 시청 건물이나 교회건물 ,대학 본관건물, 개선문, 올드브릿지는 가본적이 없지만 이미 가본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운동 후에는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깨끗하게 씻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다가 일찍 잠자리에 든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 건강하고 바른 체형과 부드럽고 훈훈한 얼굴을 가졌다.
말과 글은 유려하다. 어떤 주장에 대해 서로의 의견이 어긋나면 다정한 목소리로 나와 다른 관점인 부분을 정확하게 순서에 맞게 설명하고 그 부분에서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가 쓴 글들을 보면 감정에 대한 글은 공감이 가고 실제에 대한 글은 날카롭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그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졌고 그 가치관과 생각을 바르게 전달할 줄 알며 단단한 정신과 부모님께 받은 훌륭한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쩌면 생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에, 이건 유니콘이 아닐까?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나는 처음에 그가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했다고 할 때 저 사람이 과연 한국에서도 지금의 삶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가 단순하고 수도자 같은 일상을 살며 연구를 하고 책과 자연과 예술을 접하는 것으로 행복감에 충만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단언컨대 그가 독일에서 학자로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의 사십 대 중반의 남성을 샘플로 놓고 비교해 보자. 그의 아비투스는 상급지 학군 좋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대기업 연구원이나 임원, 개업한 의사, 가업을 승계받은 사업가 정도로 하겠다.
사십 대 중반 학군지 아파트에서 살며 물질을 누리고 사교육 시장에 돈을 퍼부으며 자녀를 교육한다. 개업한 전문직, 대기업이나 공기업 임원,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사업가, 혹은 부모의 사업을 승계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남자들은 자신이 이룬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여 내 자녀도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물질로 부인을 다룰 줄 알며 부인에 대한 존중을 물질로 표현할 줄 안다. 주말저녁이면 아파트 상가에 소문난 맛집인 술집에는 삶의 수많은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극복하며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아저씨들로 가득하다. 이런 아저씨들과 대화를 하면 주제는 서로의 자녀교육, 연예인, 주식이나 부동산 재테크, 그곳에 함께 하지 않는 또 다른 지인의 뒷이야기. 사십 대 중반 이상이 되면 사실 아저씨나 아줌마나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 사람이 가진 것으로 그 사람을 본다. 무언가를 지시하는 언어에 익숙하다.
지금까지 내가 살며 본 사십 대 중반의 남성들은 대부분 그렇다. 이런 사십 대 중반 남성의 부인으로 살아가는 사십 대 중반의 여성들도 대부분 그러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열심히 살아와서 무언가를 이루고 가지게 되었거나 부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가업을 승계받았거나 한 사십 대 중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가 많고 만나면 서로를 비교하고 평가하며 살아간다. 생의 본질을 우리가 살고 있는 학군지 아파트에서 얻을 수 있다 여겨서 자녀들에게도 그런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는 사교육 시장에 돈을 퍼부으며 자녀를 교육하지 않았다 (이건 독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듯)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풀지 않는다. 물질로 여성을, 아니 사람을 다룬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하고 흥미 있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연구한다. (그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나를 연구했다고 표현했다.) 대화의 주제는 개미에서 시작해서 우주의 빅뱅까지 확대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많은 것을 쏟은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추구하는 삶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과 다르지만 사실은 내가 간절히 원했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봐 온 적이 없는 사람을 나는 신기해해야 할까? 두려워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그를 알게 된 것이 전생과 같은 과거와 결별하며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라고 여기며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까.